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4-02 12:00

에베소서 강해 14.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옵소서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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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4. 바울의 기도 3.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강해 14번째 시간입니다. 바울의 기도로는 세 번째 시간으로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에베소 성도를 향한 바울의 첫 번째 기도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바르게 경배할 수 있고 또 순종할 수도 있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기도입니다. 18절에 보시면,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세 가지를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죠. 첫 번째가 부르심의 소망, 두 번째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세 번째가 19절의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입니다.

이 시간은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옵소서에 대한 내용만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부르심의 소망을 알기 위해서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된다는 것 아닙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인격의 중심, 존재의 중심을 말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져 어떠한 것을 안다는 것은 인격적, 체험적, 경험적으로 어떠한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시간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할 때 ‘알다’는 ‘에피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 진리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알게 하옵소서”는 ‘에이도’라는 단어입니다.

‘에이도’의 의미는 “보다” “경험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에도 이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무씨와 배추씨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려면 보통 세 가지 방법이 있지요.
첫 번째는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잘 아는 분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직접 심어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방식으로 아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심어보고 아는 것은 체험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이 되어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수영하는 방법을 안다고 실제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안다고 할 때는 체험적이고 경험적으로 알아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과 존재가 그것을 앎으로 실제로 우리 삶에 부르심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알다’ 즉 ‘에이도’가 쓰인 성경구절을 찾아보니까, 믿음이라는 단어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머리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알게 해달라는 부르심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 어떠한 소망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무엇일까?
<로마서 8:19-25>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여기서 말하는 소망이 무엇입니까?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소망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 즉, 썩어짐의 법 아래에 놓여있죠. 이 세상에 썩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는 다릅니다. 하루 더 썩어진 것입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 만물이 다 썩어짐의 법 아래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질병은 썩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소망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제 썩어짐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 상 우리 몸이 썩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은 썩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이 썩죠. 우리의 몸이 더 이상 썩지 않는 상태가 되는 그 날을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3절의 “몸의 속량”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3절의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른 말로 하면 우리에게 이와 같은 소망이 있기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소망인가?
주님께서 곧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먼저 죽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일어나고 일어난다는 것은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살아남은 자들, 즉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자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중요한 말씀, 17절 마지막에 항상 주와 함께 있으니라.

우리가 부활의 몸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4>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 사도는 “산 소망”을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썩고 더럽고 쇠하죠. 그것은 죽은 소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가진 소망이 무엇입니까?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하길 바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들의 성적이 좀 더 좋아지길 바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직장 다니는 남편이 승진하길 바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미혼의 청년들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길 바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좋은 사람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또 나에게 주어진 삶을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요.

 

이러한 모든 소망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뭐 대단한 것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소망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곧 썩고 더러워지고 쇠해버립니다.

전에 뉴질랜드에서 사역할 때입니다. 세인트 헬리어스라는 교회에서 사역할 때인데 집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집 주인이 나이가 80이 넘으신 유태인 할머니셨는데 일주일에 한번 쓰레기통을 밖에 내놓아주고, 여동생이 한분 있었는데 차로 모시고 오는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책도 여러 권 쓰신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넓은 정원에 분수대고 주변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심겨 있었습니다. 분수대 아페 서면 바다 가운데 랑기토토섬이 보이는 멋진 뷰를 간직한 집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엔틱 가구들이 놓여 있고 거실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소파에 앉아있는 할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한때는 분수대에 물이 나오고 연못에는 고기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잡풀이 엉성하게 나있었습니다. 나무들과 꽃들을 관리하지 않아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고가의 엔틱 가운들은 오랜 세월 묵힌 먼지들이 쌓여있습니다. 카펫은 언제 청소했는지 큼큼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 큰 집에 할머니가 쓰는 곳은 자신의 침실과 거실 그리고 부엌뿐이었습니다. 

 

한때 정원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주말이며 바비큐 파티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썩고 더럽고 쇠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때 지성인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던 할머니는 소파에 기대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의 소망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썩지 않습니다. 더럽지 않습니다. 쇠하지 않습니다.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제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원토록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소망은 단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화려함과 풍성함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르심의 소망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소망입니다.

삶이 너무 고단하여 “아! 빨리 고통이 없는 천국에 가고 싶다” 하는 소망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르심의 소망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소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디모데전서 1: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정말로 소망하십니까?
우리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 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만일 우리가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리고 더욱 깊이 알아간다면 그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분을 정말로 뵙고 싶은 열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히 그분과 함께 거하고 싶을 간절한 소망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전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했던 주님이 아니라 진정 마음의 눈이 밝아져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주님의 그 사랑을 더욱 알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이 소망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당시 유대인이 결혼풍습을 보면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와 혼수나 지참금에 대한 것을 합의하는 절차가 있게 됩니다. 이때 신부와 친구들을 신랑이 올 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신랑이 오면 본격적인 혼인잔치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런데 신랑이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신부측 친구들은 저녁까지 이어지게 될 잔치를 준비하며 등과 기름을 예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을 준비하였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기다리던 신부의 친구들이 졸기 시작합니다. 밤중이 되어 기다리던 신랑이 도착하였고 이제 열처녀는 등불을 밝히고 연회장으로 가서 혼인잔치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난감해진 것입니다. 등을 밝히고 연회장으로 가서 혼인잔치를 해야하는데 기름이 없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요청하지만 자신들이 쓸 것도 부족함으로 이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연회장의 문은 닫히고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늘 깨어 주님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요한1서: 2-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에게 종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맞이하는 종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으로 맞게되는 인생의 종말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때가 언제일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003년 4월에 저는 창원에 있었습니다. 그해 2월 18일에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있었고 그 침울한 분위기가 창원까지 전달되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평범한 오전시간 김대한이라는 사람이 신나통을 들고 지하철로 뛰어들어 불을 붙였습니다. 순간 지하철 문은 닫혔고 12칸의 지하철이 삽시간에 불에 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종말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어느 날 순식간에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또는 우리의 죽음으로 맞이하는 종말도 순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마지막 순간에 지하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통화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문이 열리지 않아요” “어머니 너무 뜨거워요”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분이 전화기를 들고 자신의 아내와 마지막 나눈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여보, 나 하늘나라 간다. 나 하늘나라 간다”
이 분은 대구의 어느 교회 집사님이셨습니다. 그날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가던 길에 참사를 당한 것입니다. 성경책 안에 타다 남은 주보가 발견되워 신원이 밝혀져 첫 번째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부르심으로 소망으로 주님 만날 것을 늘 준비하는 성도들이게 그날은 기쁨과 축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여사는 자신의 장례식에 장송곡을 부르지 말라, 행진곡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그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자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고 주님, 그 주님을 정말 만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주신 주님이라면 그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 소망 가지고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예배전체 실황

https://www.youtube.com/watch?v=8WSfGxOQi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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