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12-27 12:18

사사기 강해 44. 죄의 집단성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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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44. 죄의 집단성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총회가 한 레위인에게 일어났던 잔혹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내렸던 결정과 그것을 실행함에 있어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레위인의 아내를 집단으로 성폭행했던 기브아 불량배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분별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먼저 진심으로 자복하고 통회해야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형제들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회는 불량배들을 붙잡아 심판하는 것을 넘어서 베냐민 전체를 진멸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실행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풀었던 것입니다.
어린이, 아이, 여인 할 것 없이 만나는 자들은 모조리 학살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한 지파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내용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총회는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미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한 지파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총회로 모였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 분노한 나머지 이러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에게 주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서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이 되었습니까? 자신들의 잔인한 학살로 인해 베냐민 사람들이 다 죽고 전쟁할 때 도망친 베냐민 군사 600명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는 뻔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그 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내에서 결혼을 할 수 없으니 세대가 단절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죄악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방법은 가나안의 여인과 결혼하면 될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총회에 내가 있었다면 어떤 의견을 제시하시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은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먼저,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섭니다. 2절에 보니까 거기서 저녁까지 큰 소리로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이들이 다음날 일찍이 일어나 번제와 화목제를 올립니다. 번제는 자신들의 죄악을 뉘우치는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온종일 통회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아! 이들이 정신을 차렸나 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먼저 이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3절을 보시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누가 이런 일을 해서 한 지파를 없어지게 했다는 것입니까?
자신들의 악행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분노하여 저지른 동족 학살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악합니다. 자신이 죄를 범하고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까?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가 하면 하나님께 죄의 원인을 돌리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서 숨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의 어떻게 대답합니까?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나와 함께 있는 여자가 그 열매를 주어서 내가 먹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잘못이 없고 여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여자는 하나님이 주신 여자 아닙니까? 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 때문에 내가 범죄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고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려버리는 교만하고 교활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원어로 “메타노이아”.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온 종일 통회하는 눈물을 흘린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 흘리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엘에 올라가 통회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올린 것은 회개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종교적 외식이었던 것입니다. 
<미가 6:7-9>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 죄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고 반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겉으로는 회개의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것이 종교적 제의, 즉 예배나 기도 헌금 봉사 등으로 통해 잘못을 덮으려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런 외식일 뿐입니다. 그것은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잃고 잘못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일단 그 일을 멈춰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양심에 말씀하실 때가 있죠. 때로는 설교를 통해 또는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그 일은 잘못되었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죠.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합니다. 

 

그동안 애쓰고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또는 관계 맺은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 질까봐, 잘못을 인정할 때오는 시선의 불편함으로 인해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많겠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멈춰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합리화 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거나 또는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고 용기입니다.
그 자리에서 결단하고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겉으로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들이 행했던 악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들의 지혜를 모아 난관을 헤쳐가려고 시도합니다.

 

그들이 내놓은 해결방안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이스라엘 총회에 올라오지 않는 족속을 찾아 그들을 학살하고 여인들을 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7-12절>
“7.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동족간에 잔혹한 학살이 진행됩니다. 더 잔인한 것은 처녀들을 남기고 다 죽이고 그 여성들을 베냐민 지파의 아내로 주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던 여성들을 끌려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 총회가 결정한 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인간들이 지혜를 모아 합리적 결정을 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으면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도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 이것이 착각일까요?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큐벌리 고등학교 교사 론 존스는 역사수업에서 홀로코스트를 설명하던 중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학생들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나치는 10%밖에 되지 않았는데 90%의 사람들은 유태인의 대량학살을 막지 못했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론 존스는 한가지 실험을 제안합니다. 실험의 명칭은 제 삼의 물결(The Third Wave)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공동체의 상징으로 파도무니의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파도가 되어 새로운 운동을 일으킨다는 의미였습니다. 두 번째로 통일된 구호와 경례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로 공동체의 회원증을 만들어 정체성을 갖게 하였습니다. 특히 십자표가 그려진 회원증을 몇 명의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키시는 “갈매기 군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실험 첫째 날부터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차렷 자세를 유지하는 것과 대답은 항상 세단어 이상을 넘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후에는 한상 존스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저는 어디에 소속된 느낌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 파도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하며 단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의 조리사는 파도무늬 쿠키를 만들어 격려하였고 학교의 교장도 파도 경례를 하였습니다.

존스 교사는 이러한 학생들에게 너희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며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처음 30명으로 시작한 운동은 셋째 날 2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넷째날 존스는 실험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을 느끼고 종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에 급격히 연루되었고 그들의 충성은 무지막지 했습니다.  

존스는 실험 대상이 된 학생들에게 이 운동은 사실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운동의 일환이며 다음날 이 운동의 창립자께서 위용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험 5일째 존스는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 상황이며 그래서 우리가 학교, 회사, 병원등 모든 기관으로 파도운동을 확대해서 조국을 구해낼 것이라고 말하자 모두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파도 운동의 창립자께서 그 위용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화면에 등장한 지도자.
그는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존스교사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중 누구도 독일 시민이 그랬던 것처럼 조종당하고 추종자가 되고 광기에 사로잡힌 이 집회에 제 발로 걸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싶지 않을 거야”

 

여러분!,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떠난 자들이 함께 모여 지혜를 모으고 문제와 난관들을 헤쳐나 가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한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벨탑을 어떻게 쌓았는가 하면, 벽돌과 역청으로 쌓습니다. 벽돌은 규격화 된 돌을 말합니다. 이미 이때부터 도량형이 통일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량형이 통일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제국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시황이 천하통일 이후에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도량형을 통일 시키는 것입니다. 도량형이란 부피, 무게, 길이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이 통일되어야 통합과 통제가 가능합니다. 바벨탑은 단지 인간이 높은 성을 건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하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때 인간은 과학문명이 발전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 꿈이 사라졌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집단적 죄가 얼마만큼 악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불과 60여 년 전 같은 형제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인간의 집단적 죄악은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학생 3명과 여학생 1명이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생 A 군(14)을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의 한 아파트로 불러내 집단폭행한 뒤 추락사시킨 사건이다. 경찰조사 결과 A군을 이미 죽이고 나서 자살로 위장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죠.

죄가 집단성을 띨 때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집단 속에 숨겨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여 인간을 흩으시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모이면 죄가 과격하게 번성하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스라엘 총회의 집단적 죄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자른 여성 200명을 충원하기 위해 베냐민 지파에게 실로에 예배하려 온 여인들을 강제로 납치하라는 결정을 하기에 이릅니다.

여러분! 인간 죄악의 악순환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끊을 수 없습니다.
한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으로 시작된 일이 결국 한 지파의 멸절로 이어지고 이것을 만회하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은 더 큰 죄악으로 번져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사기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각자 자기가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모습은 비참할 뿐입니다.

 

이렇게 항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과 다릅니다. 저는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때리거나 욕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비록 말과 행동으로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의 생각은 잔인했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으로 사람을 죽였어도 여러 명 죽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생각까지도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 중 그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항변하며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절에 들어가서 평생 수행하면서 죄를 뉘우치면 이러한 내가 변화될까요? 그리고 나의 죄는 사라질까요?

여러분 신앙생활 오래 하시면서 변화되셨습니까?


사실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노력하지요.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발견할 때마다 뉘우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새 사람이 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노력을 할지다로 변화되거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 그 참혹한 현실은 우리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 위해 인류의 역사 가운데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담당해야 할 모든 죄의 진노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히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들입니까?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내 자신이 정말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이러한 무가치한 자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남은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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