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11-12 14:42

에베소서 강해 39. 성도답게 말하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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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FL-_FuQn3I

 

에베소서 강해 39. 성도답게 말하라

 

에베보서 5:3-7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에베소서 강해 39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인 삶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들의 말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4장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지요. 기억나십니까?
4장 25절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도 말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이렇듯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의 언어습관에 대하여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말은 단순히 의사표현의 수단이거나 대화의 수단 그 이상입니다.
말은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 영상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Lvntfdy9av0

 

오늘 본문말씀을 보니까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먼저 언급합니다.
3절에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고 하십니다.

음행은 간음이나 부도덕한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온갖 더러운 것은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불결한 것들을 말합니다. 음담패설과 같은 의미입니다. 탐욕은 필요이상으로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으로서 불의한 이득, 폭력에 의한 탈취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을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한 것은 너희 입에 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러한 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서도 안 되고 너희 입에 그 단어조차도 입에 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예 근본적으로 차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사회에 급격하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직장내에서 성적수치심을 느낄 만한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그렇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다가 국민의식과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이런 부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2천 년 전부터 이러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성도에게 마땅한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그에 걸맞은 교양과 성품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배움이 깊던지 짧던지, 살아왔던 살의 과정이 평탄했던지 또는 어려웠든지, 우리의 부모님이 교양이 있었던지 그렇지 않았던지, 지금 내가 성도가 되었다면 그에 걸맞은 교양과 성품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4장에서 옷을 벗고 입는 것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성도다운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도답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성품이 요구되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의 말입니다.

 

만일 제가 성도님들과 대화하면서 음탕한 말이나 추잡한 것을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이 말에는 목사라면 ‘이래야 된다.’ 라는 정체성 그리고 당위성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떠했던지 간에 지금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신분과 정체성에 걸맞은 말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4절에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누추함이라는 것은 추한말 사악한 말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 없이 문자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가?
4절에 “감사하는 말을 하라”
성도답게 말하는 것은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말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말을 하라, 기쁨의 말을 하라, 소망의 말을 하라, 칭찬을 하라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말이 바로 감사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항상 말로 표현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감사한 것이 많아도 마음에 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가 말로 표현되면 우리의 감사가 훨씬 풍성해집니다. 그 감사를 듣는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감사하고 있는 내 자신도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일 때 마다 먼저 감사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왜 없겠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할 일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먼저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감사할 것들을 찾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찬양으로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에서 목회할 때 한 자매가 홈스테이 하는 집에 아이를 데리고 교회 나왔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오지 않아서 물어보았더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치료를 마치고 교회에 온날 제가 물었습니다. 교통사고 당해서 많이 놀라고 힘들었지? 아이가 하는 말이, “아니요. 하나님께 참 감사했어요? 많이 다치지 않아서요.” 그 아이의 감사의 말이 제 마음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환자나 가족의 반응이 대체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하며 낙심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만하니 얼마나 감사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비록 암이지만 수술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
“교통사고로 차는 무숴졌지만, 이렇게 생명을 건졌으니 얼마나 감사해.”

이렇게 말할 때 우리 영혼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영혼도 힘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으니,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조건에서도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니 희롱의 말을 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지요.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5절입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너희가 성도로서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것이나 탐욕은 이름도 부르지 말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고 또한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음행하는 자들 온갖 더러운 자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불결한 자들을 말합니다. 탐하는 자는 불의한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입니다. 불법이나 편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사람도 가려서 사귀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과 도무지 사귀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행을 행하는 자들은 세상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형제 자매를 말합니다. 우리안에 이러한 자들이 있다면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가 해답을 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9-13>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다릅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당연히 구별된 말과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성도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타락한 말과 행실을 보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너희 중에서 내쫒으라”

6절에 보면, 이러한 자들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인다고 합니다.
헛된 말이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들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가 순결성과 거룩성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친다면 교회는 급속하게 영적으로 타락합니다.

시편 1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복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우리는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아직까지 기독교적 가치관이 확고하게 서있지 않는 분들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아무리 주일에 좋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어도 주변 사람의 한 마디에 쉽게 생각이 변합니다.

 

여러분들 주변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는 분들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처세술 능하고 세상을 영약하게 살아가는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대하여 말하는 분들과 함께 하셔야 합니다.

주변이 그러한 분들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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