사사기

18-12-04 12:09

사사기 강해 42.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사라진 사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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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42.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사라진 시대

 

사사기19: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스라엘 자손이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하는가? 읽은 것은 한절이지만 19장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기 무엇인지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장부터는 사사시대에 일어났던 윤리적 타락의 대표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라고 언급합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거부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거부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에브라임 산골에 사는 레위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레위인은 하나님께 제사업무를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첩을 맞이했다는 것부터가 이상합니다. 레위인으로서의 정상적인 삶에서 일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첩은 세컨드 와이프이며 성적대상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레위인을 남편(3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주인(27절)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2절에 보면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넉 달 동안 지내게 됩니다. 여기서 ‘행음’이라는 단어는 ‘간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보면 이 여인의 부정한 행실 때문에 남편을 떠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행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로 화가 난 그 여자는, 그를 떠나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친정 집으로 돌아가서, 넉 달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공동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첩은 화나는 일이 있어서 그를 버리고 베들레헴 성내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넉 달 가량 머물러 있었다”

이 여인의 행음 때문에 남편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을 화나게 한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레위사람과 관계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 볼 때 이 여인은 힘이 없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반면 레위인의 모습은 전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첩이라고 해도 집을 떠난 지 넉 달 동안이나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레위사람을 남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남편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러한 레위인의 모습은 사건이 진행될수록 더욱 충격을 안겨줄 것입니다.

 

이제 남편은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여인을 데리러 가게 되고, 남편을 만나게 된 여인은 그를 맞이하여 아버지 집으로 인도합니다. 장인은 그를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삼일동안이나 함께 먹고 마시게 됩니다. 넷째 날 아침 레위인은 아내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자, 장인은 요기를 좀 하고 떠나도 좋지 않는가 하며 붙잡게 됩니다. 그래서 둘이 같이 앉아 먹고 마시는데 하루만 더 묵고 가라고 청합니다. 그럼에도 떠나고자 하자 장인이 간곡하게 간청합니다. “하루만 더 묵으면서 놀고 가게”

다섯째 날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아침에 일찍 떠나려고 했지만 장인은 또 다시 요기나 하고 떠나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이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날이 기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장인은 이토록 사위를 놓아주지 않았을까?
그저 사위와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좋아서 그랬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인상은 아버지로서 앞으로 딸에게 일어나게 될 끔찍한 일을 직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는 이 레위인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는 것이 불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인은 장인의 요청을 뿌리치고 첩을 나귀에 태워 종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됩니다. 해는 기울기 시작하였고 당도한 곳은 여부스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종이 이곳에서 묵자고 하자 레위인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에 유숙할 수 없다고 하여 기브아나 라마까지 가자고 합니다. 약 5킬로미터 정도 더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곳에는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날이 늦었지만 그곳까지 가려고 한 것입니다. 도착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그들은 기브아 광장에서 자신들을 맞이할 사람을 기다리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 문화 가운데 손님대접 문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하셨죠.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땅에서 나그네 였기 때문에 너희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나그네를 외면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할 곳이 없는 나그네가 있다면 집에 데려다가 잠자리와 먹을 것을 대접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아 광장에 아무리 서 있어도 누구도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환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이 도시가 차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땅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발견합니다.  
성경은 이 노인이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이 지역에 사는 베냐민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노인도 이주민이었던 것입니다.
노인은 레위인에게 어디로 가는 갈이냐고 묻게 되고 레위인은 베들레헴에 갔다가 에브라함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도 자신들을 맞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먹을 것이 충분히 있으니 잠자리만 제공해 달라고 부탁하자 노인은 거리에서 유숙하지 말라고 하고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입니다.

노인의 집에 당도한 레위인 일행은 그곳에서 발도 씻고 음식도 먹으면서 편안하게 쉬게 됩니다.

그때 였습니다.
밖에서 불량배들이 둘러싸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여기서 ‘관계’라는 단어는 성폭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명의 불량배들이 모여 집단으로 그것도 동성을 집단으로 성폭행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며 이 레위 사람 대신에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 사람의 첩이 있으니 데려다가 너희가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불량배들이 듣지 않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끌고가 그들에게 내어줍니다.

불량배들을 밤새도록 여자를 능욕하고 새벽 미명에 놓아줍니다.
동틀 때에 여인은 자기 남편이 있는 노인집에 도착하여 문고리를 잡고 쓰러지게 됩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집 문을 열고 길을 가기 위해 나갔는데 그의 첩이 두 손이 문지방에 걸쳐진 채 문 앞에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일어나 가자. 아무 대답도 없자 그녀를 나귀에 싣고 집으로 갑니다.

그녀는 과연 죽었을까요?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레위인은 집에 도착하자 칼을 꺼내어 자기 첩을 토막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12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전 지역에 보내게 됩니다.

