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9-05-28 14:38

에베소서 강해 18.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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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8.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음

 

에베소서 2:4-7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강해 18번째 시간입니다.
3주 만에 에베소서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어디로 부터의 구원인지를 아는 것은 무척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3가지로 요약합니다.
1.이 세상 풍조를 따랐다.
2.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3.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오늘 본문은 짧은 구절이지만 구원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이 흔들립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에 대해서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뭐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에서부터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모호하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다 이루어 놓으셨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일을 다 이루어 놓으셨고 내가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완전한 설명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때로는 삶의 여러 가지 여건과 환경 속에서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죠. 내가 과연 믿음이 있는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치매와 같은 질병으로 인지력이 떨어져 믿음을 고백하지 못할 때 그러면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지 못하는 유아기의 아이들은 구원에 있어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바른 설명한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로 작정하셨고 우리를 그 분의 자녀로 삼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이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녀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그냥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미리 계획을 세웁니다. 건물을 세울 때도 미리 어떤 건물을 세울지 생각하고 그 생각을 계획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실행하여 완성시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구원을 미리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여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예술가로 인식하기를 좋아합니다. 
이 부분은 10절에 등장하는데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원어로는 “포이에마”인데 이것을 NIV성경은  “we are God’s handiwork”로 손으로 만든 예술작품이라는 의미죠. ISV성경은 “masterpiece”걸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이에마”, 걸작품이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예술가로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예술가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을 담아 존귀한 자들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향한 뜻과 계획을 다 세우시고 때가 되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에 복음을 듣고 그분의 자녀가 되어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 온 것입니다. 

지나온 삶의 여정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떠난 적은 한 순간도 없습니다.


행복했던 날이나 불행했던 날도, 기쁨의 시간이나 슬픔의 시간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그 다양함 들은 예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과정이었습니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한 가지 색깔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밝은 색과 어둠의 색이 교차하고 공존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건강과 질병 등의 다양한 삶의 장면들로 우리 삶을 빚어 가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그때의 그 아픔도, 그때의 실수와 실패도, 기억하고 싶지 않는 기억들도,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은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행함을 강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구원받을 만한 신실함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 못하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은근히 협박하는 분도 있습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끼리 서로를 기특해 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의로움이나 선행은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됩니다.

 

여러분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자는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은 새는 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며 심판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를 동원하여 평생 선행을 쌓는다고 하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이 길이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죄와 허물로 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를 구원하시는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4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만일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기만 하다면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공의로운 하나님은 또한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그래서 죄인을 긍휼히 바라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우리를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나의 자녀가 모두가 손가락질만한 잘못을 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사람과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욕해도 부모는 그를 불쌍히 여깁니다.
그에게 매를 들고 때릴 지라도 거기에는 공의로운 처사도 있지만 긍휼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공의의 눈으로 바라보시지만 또한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범했을 때, 다시금 그분 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긍휼하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이 여기십니다.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의 성품만을 생각하면 그 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늘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과 죄의 크기보다 그 분의 긍휼하심이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로만 대하셨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죄의 비참함에서 헤매던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따듯한 마음이라면 사랑은 죄인의 구원을 향한 그 분의 의지적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기 보다는 의지적 행동이고 책임감이며 그것은 희생과 섬김으로 표현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죄의 비참함에 있는 우리를 건지셨고 그분의 자녀로 만드셨으며 또 그분의 자녀답게 빚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큰 사랑을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십자가에게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희생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완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을 내어주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열정과 의지는 그 어느 것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치루시고 구원한 그분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의 근원이죠.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녀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을 치러서라도 구원하고자 했던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25장에 의인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작은 자들, 즉 교회 공동체의 형제, 자매에게 한 것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살을 찢고 피를 내어 주고 사신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존귀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41-32>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우리가 교회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는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에 대하여 심각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똑같은 말씀이 이 말씀 뒤에 이어집니다.
<누가복음 17:1-2>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저는 우리교회 성도님을 한분 한분이 하나님의 존귀한 사랑받은 자녀로 대접받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가치들로 매기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모두가 존귀한 분들입니다. 서로가 그렇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SBqq2jyh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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