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2. 성도,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의 대상
에베소서 1:1-2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함께 나누게 될 내용은 수신자와 인사말에 대한 것입니다.
수신자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좀 더 정확하게 이 문장을 다듬으면, 성도들 다음에 콤마를 찍으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영어역본은 콤마를 찍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신인이 에베소 성도와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 두 부류가 아니라 에베소에 있는 성도, 즉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성도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성도라는 것은 거룩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라는 말을 처음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성도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신명기 7:6-8>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성민으로 부르십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성민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많은 민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목적 가운데 한 백성을 택하시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난 은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 또는 성민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과 계획안에서 우리를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그 선택된 백성들의 삶에 특별히 간섭하시고 세밀하게 섭리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은 어떤 조건이 있을까요?
무언가 하나님 앞에서 기특한 행실이 있어서 선택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7-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8절에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선택받을 만한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지만, 또는 더욱 연약하고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상으로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성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사랑하여 세상으로부터 구별한 성민, 성도라는 것입니다.
2.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1절에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실 때 그들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한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을 구별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았지만 가나안의 이방민족과 동일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형편없는 삶을 살았지요.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언약” 개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언약이란 단순히 약속이라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법적인 양식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묵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자신의 백성 삼으실 때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대근동 아시아에서 사용되던 언약 개념을 차용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언약하면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근동에서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맺는 종주권조약을 떠오르게 됩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보호하고 침략을 받을 때 참전하여 도와주게 됩니다. 대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서약함으로 법적으로 맺고 마지막에는 쪼갠 고기사이를 지나가거나 독주를 마시게 됩니다. 이것은 언약을 어겼을 때 쪼갠 고기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언약적 저주를 상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기를 쪼개 놓으라고 명하시고 어두움 밤중에 임재하시고 불 가운데 임재하시고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연약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확인시켜 주기 위하여 이렇게 행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것을 언약의 형식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만일 너와 맺은 약속을 어기면 내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약속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여 첨을 통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17장에 다시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번에는 할례를 명하십니다. 할례라는 단어가 ‘쪼개다’라는 의미의 ‘베리트’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언약도 ‘베리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평생 잊지 않도록 자신과 후손들의 몸에 언약의 흔적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연약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그 분의 약속을 지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창세기 22장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통해 아브라함의 신실함을 드러내십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부름 받았을 때 나이가 75세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태어난 나이가 100세, 그를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이삭이 청소년 시기였으니까 115세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40년 동안 그의 일생 가운데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의 믿음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을 경험함으로 그가 마침내 믿음의 사람인 되었던 것이죠.
이 과정을 잘 보십시오.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선택하십니다.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입니다. 그리고 선택된 그를 언약을 통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가운데 계속해서 개입하시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나가시죠.
이것이 성도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19:4-6
“4.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렇죠. 4절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하면서, 언약을 통하여 너희가 거룩한 백성, 즉 성도가 된다고 합니다.
출애굽기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하시는 모습이 시내산 언약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릅니다. 언약을 맺은 후에는 그의 백성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의 형식을 우리의 삶에 심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결혼입니다.
결혼은 전혀 남남인 두 사람이 법적인 양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묵는 것을 말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 서로에 대한 신실함으로 통하여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에베소서 5:31-32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여기보면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말하다가 이 비밀이 크도다 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결혼관계에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비밀이 있는데 이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언약으로 맺어진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비밀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 편하죠.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다보면 어떤 상황들이 펼쳐집니까?
우리 자신의 인격의 바닥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사회에서는 교양 있고 겸손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결혼생활 속에서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가 깨닫지 않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그러면서 또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다. 이런 놈을 하나님은 그 분의 신실한 사랑으로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도 서로가 신실한 사랑을 회복하게 되면 그 가정가운데 행복이 피어나죠.
그렇게 자녀 때문에 속 썩다가도 그들을 인하여 누리는 그 행복은 그 어떤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신실한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를 지고의 행복으로 이끄는 구나를 깨닫고 그 신실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성도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도가 되었습니까?
언약으로 된 것입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새 언약입니다.
<예례미야 31:31>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새 언약을 맺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구약의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 삼고자 했으나 그들이 계속해서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언약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였지만 새 언약은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이란 인격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이 언약을 통해 그들이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언약을 맺으면 어떻게 되는가?
34절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여호와를 온전히 알게 됩니다.
또한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죄의 완전히 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새언약이 언제 일어났는가?
<눅 22:14>
14.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그의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이것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9절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백성 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러한 죄인을 어떻게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아들에게 전가시키고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그 값을 치루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제물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해야 하는 저주를 자신의 몸에 담당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살아나사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여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에베소서 1장 1절로 돌아오겠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그들이 누구입니까?
기쁜우리교회에 있는 성도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롬8:1-2>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 찬양합시다.
영원히 찬양합시다.
우리를 성도 삼으신 삼위 하나님은 모든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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