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7-30 17:15

에베소서 강해 26.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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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YwzRHD9deE

 

에베소서 강해 26. 교회를 위한 기도 2.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3:14-19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교회를 위한 기도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그리고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네 가지의 내용을 간구합니다.
기도는 대부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간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이렇게 글로 쓰게 될 때에는 그동안 입술로 여러 가지 간구하던 것을 함축적으로 간결하게 정리하여 쓰게 되죠. 만일 여러분이 군에 있는 자녀들이나 외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할 때 그리고 그 편지에 여러분이 평소 하던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적는다고 할 때 어떻게 쓰겠습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자녀를 생각하면서 늘 기도하던 내용을 잘 정리하여 함축적으로 적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내용은 이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간구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우선순위의 기도 4가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의 간구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여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역시 중요하고 시급한 기도제목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당연히 우리가 가치 있는 것을 기도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가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가면서 우리의 가치관이 변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변해갑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이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구하는 내용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가장 좋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할 때 무엇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저도 보면 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이, 먼저는 건강하고 밝고 예의 바른 자녀로 자라게 해주세요. 기도합니다. 제 수준에서는 이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다릅니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도를 잘 배워서 먼저는 그가 기도하는 것들의 가치를 깨달으시고 또 우리도 여러분의 기도생활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첫 번째 기도의 내용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속사람이 무엇일까요?
속사람은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바울이 똑 같은 단어를 쓴 다른 곳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 질 것입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성경은 우리 존재를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나눕니다.
겉사람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입니다. 외모, 학벌, 스팩, 직업, 직위 같은 것이 겉사람에 해당합니다. 속사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혼, 인격, 품성을 말합니다. 겉사람을 형식이라고 본다면 속사람은 본질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제 모습은 저의 본질을 담고 있는 형식입니다. 형식은 언제든 변하고 바뀝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변하는 것이 형식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 주름살도 생기도 몸에 기력도 쇄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것처럼,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질보다는 형식을 치장하는데 많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은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러 경험을 함께 하면서 알 수 있지만 겉사람은 단시간에 쉽게 파악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겉사람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의 삶의 많은 시간들을 겉사람을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겉사람은 쉽게 변질하고 외부적 환경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육신은 뜻하지 않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쉽게 무너집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이 죽으면 몸의 부패와 해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죽지 않죠.
남자들에게 있어서 직업이나 직위는 겉사람에 해당합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바쳤던 직업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여성들에게 있어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머리는 희어질 것이고 얼굴에 주름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외국에 있던 분들이 한국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들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는 특히 겉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나 학력을 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외국 공항에 있으면 한국 승무원이 지나갈 때 모두가 쳐다봅니다. 다 예쁩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기품있게 걸어다닙니까? 외국항공사 승무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푸근한 아주머니들이 많습니다.

 

전에 한번은 비행기 뒷자리에 않아있는데, 승무원 선배가 후배를 혼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배식하는 시간이었는데, 후배가 뭘 잘못했는지 이런 저런 욕을 해대면서 혼내는데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거친 욕을 해대던 그 승무원이 방금 전에 저에게 와서, 뭐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 (도레미파)‘솔’음으로 친절하게 물어봤거든요.

 

우리는 겉사람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고,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이 겉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외모, 학벌, 직업, 직위, 연봉, 스팩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합니다. 좋은 대학가야죠. 대기업이 좋죠. 그런데 이러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사람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깨끗함과 마음의 단단함과 성숙함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도 우리의 겉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속사람을 보십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울 때입니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여 오게 합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주목하여 보면서 누가 과연 여호와께서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실 자인가를 보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어 배우자감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우리 청년들이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 여러분들 이라면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또는 교회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를 선택할까? 어떤 목사님이 영적 지도자로 합당할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사무엘은 과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누가 과연 합당할까 할 때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당연히 그도 겉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이 엘리압 앞에 섭니다. 그의 훤칠한 키와 단단한 몸 그리고 남성다운 외모를 보면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판단합니다.
<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그러나 그 판단은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의 영혼과 마음입니다. 그의 영혼이 얼마만큼 맑고 깨끗한가? 그 마음이 얼마만큼 단단하고 또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가?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맞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전쟁터에 누가 있었는가 하면 엘리압이 있었습니다. 그의 겉사람은 장군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의 겉사람이 아무리 장군감이라고 해도 골리앗을 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때 교회가 우리도 골리앗이 되자고 외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세상을 호령하는 골리앗이 되자고 외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성공하고 높은 고지를 점령하여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세상에서 성공한 분들을 모셔서 간증을 듣고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공도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한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장로나 직분자들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로 포진시켜 ‘여러분들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합니다.’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교회가 겉사람에 치중했던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판단할 때 겉사람을 봅니다.
교회의 규모, 프로그램, 주차의 편안함, 목사의 학벌, 찬양단의 웅장함, 예배당의 화려함 등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골리앗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하지만 또한 부러워하기에 교회도 그것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만사가 형통하고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외치면서 골리앗처럼 비대해 지기 원했고 또 그렇게도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겉사람은 커지고 비대해졌을지 모르지만, 속사람은 여전히 연약한 아이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골리앗이 되려고 했을까요?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골리앗보다 더 커지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엘리압 앞에선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 아들이었던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줄 음식을 가지고 전쟁터로 나옵니다. 그곳에서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에 참지 못하여 사울왕에게 부탁하여 전쟁에 나가게 됩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의 갑옷이 맞지 않을 만큼 외소하고 작고 어린 나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주저하지 않았고 담대하게 물맷돌을 던져 그를 죽이고 승리하게 됩니다.

다윗은 속사람의 강건함, 그것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이 었던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맨 앞에 앉은 제 친구가 늘 맨 뒷자리에 있는 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키가 크고 이미 수염이 났을 정도록 성숙했던 녀석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앞자리에 와서 작은 아이를 툭툭 건드리고 점심이면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맨 앞자리에 있던 친구가 참지 못하였던지 뒷자리 친구에게 ‘학교 끝나고 남아’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학교가 끝나고 저를 포함한 여러명의 아이들이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대결이 시작된 것입니다.
큰 아이가 조롱하듯 말합니다. “자 때려봐, 어디 덤벼봐”
그러자 작은 아이가 큰아이의 눈을 무섭게 째려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말합니다.
“네가 먼저 나를 때려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일 듯이, 만일 내가 죽지 않으면, 너는 나한테 죽는 것야”
그 말을 들은 큰아이가 부들부들 떨면서 때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벌써, 35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앞자리 아이의 표정이며 그 단호함, 그 담대함,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힘센 큰 아이로부터 모두가 작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속사람이 어떻게 강건해 지는가? 
오늘 말씀 보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가?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방식으로 강건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떠날 것인데 너희가 염려하지 말라. 오히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위해 보혜사 성경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보혜사는 원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곁에서 돕는자, 위로자, 변호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비록 약해도 보혜사 성령께서 약할 때 힘을 주시고, 힘들 때 위로하시며, 위축될 때 담대함을 주시는 방식으로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게 하시고,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주셔서 난관을 극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도망갔던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는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고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으며 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순교자가 되었을까?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자 두려움의 사람이 담대한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성격이나 성품 자체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두려움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에게 담대함을 주신 것입니다. 그에게 담대함이 필요할 때마다 함께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 강함을 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죠. 그런데 필요한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십니다. 지혜가 필요할 때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을 주십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내력을 주십니다.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역경에 넘어지지만,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도록 복원력을 주십니다.

바울이 이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건함의 크기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 풍성함이 크기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그러니 이 강건함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기도이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님께서 오셔셔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의 크기로 우리에게 채워주소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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