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9-11 13:38

에베소서 강해 30.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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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wHi1IIviSw

 

 

에베소서 강해 30. 교회를 위한 기도 6. 하나님의 충만함에 이르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강해 30번째 시간입니다.
교회를 위한 기도로는 6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보게 될 기도의 내용은 그 스케일이 너무나 크고 대담하여서 과연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드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내용은 이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이 기도의 스케일이 굉장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가장 위대한 기도이며 그 이상의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충만함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충만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충만함

충만함은 원어로 ‘플레로오’인데 가득차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컵에 물이 가득차서 흘러넘치는 상대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라고 할 때는 여러분은 어떤 것을 떠올리십니까?
충만이란 단어를 하나님과 연관하여 검색을 해니까 이런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출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민 14: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33: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시 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사 33:5>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구약성경에는 충만함이라는 단어가 주로 영광이란 단어와 함께 쓰였고, 기쁨, 공의, 정의, 인자함 등과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함을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고 할 때 그 영광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인격, 능력과 같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피조세계 가운데 나타날 때 그것을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정의, 공의, 거룩함, 기쁨, 인자함, 사랑, 지혜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어디에 나타났는가? 온 땅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사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즉 창조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다는 것입니다.
꽃 하나만 보아도 하나님의 지혜와 아름다움의 충만함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늘의 구름과 바다의 물고기와 한밤중에 떠 있는 별들만 보아도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혜, 거룩하심, 사랑, 능력 등 이 모든 것이 피조세계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아내 뱃속에 이제 7주가 된 아기가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병원에 갔을 때, 이제 7mm라고 합니다. 쌀알 정도의 크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초음파로 아기를 확대했을 때 심장이 있었고 그것이 뛰고 있었습니다. 7mm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그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도 엄마 배속에 있을 때 그와 같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완전한 신체를 형성하지 않아서 충만하지 않았고, 지금은 충만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생명의 씨앗이 심겨질 때 그 씨앗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거목이 처음부터 거목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씨앗이었습니다. 그 작은 씨앗이 심겨져 자라 거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나무에만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있는가? 그렇지 않죠. 그 작은 씨앗 안에 하나님의 충만함이 깃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한 것입니다. 나무에게도 그리고 씨앗에게도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성삼위 하나님께서 의논하셨습니다. 그만큼 신중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다닙니다. 무한 광대한 우주 안에 먼지보다 더 작은 지구라는 땅 안에서 그보다 더 작은 인간이 우주를 상대로 그 공간 안에 활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 세우는 문명의 위대함을 보십시오. 두바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화려합니까? 그 도시는 모레위에 지은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화려함이 대단합니다. 

 

인간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충만함의 흔적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의 흔적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충만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우주를 날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한치 앞의 일도 알 수 없어 늘 불안해합니다.
문명의 풍요로움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인간성은 소멸되고 있고, 소외와 외로움과 우울증에 삶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인간은 충만함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인간의 결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충만함은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 삶을 충만하게 채운다고 하여도 충만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만이 우리를 충만하게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에서 추락한 인간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충만함에서 추락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성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핍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결핍의 상태에서 충만함을 찾으려는 본성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허기지면 밥을 찾게 됩니다. 아무리 물을 먹어도 배고픔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반면 목마름은 물로 채워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결핍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이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보면,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은 여행담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행담은 대부분 무언가를 추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모습이 여행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학작품이 가장 오래되었고 또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날 때 인간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외적인 목표가 있고, 또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내면적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2002년 뉴질랜드로 떠난 이유는 선교훈련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표면적 목표였고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에 깨달은 것은 사실, 목사가 되기 싫어 도피했던 것입니다. 또한 외국생황에 대한 동경도 있었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회사를 때려치우고 뉴질랜드로 간 것이 표현적으로는 선교훈련이었으나, 그 내면에는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그 내면적 이유를 자신조차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도 여행과 같이 언제나 외적인 목표들이 있죠. 대학에 입학하기,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자식을 잘 키워 좋은 대학 보내기 같은 것들.
그러나 이러한 목표들이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우리의 삶이 충만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내면적 목표 이상의 근원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도 결코 이루질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근원적인 목표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채워지기 전까지 우리의 영혼은 결코 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삶에 다 채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결핍을 느낄 것이고 삶은 허무할 것이며 만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또 다른 것들을 찾게 계속해서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에 들어가면 내 삶이 충만해 질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까지만도 대학의 낭만이라는 것이 있어서, 캠퍼스 잔디에서 기타 치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그런 것 기대하고 공부했습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비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한숨을 보아야 했고,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들을 해야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안정되고 연봉 높은 직장에 들어가면 뭔가 삶이 만족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집도 장만하면 뭔가 내 삶이 풍요로워 질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소망으로 현재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까지 가는 삶이 너무 치열하고 피곤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내어 얻은 것들이 내 삶을 충만하게 채우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깨달아야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원하던 것들이 내 삶을 충만하게 하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것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놀 때 일해야 했고, 나를 위해 변변한 옷 한벌 사지 않고 모으고 모아 삶의 기반도 잡고 집도 마련했습니다.


감사하게 자식들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은 불안합니다. 때론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흔들리는 이유는 일시적이고 흔들리는 것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자신이 추구했던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 삶을 화려하게 해주었던 돈도, 많은 사람을 따르게 했던 직위도,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주위에 없고, 외롭게 남겨진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비참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충만함,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셨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부유했습니까? 가난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가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편안한 집에서 순조롭게 태어나지 못하셨습니다. 나실 곳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뉘일 곳이 없어 말 밥통 위에 놓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셨고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가사 일을 도와야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진행하실 때도 주무실 곳이 없어 노숙하실 때도 많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하실 때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처럼 부족한 삶을 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기뻐하셨고 쉬지 말고 기도하셨으며 범사에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인간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신의 본성이 나오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셨기에 가장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죄인을 향해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해달라는 것은, 결국 예수님처럼 살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결국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 기도가 목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충만이 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함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게 못할 뿐입니다.
영적으로 둔감하여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 그 충만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모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옵소서.

 

충만함의 실제

그렇다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산수훈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케 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
마태복음 5장 48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즉 앞에 있는 내용의 결론인 것입니다.
앞의 내용이 이것입니다.
39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로,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40절,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주어라
41절, 누구든지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4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혹자는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천국에서 이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지키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우리의 빰을 때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우리를 거짓 고소하는 자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원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인류역사상 그 어떤 탁월했던 영적 지도자도 이와 같은 것을 목표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너희도 온전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위대한 목표를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준을 낮추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룰 수 없다고 이 위대한 목표를 거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셨던 하나님의 충만한 삶으로 우리를 끌어올리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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