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6-04 16:05

에베소서 강해 19. 그리스도와의 연합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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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9. 그리스도와의 연합

 

에베소서 2:4-7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강해 19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가장 큰 축복은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만 구원이 아닙니다.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소극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적극적 의미로 그분의 의의 백성이 되고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휘오데시아”. 기억나십니까? 하나님의 입양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희수와 의성이가 입양된 것은 그 자체로도 귀한 일이지만 더 큰 축복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모가 베풀어 주는 사랑과 돌봄을 받는 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그 자체로 큰 축복이죠.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데 있습니다. 구원의 축복은 그것을 이미 여기에서부터 누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구원의 목적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구원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요?
그것은 창조주의 은혜와 사랑을 함께 누리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찬송하는 존재들로 창조하신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요한3서 4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이것은 요한이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말씀으로 임하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 긍휼의 풍성함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분의 큰 사랑 때문에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연약함과 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거룩하셔서 빛 가운데 계신 분이신데, 어떻게 어둠가운데 있는 나와 함께 공존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오늘 나눌 중요한 주제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우리가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해답을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따라해 볼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Union of Christ.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5절에 보니까,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에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었는데, 그러한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죽으시고 살아나셨습니까? 또 언제 일으키심을 받았고 하늘에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아계십니까? 2천 년 전입니다. 그때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승천하여 지금은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2천년 에 사건을 소환하여, 그때 너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또 살아났고 일으킴을 받았고 하늘 보좌 우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말입니다.

 

여기서 시점이 중요한데 완료형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모든 것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이미 하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우리가 2019년 6월 1일 11시 40분에 하기동 예배당에 모여 있는데 어떻게 하늘 보좌에 있다는 말입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의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편에서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죠.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리의 존재는 이미 창세전에 그 분의 마음 안에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정과 택정하심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역사 가운데 보내셔서 이 땅에 살게 하셨고 우리 삶을 섭리하사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우리를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하사 하늘 보좌에 앉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죠.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한 점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선으로서 이해하지만 하나님은 점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할 때 마음에 생각하고 그것을 계획을 옮기고 실행하고 하고 완성할 때 환경이 바뀌거나 능력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마음에 생각하신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창조 때에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택정하셨다면 그 구원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드라마 작가들은 시청자들의 의견에 의해 때로는 처음 의도했던 내용에서 바꾸기도 하죠. 시청률이 안 나오면 조기에 중단되기도 합니다. 또 시청률이 높으면 늘리기도 합니다. 또한 스토리 내용도 바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스토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대로 이루어집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도 그분의 스토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합니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작정과 섭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분의 선하심의 결과입니다. 지금은 당장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의 삶을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완전하고 선하신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스토리는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것을 살아내고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택정을 입은 자녀들이다. 너희 삶을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그리하여 결국 너희는 하늘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고 했을 때,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으로 이 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 존재를 끌어안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신비적 연합또는 초월적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2천 년 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여러분과 제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도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죽은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영적으로 부활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썩고 있지만 우리의 영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육신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께 영으로 즉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이 지금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 연합을 피조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4가지 비유적 표현을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결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결혼으로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5장에 가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맺은 관계를 표현하신 방식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의 남편이고 너희는 나의 신부이다. 계시록에는 교회가 신부로 주님이 신랑으로 표현되고 있죠.
부부는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적 결합을 포함하여 모든 부분에 있어서 연합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전혀 관계가 없던 남녀가 둘이 만나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어 연합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또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생명을 얻고 열매 맺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몸의 비유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각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합된 것입니다.

 

네 번째 성만찬을 통한 설명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연합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성만찬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가장 일상적인 식사의 방식을 통해 자신과의 연합을 표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제가 뉴질랜드에서 현지인 교회에서 사역할 때, 우리처럼 성찬을 매월 첫 주에 행했습니다. 그 성찬 때 마다 부르는 찬송이 있었는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He took the bread, ordinary bread” 주님은 빵을 때셨습니다. 평범한 빵입니다. 처음엔 이 가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굳이 ordinary bread 평범한 빵이라고 할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주식이 빵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밥입니다. 또 포도주는 물 대신 먹는 음료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이 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포도주에 물을 타서 음료수로 먹은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마시는 물입니다. 밥을 먹고 물을 먹는 것은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에 주님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너희가 먹는 빵은 나의 몸이다. 이것을 먹으며 나를 기념하라. 또 식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신 것입니다.

당시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지만, 생존을 위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 삽니다. 그런데 그렇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언가를 죽이는 방식으로 나의 생존을 유지합니다. 내가 밥을 먹을 때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쌀은 죽습니다. 내가 채소를 먹을 때 살아있던 것을 죽이면서 먹는 것입니다. 육고기나 물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나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것이 내 몸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생존을 이어갑니다.

 

주님은 이렇게 너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통해 생존하듯이, 나의 생명이 너희를 위해 죽음으로 너희가 영생을 얻었고 또 풍성히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라고 일상적 식사를 통해 그분의 죽으심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월 거행하는 성찬식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식사 때마다- 이것을 행할 때 마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 –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도 이 음식을 먹고 살아가듯이 주님이 나를 위해 몸 찢기시고 피 흘리셔서 내 생명이 살아났구나, 그리고 이 음식이 내 피와 살이 되어 나를 형성하듯, 주님께서 내 안에 성령으로 임재하시는구나”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이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해 확인하셨듯이, 주님은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았으며 일으킴을 받아 하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을 역사 가운데서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aSexKa58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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