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2-07 07:17

에베소서 강해 6.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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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6.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몇 가지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먼저, 존재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은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죠. 우리를 입양하셨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5절에 보면 “그 기쁘신 뜻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할까 말까 고민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얼마만큼 존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말 표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처럼 그렇게 나를 바라보시면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스바냐3:17(공동번역)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러한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존귀한 자들입니까?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시고 대하십니다.

 

두 번째 신령한 은혜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은 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한 성가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과정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루시는가? 그 일을 위해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4절을 보시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을 언급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을 규명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서의 삶입니다.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 몸이라는 것은 우리 존재, 우리 자신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인가? 할 때 그것이 2절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며 살아드리는 것, 이것이 제물로서 드려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있어서 삶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에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 것은 제물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새끼를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물의 문제가 아니라 가인의 삶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시면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인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한주동안 내 마음과 뜻대로 살다가 주일에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비록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려고 발버둥치며 살았던 자들, 그들의 예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가 과연 합당한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임이나 집회가 될 수 있지만 예배는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예배만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한주동안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다가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죠.

 

주일에 함께 모였을 때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되시며 인도자 되시는 성삼위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을 직장과 가정과 내가 속한 곳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과 예배가 일치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흠 없는 제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제물로 자들로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사역인가?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가? 이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없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어 가실 때 성화의 과정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어떻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로 이끄는가?
성경을 통해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거룩함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고전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룩함입니다.
여러분!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불평이 나오고 후회가 됩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죠. 그런데 과연 행복해 졌습니까?
행복이라는 목적으로 본다면, 나 혼자 사는 게 가장 편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미혼의 청년들도 잘 아셔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한다고 당장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행복이라는 목적으로 결혼을 하면 앞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결혼은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 속에서 행복은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녀들이 주는 행복이 있죠. 그러나 아픔도 많습니다. 이제 저는 그것을 조금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혼과 가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알아갑니다. 그 속에서 희생하고 섬기는 것을 배워갑니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설레는 감정이 아닌 포기와 희생과 섬김이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지독히도 말 안 듣는 아이를 품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거룩해져갑니다.
부부가 때로는 고함을 지르고 분노하지만 다시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거룩해져갑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인데 이전보다 조금씩 더 인내하고 오래참게 됩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사랑의 위대함과 능력을 배워갑니다. 이것이 어디로 연결되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오래 참아 주셨구나. 주님께서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징계와 연단입니다.
<히브리서 12:6-10>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께서 징계와 연단을 통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아들이 아니라면 징계할 이유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채찍질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요,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이기 때문이죠.”
왜 징계하십니까?
10절에, ‘잠시 자기의 뜻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의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에 이르게 하기 위한 의지가 있으시죠. 그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11절에 연단을 하시는 이유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들은 더럽고 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기 위해 징계도하시고 연단도 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더러움 속에 있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당장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신분은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품은 여전히 더럽고 추합니다. 한순간에 그러한 것들까지도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신분에 합당한 성품을 이루기 위해 징계와 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욥이 그의 고난 가운데서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연단이라는 단어가 불순물을 가려내고 순금을 뽑아내기 위해 단련하는 과정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연단의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그렇게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렇게 징계하고 연단하지 않으셨다면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온 삶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 가운데 자녀로서 거룩함의 자리에 세우시기 위해 때로는 징계하셨고 때로는 연단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벌은 부모가 포기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포기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버려둠의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롬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내어버려두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파라디도미’인데 ‘주도권을 넘겨주다’ ‘포기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라”라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하셨던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십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 말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일에 강해되는 성경말씀과 또한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통해 또는 시간을 내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통해서 거룩함을 이루어 갑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더러움을 들추어냅니다. 하나님 말씀은 빛이어서 숨겨진 죄악의 깊은 곳까지도 보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명의는 정확하게 진단하죠. 말씀은 우리의 더러움을 폭로시킬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이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킵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49-50>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의 길을 보여주는 등이요 빛이 됩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청년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보여줍니다.
<시편 119편>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흠이 없고 거룩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말씀으로 계속 인도해 가십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눈에 보이는 축복들로 다루시죠. 질병이 치유되거나 기도제목들이 응답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말씀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말씀중심의 신앙은 상황과 환경에 별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간혹 교회가 문제가 있고, 믿고 신뢰했던 목사나 성도들의 실망스런 모습에도 그렇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상황에 종속되지 않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고 예정하사 그 분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의 자녀답게 우리를 가꾸어 가십니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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