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실황 전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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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45. 우리의 싸움
에베소서 6:10-12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는 마지막 권면의 말씀으로 영적전쟁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듯이 신앙생활은 현실에 뿌리에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실체는 교회 공동체 보다는 가정과 일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부부관계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보였던 모습이 우리의 신앙의 실체입니다.
직장에서 일과 사람들을 대할 때의 나의 모습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를 대하는 자세로, 부모와 자녀를 대하는 자세로, 일터에서 상사와 직원을 대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제 성경은 마지막으로 성도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이 영적인 전쟁터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가운데서 승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영적준비를 말합니다.
1. 성도의 영적 현실 – “이미”와 “아직”의 긴장
먼저, 이 땅에 성도들이 처해진 영적현실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already but mot yet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 가운데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개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입니다. 이미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자가 고침 받는 사건을 중점적으로 기록합니다. 이것은 죄악 된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임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미 구원이 우리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는 죄악 된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 가운데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이미 우리 안에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때는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재림주로 오실 때입니다. 그때 우리의 구원도 완성됩니다.
그때까지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상태에서 계속적인 영적인 싸움이 있게 됩니다.
악한 사단의 영은 활개를 치고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유혹합니다. 즉 성도들은 영적인 전쟁가운데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D-day와 V-day로 설명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의 명장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프랑스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할 조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 안개가 자욱한 프랑스해안을 본 롬멜장군은 날씨 때문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 안개를 뚫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되었고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독일을 치명타를 입습니다. 이 날을 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전쟁의 판세를 뒤집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 곧 완전한 승리를 얻은 날이 V-day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D-day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날 사탄은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승리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사탄을 심판하실 V-day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D-day와 V-day 사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악한 사단의 권세는 이미 꺾였습니다. 그들의 허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이미 성도는 고지를 점령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끝 난 것은 아닙니다. 악한 사단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모든 힘을 다 끌어서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계속해서 죄의 유혹을 받으며 악한 사단의 영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이러한 영적 전쟁을 대하는 성도의 극단적 자세입니다.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먼저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감기에만 걸려도 영적문제로 진단합니다. 내 실수나 분별이 없어서 사업에 어려움이 생겨도 귀신 탓을 합니다. 내 인품이 부족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해도 사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양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하나가 사단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된 진단입니다. 진단이 잘못되었기에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 분노의 원인을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분노의 귀신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술에 빠져 살
아가는 것이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술 귀신 때문이 아닙니다. 한때 가문에 흐르는 저주론에 대한 책들과 설교들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성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 사단에 집중하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단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반역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천사장 루시퍼였고 그의 아름다움과 지혜와 능력은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단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마치 그의 능력이 너무 대단하여 나의 삶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너무 사단에 집중하다 보면 두려움과 불안한 신앙생활을 할 뿐입니다.
사단이야기 자주 하는 사람 치고 얼굴이 평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묵상하는 존재를 닮아갑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속에서 감사함을 누리는 사람은 그 얼굴이 평안하죠. 그러나 자꾸만 사단을 묵상하는 사람은 사단을 닮아 갑니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입니다.
사단은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다음으로는 영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만 실체로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사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배후에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신앙인의 삶에 사단은 계속적으로 미혹합니다. 그들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단의 활동은 에덴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립니다.
사단을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사단의 활동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하늘에서 쫓겨 날 때 교만한 천사들을 동원하여 내려옵니다. 그들이 귀신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서에 보면 군대로 움직입니다. 조직을 갖추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단의 군대를 상대하여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이깁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마지막에 악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할 만큼 우리 삶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3. 사단의 전략과 목적
사단의 목적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에덴에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이 찾아와 유혹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반역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질문은 하나님의 마음은 협소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분으로 표현함으로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면 불순종하게 됩니다.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으로 이끌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신뢰하고 순종할 때만 존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고 이웃을 착취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짐승처럼 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어 불순종으로 이끌고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세상이 이처럼 악해 진 것입니까?
살인, 폭력, 전쟁, 성폭력, 포르노, 사기, 환경파괴 등 이 땅에 포악함이 점점 확장 되고 있습니다. 교육, 과학, 의학, 인문학 등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에 불구하고 세상은 더욱 악해져 갑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사나워지고 폭력적입니다.
문명의 최상의 이익을 누리는 시대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끔찍한 죄악의 현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배후에 악한 영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약점을 파고 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로 광야로 가십니다.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셨을 때에 마귀가 등장합니다.
