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8-13 12:03

에베소서 강해 28.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게 하옵소서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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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8. 교회를 위한 기도 4.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강해 28번째 시간입니다. 교회를 위한 기도로는 4번째 시간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게 하옵소서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바울의 기도를 살피고 있는데요. 첫 번째 기도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했고요, 두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였죠. 오늘 세 번째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게 터가 굳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함께 볼까요? 17절을 보시면,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지금 바울은 이 기도를 하면서 큰 나무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치 큰 나무처럼 대지에 뿌리가 깊게 박혀서 자라기를 기도하는 것이죠. 또 튼튼한 건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튼튼한 건물이 굳은 터에 서있는 것처럼, 성도들이 튼튼하게 서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죠. 여기서 뿌리와 터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기초와 기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우리의 신앙의 집의 기초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잘못되어 있으면 우리의 신앙이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간혹 목사로서 안타까운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체로 신앙의 뿌리를 잘못 내린 분들입니다. 신앙의 집의 터를 잘못된 곳에 두신 분들이십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과의 관계성에 신앙의 뿌리를 둔 분들이 계십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좋아서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입니다.
또는 목사를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의존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죠.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반드시 실망하고 낙심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좋을 때 한없이 좋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실망이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보통 청소년기에 이런 신앙으로 교회에 첫발을 디디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 좋아서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도 우리를 부르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청년들의 경우에 좋아하는 형제나 자매를 따라 교회에 첫발을 디디는 경우도 있죠.
그 연애가 결혼으로 열매 맺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경우에 부모님의 강압에 못 이겨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죠.

사람과의 관계가 신앙의 뿌리가 되면 반드시 그 신앙은 흔들리고 무너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든 변하기 때문이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사를 가기도 하고, 존경했던 목회자에게 실망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신앙의 뿌리를 신비적 경험이나 체험에 두는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경험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다던가(환상이죠) 들었다던가(하나님의 음성)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기는 하지만 신앙의 뿌리는 되지 못합니다. 체험적 신앙은 계속해서 체험을 추구하게 합니다. 내 삶에 계속적인 영적 체험들이 있어야만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당도 작두를 탑니다. 스님들도 귀신을 내어 쫒습니다.
신비적 체험이나 경험은 신앙의 뿌리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의 뿌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의미하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할 때 그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결혼의 목적이 결혼식이 아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그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 합니까? 저 멀리 우주에 있다고 합니까? 아니요. “너의 가운데 계시니.”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저는 이 진리를 여러분들이 꼭 믿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이곳에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나에게 구원을 베푸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며 사랑을 고백하듯, 하나님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반려 동물을 아무리 사랑해도, 개나 고양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하사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 되고 우리는 그 분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고 우리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바로 이러한 관계로 부르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앙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신앙의 기초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여러분의 신앙을 세우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사랑에 뿌리를 깊게 내릴수록 여러분의 신앙은 더욱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예수 믿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먼저, 그 사랑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가족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가족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방문이 갑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마르다는 집안 정리며 음식준비로 마음이 분주하였습니다. 반면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주님께 요청합니다. 예수님 제가 너무 바쁘고 분주한데 마리아에게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했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이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분주하게 일하는 보다 함께 하시길 기뻐하십니다.
일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정서적으로 문제를 겪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경우입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충분한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하면 청소년기부터 정저적인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을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인정욕구가 강하여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공허함과 결핍을 잊기 위해 늘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다 모든 것이 안정되면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계속 일을 만들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인생이 피곤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내릴 때 건강하고 그 줄기가 뻗어나가듯 인생도 뻗어나갑니다. 반면 그렇지 못하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들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삶이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모든 결핍들이 온전하고도 충분하게 채워집니다. 그 결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분들을 또한 보게 됩니다.

 

자신의 과거를 탓하고 사람을 원망하며 주저앉은 사람도 있지만, 그 힘든 고난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감격하며 현재의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소망하며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내 삶의 뿌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두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이 차이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근간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랑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입양자녀들을 뿌리 찾기가 기억났습니다.

2년 전에 어릴 적 외국으로 입양한 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한국에 뿌리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얼굴만 한국인이지 뼛속까지 자신이 자란 나라의 사람이었습니다. 생모를 찾은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국내 입양자녀들도 만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생모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뿌리 찾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날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신이 왜 입양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엄마가 날 사랑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분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했는가?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를 낳았다는 것 자체가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웠겠죠.
세상이 무섭고 키울 환경도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입니다.
버려진 아기가 아니라 지켜진 아기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난 모든 생명은 그 뿌리가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연약하고 부족해서 건강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을 뿐이지, 모든 생명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모의 사랑이 비록 온전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충분하고도 넘쳤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부모의 희생적 사랑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완성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영원토록 함께 살아갈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모든 행동은 결국 사랑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면 굴복될 수 없는 완고한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설득당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때린다고 강압한다고 사람이 변하거나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인격의 특징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조차도 그렇게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할 때에 막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막는다고 또는 때린다고 마음에 품은 생각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적인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무조건 복종하는 인간은 로봇과 같아서 그런 존재는 창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 앞에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만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고 그 사랑을 나눌 자신의 형상을 닯은 인격적 존재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과 선택으로 거역하고 불순종을 택합니다. 그러한 자들을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사랑을 나타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 줄 아는가?
십자가를 보아라.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설득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영어성경은 확증이라는 단어를 demonstrates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극명한 증거를 통해 나타냈다는 의미입니다. ‘시위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줄여서 데모라고로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시위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 줄 아는가?

나의 독생자를 너희를 위해 줄 만큼 사랑한다고 보여주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롬 8:35-39>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죽음의 위협까지도 넉넉히 이긴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가장 두려운 게 죽음인데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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