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6-25 13:36

에베소서 강해 21. 그러므로 생각하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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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1. 그러므로 생각하라

 

에베소서 2:11-13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며 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토요일 오전은 주로 아이들과 함께 수통골을 산책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퀵보드 타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가 신나게 퀵보드를 타고 앞을 달려갑니다. 한참 달리다 뒤돌아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이게 가장 큰 축복은 가정이구나. 바라봐 주는 엄마와 아빠구나. 엄마와 아빠가 있기에 티 없이 맑은 모습을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기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최고의 상급인 것이죠.
하나님 자신이 상급인데 무엇을 더 바란다는 말입니까?


이런 재미있는 예화 있잖아요?
주보를 담당하는 자매가 그 주의 설교제목 뒷부분이 잘린 것이 뭔가 이상해서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본문이 시편 23편인데, 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되었는데. 그 뒤에 더 없습니까? 목사님 대답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 목사님께서 주보를 확인하는데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설교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면 충분한 것이죠. 다른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라로 부르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과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을 교회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구원은 관계성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 구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분리되었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된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입니다. 법적인 의미에서는 죄가 용서되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된 것이죠. 거기서만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죠. 이러한 관계를 의로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여기서만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반드시 이웃과의 바른 관계로 흘러가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인 죄에서 벗어나 이웃을 착취하여 나의 삶의 확장시켰던 삶에서 돌이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유익과 욕망을 추구하는 삶에서 이웃의 필요에 눈을 뜨게 되고 그들을 섬기는 자들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이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이웃과의 화평의 관계로 확장되었음을 말합니다.

지난주에 은혜에 대하여 말하면서 삭개오를 예로 들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웃을 착취하여 자신의 삶의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삶이었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후 그는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룬 화평이 이웃을 향해 흘러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후반부는 은혜의 개인적 차원에서 확장되어 공동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는데 원어로는 “오이코스”입니다.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가족입니까? 작게는 지역 교회 공동체입니다. 지금 여기 모여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오이코스 즉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확장되어서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가들과 가족인 것입니다.

또 22절에 마지막에 너희가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하죠. 나 홀로 독불장군처럼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함께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입양되어질 때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 안에 연약함과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쁜우리교회 공동체로 모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 각자는 부족함도 많고 연약하기 때문에 서로를 오해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며 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먼저 지상 교회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합니다. 교회는 착한 천사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갈등과 상처 오해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죠. 하물며 교회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어느 정도 건강한 거리를 두고 교제하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고 친밀해지기만 하면 실망하고 오해하고 갈등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은혜가 이웃에게 흘러가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로 시작합니다.
원어로는 “므네모뉴오”입니다. 기억하라 생각하라는 의미로 NIV 성경은 Remember로 번역했습니다.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생각하고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인가? 너희가 구원받기 전에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1절 이방인이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12절 그리스도도 밖에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던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 삼는 방식을 말하는데, 그것과 전혀 상관없던 자들이었음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그렇죠? 우리에게 소망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흔들리고 사라지는 소망을 소망으로 붙잡고 살았던 자들이었죠. 영원한 소망은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하나님의 존재는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은혜를 받았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라,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바셈’이란 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막상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눈물 없이 관람할 수 없을 만큼, 유대인이 당했던 지난 역사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시관 맨 끝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그들을 용서는 해 주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유대인들은 히틀러에게 6백만명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후 6백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으면서 눈물로 민족의 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그들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

 

나라의 치욕적인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개인적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어떠한 죄인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나의 비참했던 죄인의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실수나 잘못에 집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자들인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잊지 말라.

이 말씀이 어떠한 배경에서 주어지고 있는가 하면, 면제년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면서입니다. 7년에 한번씩 면제년이 되는데, 이때 이웃에 꾸어준 것은 면제하고, 가난한 자들이 있으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되 쓸 것을 넉넉히 주고, 또 동족중에 종이 된 자가 있다면 그들을 자유인으로 풀어주되 쓸 것을 후하게 줄 것을 명합니다.