그의 시험은 이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있습니다. 풍랑 이는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실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어쫒고 병자를 고칠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슬러 너의 기본적 필요를 채우라는 유혹입니다.
불법과 편법을 통해서라도 너의 기본적 욕구를 채우라는 유혹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그 방향에서 침투해 옵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으로 유혹합니다. 가난으로 고생한 자들에게는 돈으로 유혹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권력으로 유혹합니다.
여러 목회자들이 돈과 권력 그리고 성적 욕망에 넘어져 온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사단은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에덴에서 뱀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으로 하와를 유혹한 것입니다.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들은 광명한 천사로 다가옵니다.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목사로 전도사로 다가올 때도 있고, 기도를 많이 하고 예언을 하고 신유를 베푸는 자들로 다가옵니다. 저도 그런 목사와 전도사를 만나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습니다.
약점이 많을수록 사단의 먹이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기에 욕심과 이기심이 많으면 쉽게 사단의 놀이감이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묻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지 그리 마옵소서 만류합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을 한 그 자에게도 사단은 침투합니다. 베드로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에 욕심이 있었던 가룟 유다에게 은30으로 유혹하여 예수를 팔게 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파고듭니다.
사단은 정치계, 문화계, 경제계, 스포츠계, 종교계, 교육계 등 각 영역을 무대로 삼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인들을 동원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법들을 제정하게 합니다. 문화계에 침투하여 영화, 드라마, 도서, 게임기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조장합니다. 교육계에 침투하여 교육의 기쁨을 앗아가고 경쟁을 부추겨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만 그 뒤에는 악한 영의 활동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세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세상이 악한 것은 악한 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합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래서 우리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은 많은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사단의 전략을 간계라고 표현합니다.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간계라는 단어(메도데이아)는 교활함, 속임수, 음모 라는 의미입니다. 아주 교묘하게 성도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들은 교활한 전술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다음주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지 않으면 늘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단이 교회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자주 목격합니다. 또한 신실한 성도들을 믿음의 길에서 어떻게 이탈시키는가를 봅니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는 사단이 신입으로 들어온 조차 사단이 웜우드에게 성도들을 넘어뜨릴 계략을 이렇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가장 안전한 지옥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은 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경사도 완만하고 걷기도 쉬운데다가, 갈랫길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지.”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하나님을 반역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조금씩 하나님을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조용하고 은밀해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우리가 부부관계에서 이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기쁨과 만족을 빼앗는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는 하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성경지식으로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을 비판하는 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관심 보다는 눈에 보이는 기적과 은사에만 매달리게 할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구원을 흔들 수는 없지만 구원의 감격을 누리에 못하게 할 것입니다.
사단이 이러한 계략은 처음에 생각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는 생각을 집어 넣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타락했을때도 그러했고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했을 때도 동일했습니다. 사단은 처음에 은밀하게 우리의 생각으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사단이 가롯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합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려는 생각이 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그 생각을 대적하여 밀어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쉽게 밀쳐내지 못합니다.
생각이 무섭습니다. 생각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생각할 수도록 그 힘이 커지고 강해집니다. 예를 들어 염려는 염려할수록 커지고 강해집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대한 오해도 그렇습니다. 오해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오해에 빠집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담고 예수님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종들 중에 특히 가장 하찮은 종이나 하는 발씻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다니....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무거운 분위기에서 찬물을 끼언 듯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는 예수님께서 오늘따라 이상하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중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고 싶었지만 이미 세족식에서 예수님과 대립하는 상황이 있었기에 묻지 못하고 예수님 곁에서 기대어 있던 요한에게 머리짓으로 묻습니다. 요한이 묻습니다.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님께서는 떡 한조각을 띄어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떡을 소스에 찍어 가룟유다 앞에 내놓습니다. 유다는 그 순간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받을지 아니면 거절할지. 만일 받게 되면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실행하겠다는 뜻이고 거절하면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떡을 취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한복음 13:27)
결국 악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유혹할 수는 있지만 죄를 짓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도 나입니다. 사단에게 죄를 전가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악을 행한 것이고 죄를 범한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들을 찾습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와 두려움과 염려와 오해와 불신을 조장합니다.
그래하여 현재 누려야 할 구원의 감격과 기쁨, 삶의 감사와 환희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공격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사단의 공격이 한층 강화됨을 느낍니다.
교회에 불신을 조장하고 오해를 일으키고 실망을 안겨줍니다.
이럴 때 일수록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단이 활개를 치고 최후 승리는 성도들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 그 어떤 사단의 공격도 막아 낼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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