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1-29 14:34

에베소서 강해 5. 창세전 선택과 예정 그리고 자녀됨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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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5. 창세전 선택과 예정 그리고 자녀됨

 

에베소서 1:4-6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찬송이 터져 나옴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찬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성도들 가운데 임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4절에 보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두 번째 시간에 잠시 언급된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어떠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그들이 나른 민족보다 강하거나 탁월해서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를 선택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를 선택하셨는가? 창세전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창세전에, 처음부터, 영원 전부터....모두가 같은 의미입니다.
우주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택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가 이미 창세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창세전 - 우리의 삶을 향한 계획이 창세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진행할 때 반드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건물 하나를 세울 때도 먼저 설계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창조주의 세밀한 설계를 통하여 지어졌습니다. 지구와 달과 태양의 거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그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타버릴 것이고 멀어지면 얼어버릴 것입니다. 수많은 별들이 충돌 없이 조화롭게 운행하는 것은 완벽한 질서가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무한 광대한 우주가 우연히 우발적인 빅뱅을 통해 생겨나 공간과 시간이 생겨나고 그 속에 수많은 화학물질이 우연히 연합하여 단백질 물질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물체로 진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설계 가운데 창조되어 완벽한 질서와 조화 가운데 운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실수가 없으시죠.
그 완벽한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택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뜻과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나 온 우리 삶의 모든 흔적들이 우연히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그 분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우주 만물이 생성되기도 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 이러한 하나님의 택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계획이 이미 창세전에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로 창조하셨죠.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가장 탁월한 존재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로봇이 아무리 탁월하여도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를 선을 선택할 수도 악을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의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러한 탁월함을 가장 추악하고 악함을 발휘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시죠. 그리고 그들이 반역할 것 또한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당황해 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찾아오시고 그들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며 마침내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짐승을 죽여 가죽 옷을 만들어 부끄러운 그들의 몸을 가려 주십니다. 이것은 마침내 이룰 아들의 속죄 제사를 통해 너희의 죄를 가릴 것을 보여주신 예표였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죄를 범해 자구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타락한 창조를 회복시키려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창세전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상의하시죠.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히브리표현에서 “우리”라는 것은 셋 이상을 의미합니다. 삼위하나님께서 상의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따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인간의 타락 또한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함께 논의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창조와 구원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고 고생하며 사시다가 마침내 십지가의 모진 고통 속에 죽어간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또한 주님의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결정이며 행동이었으며 기쁨으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계획이 누구를 위해서 세워졌습니까?
바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세워졌진 것입니다.
창세전에 택정함을 받은 나, 그리고 죄악을 더럽혀진 나, 하나님을 반역하고 내 마음의 뜻과 욕심으로 살았던 나, 그러한 나를 위해 이 모든 은혜의 계획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이 바로 예정입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구원받은 것이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었던 일이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내 노력과 의지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논쟁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예정론은 결정론이나 운명론과는 다릅니다.
내가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이미 예정되었다는 것이 예정론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손을 드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예정론이 아닙니다.
결혼 상대자가 이미 누구일지 예정되어있다는 것이 예정론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이미 다 세워놓으셨다면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정론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면서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나의 구원 또한 그분께서 이루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예정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시 로봇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굳이 창조할 이유가 없으십니다.

예정론은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면서 나의 모든 삶이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오해 때문에 예정론이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래서 나의 배우자 또한 이미 예정되어 있어서 우리가 목사에게 가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이 누굴까요 물으면 그것이 무당종교이지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그렇기 다루어가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뜻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가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이 또한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라운지에 큰 어항을 있다고 합시다. 그 속에 물고기들은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어항을 들어 강대상 앞으로 옮겼다고 합시다. 그래도 물고기들을 여전히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어항속의 물고기는 제 뜻과 계획 속에 라운지에서 강대상으로 옮겨졌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미래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예정론이 아닙니다.
저는 목사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목사를 할 수 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목사로서의 삶의 가치 있다고 판단해서 선택한 것입니다. 또 제가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는데 거부하면 징계나 저주가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무당입니까? 신 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거부하면 저주가 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제가 스스로 선택한 이 길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안에 있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두 딸을 낳고 아들이 없어 시집살이를 당하실 때 서원이 뭔지도 모르고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것. 할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고 장로가 되신 것, 그래서 우리 집에서 교회가 시작된 것, 아버지가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어 모든 재산을 날리고 목회의 길을 가게 된 것, 그 속에서 목사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체험했던 일들, 그리고 대학진학 때 국문과를 지원했다 떨어지고 결국 신학의 길로 들어선 것. 이러한 모든 일들이 당시에는 내 선택과 의지로 이루어졌던 일이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그 시점이 창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그때 이미 나의 삶이 예정되어 있었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정론은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정하시고 예정하신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5절을 다시 보시면,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나라 성경에는 자기의 아들이라고 되어있지만, 원문을 보면 ‘휘오데시아’ 양자를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성경에는 adoptio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법률용어로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양자가 되면 자녀들이 법적 후손으로 인정되어 상속권뿐만 아니라 친자와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였고 사단의 자녀였습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러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1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시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모든 신령한 복이 우리의 것임을 의미합니다.

저는 입양부모입니다.


세상에서 가족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결혼이고 두 번째는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입양입니다. 입양으로 가족이 됩니다. 가족이 된 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 가족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함께 누립니다. 한번 가족으로 맺어진 끈은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법적으로 이혼이나 파향을 하면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두 아이를 입양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의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두 아이가 주일이면 많은 성도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아이는 보육원에서 줄을 세워 떠먹여주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손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영양 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보육원에서처럼 선생님들의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랑받을 짓을 하지 않아도 때로는 부모의 속을 썩여도 사랑스런 제 아들입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서 부모 없는 아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아빠들보다 조금 나이 먹은 잘생긴 아빠가 있고 다부진 엄마가 있습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좋은 시설에 수십 명의 돌보아 주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명절에 찾아와주는 착한 분들과 그들이 전달하는 선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있으면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셨습니다.
이미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가장 좋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이 더 필요하신가요? 무슨 복을 더 간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때 까지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전능하시어 감히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부를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아버지라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거룩하시고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꾼이 아니라 자녀로서 나아갑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저희 자녀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결혼하여 자연스럽게 생겼지만, 저희 아이들은 선택받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은 저의 자녀가 될 것이 이미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입양과정 가운데 부모로서 합당한지 조사관을 통해 검증을 받게 됩니다. 법원에 가서 두시간종도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질문중에 이러한 것이 있었습니다. 만일 아이가 장애가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더라도 입양하시겠습니까?
처음 희수를 입양할 때는 당연합니다. 라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키워보니까 그렇게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에 얼마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깨고 아내가 대답합니다.
만일 법적으로 입양판결이 나기 전에 그러한 일이 있게 되면 의성이의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입양판결이 난 이후에는 이 아이에게 그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시고 그의 자녀 삼으셨다면 그 사랑의 끈을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니 그 어떤 권세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하여 입양하신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까?
그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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