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실황 전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7fbxmA1c1bY
에베소서 강해 43.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부모와 자녀
에베소서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강해 43번째 시간입니다.
성경은 이제 부부의 관계에서 확장하여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관계의 중심은 부부관계입니다.
부부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 안에 충만하게 임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 또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어떠십니까?
우리 중에는 20, 30대 초반의 청년들도 있고 청년부부도 있습니다. 40, 50대의 사춘기 자녀들을 부모님으로부터 이제 자녀들을 출가시킨 부모님들 또는 출가를 준비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60,70대의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손주들을 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부모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부모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처럼 자녀들이 행복한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큰돈을 물려주지는 못해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모습 속에서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립니다.
반면 신실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또한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평생에 기도제목이 우리 부모님 예수 믿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분들 계십니다.
건강하게 장수하게 해주세요. 좋은 집에 살게 해주세요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부모님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기도하더라고요.
오늘 본문의 내용은 부모와 자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자녀들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하나님께서 가정에 주신 질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옳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의롭다(디카이오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의롭다는 것은 법정적 의미입니다. 법적 차원에서 옳은 것, 의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정에 세우진 법이라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면 지키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지키고 하지 않습니다. 법은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부모가 어떤 분인 가와는 상관없습니다. 부모님이 존경할 만한 분이던 그렇지 않던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내 맘에 들던 그렇지 않던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의견이 내 생각과는 다를 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2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1절에서의 순종은 행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공경하라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모를 향한 우리의 행위는 순종으로 표현된다면 그 마음은 공경심으로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순종과 공경을 강조한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20: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출애굽기 21:15>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어찌 보면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이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면 죽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에게 주신 이 율법이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율법에 따라 죽어야 할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부모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신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우리를 자녀라고 부르는 걸까요?
그것은 초월주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쳐 주여야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주신 반면, 우리는 경험의 세계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만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경험을 초월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해시킬 때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기반을 두어 자신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노릇 하면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추론하여 알아갑니다. 우리가 자녀로서 부모의 사랑과 돌봄 속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알아갑니다.
이러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 각하 또는 하나님 총리가 아니라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비록 죄로 인해 타락했을지라도 그 속에 자식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기도에 대한 교훈 중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부모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높이와 길이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아는 것처럼,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인내를 알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자기를 다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자기의 독생자 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과연 어떻게 체험하며 또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체험하고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내어주면서,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알아갑니다. 내가 내 자녀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나에게 내 자식이 이토록 끔찍한데 하나님에게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때때로 자녀들이 부모의 속을 썩일 때도 내 속이 이렇게 아픈데 하나님은 나를 보시며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내 자식이 다른 사람 모두 손가락질하는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만큼은 자녀를 품어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인내를 배워갑니다.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참아주시고 인내하셨는데 하며 자식을 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패역한 아들을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분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패역한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달려 나가 그를 끌어 앉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베풉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비록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은 아들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든 받아 주는 것입니다.
<시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비록 부족하긴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자식들에게 흘러 보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기다리심 그리고 용납하심,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섬김,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이러한 것들을 체험하게 되면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 보답의 실천의 장소가 먼저는 가정이며 우리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자녀는 우리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4절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먼저 성경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오늘날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어린아이들의 인권이 무시되던 시대였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안수기도 받으려고 할 때에 제자들이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을 계수할 때도 어린이는 제외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리 어린 자녀라고 할지라도 인격적으로 대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자녀라고 할지라도 인격을 가지고 있고 인격에 대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놓으신 본성입니다.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의식이 성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인격적 모욕을 당한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영유아들일지라도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의식이 있습니다.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있습니다. 왜 태교가 중요한 것입니까?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무엇이 공정한지를 압니다. 부모가 나를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잘못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지적하고 징계하는지 압니다. 아이들이 노여워 할 때는 부모가 공정하지 못할 때, 잘못에 비해 과도하게 징계할 때입니다. 이것이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무리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잘못했으면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까는 아빠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미안하다”, “엄마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다 부족하고 실수가 많죠. 자녀들도 알고 이해합니다.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자녀들이 받은 많은 상처들이 치유됩니다. 부모를 향해 품었던 분노가 힘을 잃고 맙니다.
다음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내 뜻과 계획과 바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주의 교양이라는 것은, 동일한 단어가 쓰인 다른 성경본문을 보면 징계라는 단어와 교차적으로 쓰였고, 의로 교육한다는 의미로소 쓰입니다. 즉 우리가 어떨 때 징계합니까?
징계라는 것은 규칙과 질서와 원칙을 전제합니다. 이것에서 벗어날 때 징계하는 것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감정대로 합니다. 감정대로 하기에 일관성이 없고 상처를 줍니다. 일관성이 없는 교육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눈치 보는 아이로 만듭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은 주님의 말씀의 원칙가운데서 삶의 질서와 규칙과 원칙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자녀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 났을 때는 징계하고 그것을 잘 했을 때는 보상해야 합니다.
또한 훈계라는 말은 말로 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그것이 격려일 수도 있고, 책망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나 것은 이 모든 교육의 근원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삶의 원칙과 규칙과 질서를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말씀 즉 성경으로부터 출발해야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자녀가 주일에 교회에 가지 싫다고 하면, 부모는
애야 성경에 우리 주님께서 안식일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 주일에 예배하길 원하셔.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녀가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네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이 많이 기뻐하셨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역할을 잘 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자녀들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예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자녀들은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습니다.
신앙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간혹 부모님들 가운데 말씀 교육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주에 30분 설교로 아이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일은 말씀교육도 있지만 사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더 집중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세운 꿈과 계획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록 어리석게 보이고 불가능하게 보여도 그것 내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해 가시기에 우리는 그들의 인생길에 최고의 협력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자녀의 교육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의 중요성입니다.
4절에, 아비들아! 라고 말하는 것은 넒은 의미에서 부모를 말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아버지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녀교육의 책임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의 중요성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면 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면서 가정의 머리역할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자녀의 교육면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경우 아버지들이 워낙 바쁘다 보니 자녀교육에 있어 소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못될 경우 남편들은 아내에게 꾸지람을 내며 집에서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느냐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것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그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아이들을 만나 상담해 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습니다.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어머니에게 상처받았다고 하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어떤 아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한 것은 그 만큼 아버지에게는 어머니와는 구별된 책임 있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들이 말씀에 더 능한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녀는 부모를 하나님을 섬기듯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때
그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래서 2절에 보니까,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1)그 중요성에 있어서 가장 으뜸 되는 이라는 해석
2)십계명 후반부의 대인 관계의 계명 가운데 '첫번째'라는 해석
3)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붙어 있는 첫 번째 계명
4)유대인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계명이라는 뜻에서
첫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10계명중에 약속이 있는 계명은 2계명과 이것뿐인데 순수하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다른 계명에는 약속이 없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명기 5:16)
저는 목사로서 많은 성도들을 만나면서 실제적으로 이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는 성도님들, 이 땅에서부터 잘되고 장수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효도하는 자녀들이 잘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자녀를 부모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잘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부모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모이신 우리 성도님들이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또한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시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 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