 

토막난 시체가 각 지파마다 도착하게 됩니다.
그것을 열어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30절 “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이 사건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소돔에서의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롯의 집에 머물고 있는 천사 둘을 집단으로 성폭행하기 위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 집을 에워쌉니다. 그때 롯은 이런 악행을 행하지 말라며 자신의 두 딸을 내어줍니다. 물론 천사들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롯은 간신히 소돔 땅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돔땅을 유황과 불고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소돔 땅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등장하는 기브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땅입니다. 이곳에서 소돔의 죄악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무시하게 될 때 결국 소돔의 죄악이 나타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레위인, 첩, 첩의 장인,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노인입니다. 이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땅의 전반적인 영적 분위기가 소돔과 같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먼저 레위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첩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그가 성적대상으로 첩을 둔 것입니다. 그가 장인의 집에 피신해 있을 때도 레위인은 넉달 동안이나 찾지 않습니다. 그는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노인의 집에서 불량배들에 쌓여 위협을 받을 때 자신의 아내를 내어주었습니다. 죽음을 다해 싸워 지켜야 할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내를 찾지도 않고 잠들어 버립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집을 향해 나섰던 것입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해 다 죽어가는 그녀를 치료도 하지 않고 나귀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는 열두토막으로 시신을 잘라냅니다.

이러한 냉혹함과 비인간성 그리고 엽기적인 행각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도 하나님께 제사하는 업무를 감당했던 레위인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의 아버지, 레위인의 장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 여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화가 나는 일이 있어 아버지 집에 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레위인이 얼마만큼 잔인한 면이 있었는지를 압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레위인을 따라 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비참한 삶으로 내던져지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어떠한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모든 결정은 장인과 레위인 사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레위인 일행이 머물렀던 에브라임에서 온 노인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그래도 이 일행을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하는 그나마 선행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량배를 레위인을 끌어내려 할 때,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아내를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잘 보시면 여성들이 하나의 소유로 또는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말입니다.
이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법과 질서 특히 창조의 법과 질서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 어떤 존재보다도 존엄합니다. 그래서 시편 8편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1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조차도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십니다. 자신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판단과 결정을 막지 않으시죠. 그것이 인격적이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무언가를 시키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인격 앞에 무릎 꿇을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시죠. 여러분이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날들을 추억해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만큼 존엄하고 인격적으로 대하셨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존엄하며 존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모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게 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게 됩니다.
성별, 인종, 나이, 배경에 상관없이 인격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역사를 잘 보시면,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할 때 항상 인권이 신장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존엄한 계층이 따로 있었죠. 왕은 지극히 존엄하고 그 다음은 귀족 그 다음은 평민 이런 순이죠.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노비들의 인격은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회복되죠. 말씀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성의 인권이 이처럼 철저하게 무시되고 짓밟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무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사회는 무법사회입니다. 법이 무시되고 질서가 파괴되는 사회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무법사회는 법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법의 주관자요 판단자요 심판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각 자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창세기 3장의 죄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살아갈 때, 그 결과는 비참하고 잔혹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창조의 행위를 마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아름답고 좋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법과 질서 속에서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정확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완벽한 질서 속에서 움직여 질 때 그것이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자연의 질서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져 순환하면서 그 속에서 늘 새롭게 변화하는 창조의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는 그냥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으시셨다(창1:3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이들을 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함으로 땅에 충만하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을 통하여 지속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그토록 놀라운 창조의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고 모방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놀랍도록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사회전반에 뿌리내려야 하며, 그분의 창조의 능력이 모방되어 문명을 창조하고 이루어 갈 때만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를 위해 국가 정부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모든 법은 하나님의 법을 근거로 하여 제정되고 운영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되고 건강한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에 어떻게 됩니까?
그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법의 주권자요 판단자요 심판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고 그것이 합리화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법과 질서는 해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인간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지 창조주가 어디 있으며 불변하는 진리가 어디 있느냐? 하며 성경의 진리들을 해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최근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창조의 법과 질서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해체하려는 시도입니다. 인간의 성별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성별도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일 수도 있고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성별은 50개 이상이 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인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법으로 제정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법에 대항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이것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만일 우리의 딸이 어느날 와서 엄마 나 남자인 것 같아 성전환수술 하게 해죠 하면 그렇게 해줘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그것을 막으면 정부에서 개입하여 아이를 격리시켜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성행위와 낙태를 배우고, 중학교1학년 때는 동성애의 항문성교와 구강성교를 배우고, 아이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이성만이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동성과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미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킨 캐나다에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이야기를 CTS를 통해 본적이 있습니다. “남녀아이들에게 성관계를 수용‧거부하는 역할놀이를 시키고,
4월에는 핑크데이를 정해서 게이나 레즈비언이 와서 하루종일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게이연대, 레즈비언연대가 있어서 기관들이 학교에 연결되어 있고 모금활동을 벌이고,
게이선생님들도 있고, 문화자체가 바뀌어 있는 상황이에요.“
이것이 지금 캐나다 교육현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법을 교육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동안 믿음의 선배들이 피흘리며 지켜낸 신앙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낙태법도 문제되고 있지 않습니까?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낙태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뱃속의 아이를 죽이는 것을 법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저 성적쾌락을 즐기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잔혹함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사사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끔찍한 살인과 시신훼손이 잊힐 만하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중학교학생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합니까?

 

문제는 명확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신앙인들이 바로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것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법과 질서로 우리 삶에 생명의 도리로 붙잡으셔야 합니다.

잠언 3장으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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