그 중간에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은 너희도 애굽에서 종으로서 종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않을 때 이웃을 향한 너희의 삶의 자세가 후하고 풍요해 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은 아파본 사람이 압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해본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돕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의 그 아픔과 어려움이 이웃을 조금 더 이해하고 돕고 섬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은혜 받기 전의 상태를 기억하고 잊지 않을 때,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이 우리에게 몇가지 유익을 줍니다.
첫 번째는 나의 존귀함뿐만 아니라 이웃의 존귀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참한 죄인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형제와 자매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받은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존귀하듯 그들도 존귀한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화요일에 시찰회차 저희 교회에 오셨고 예배당이 넓어지고 또 부흥한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전화하셔서 하시는 말씀이 “심목사님, 성도들을 성심껏 섬기세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종 아닙니까? 종이 주인의 자녀들을 섬기는 것이죠. 그렇게 섬기세요.

그렇죠. 종은 섬기는 자로 있는 것이죠. 오늘날 “주의 종” 하면 무언가 대접받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죠. 섬기는 자로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종의 사명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자녀를 섬기는 것이고요.

우리가 교회 안에 형제자매를 대할 때 존귀한 주님의 자녀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분의 자녀 삼기 위해 독생자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교회의 형제, 자매들 한분 한분이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사신 자들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존귀하듯 그들도 역시 존귀한 것입니다.

 

두 번째 유익은 이러한 기억을 통해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연약함과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신 예화입니다.
어떤 종이 주인에게 만달란트를 빚진 것입니다. 주인이 그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을 팔아 갚게 합니다. 그러나 도무지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닙니다. 그가 주인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내가 갚을테니 참아주소서, 사실 도무지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하면, 6천만일을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벌어야 갚을 수 있는 것이죠.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것을 탕감해 줍니다.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납니다. 멱살을 잡고 빛을 갑으라고 합니다. 백데나리온은 100일동안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것을 동료들이 보게 되었고 이 사실을 주인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일만달란트 빚진자를 잡아오게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죠. 죄는 빚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고 용서하셨습니다. 만일 그 은혜를 진정으로 받은 자라면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죄인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용서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용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서로를 향하여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합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서 쓰인 하나님의 집은 원어로 오이코도매, 오이코스 가족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오이코스’로 사용합니다.
<히 3:6>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을 오이코스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권속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를 가족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족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십니까? 좋을 때도 있지만 갈등하고 싸울 때도 있지요. 서로가 다름으로 인해 갈등할 때도 있고 연약함 때문에 상처를 줄때도 있습니다. 내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또 받을 때도 있죠. 그래도 가족이기에 용납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엡2: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공사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더럽고 지저분합니다. 이 땅의 교회공동체는 불완전합니다. 공사중입니다. 내 자신만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가, 형제 자매를 향하여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의 죄악 됨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을 꺾고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가 교만해 지는 이유는 내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참 오랜만에 반가운 분을 만나게 되어, 잠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면 신앙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씀을 하세요. 이분이 원룸을 관리하시는데 한 청년 방이 쓰레기 창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인데 자기 잠자는 공간 빼고 쓰레기로 방이 가득한 것입니다. 보니까 치우려고 한 흔적이 있긴 한데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확 화가 치밀러 오르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더랍니다. “네가 과거에 그러했단다. 너의 마음과 영혼이 쓰레기로 가득했단다. 그러한 너를 건져 주었단다”

이분이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3일 동안 이것을 치운 것입니다.

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 학생이 미운 것이 아니라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긍휼한 마음으로 이 학생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어떠한 자리에서 은혜를 받았는가를 기억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행여 감사 보다는 불평이 자리 잡지 않았습니까?
형제와 자매의 허물과 연약함이 자꾸만 보이십니까?
우리 안에 감사가 사라질 때 은혜 받기 전 우리의 상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분노가 일어나려 할 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내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지어저가는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직은 공사중이지만 이제 완공되면 영광스러운 그분의 자녀로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허물 많고 부족하고 연약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

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zEjJP6AX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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