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01-16 07:11

47. 복음의 신과 믿음의 방패로 무장하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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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bKub7VeSnRg 

 

에베소서 강해 47. 복음의 신과 믿음의 방패로 무장하라

 

에베소서 6:15-17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호심경에 대하여 살펴보았고요. 오늘은 나머지 네 가지의 무기죠.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결론부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우리의 현실의 삶이 영적인 전투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군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이 군사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세상의 죄악과 싸워야 하고 내적으로는 내 안에 죄의 쓴 뿌리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 배후에 사단의 영이 역사하고 있어 늘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로 판단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세 번째로 성도가 무장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복음의 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로마 군인들이 전투할 때 신는 군화를 의미합니다. 이 군화는 발바닥과 뒤꿈치에 징이 박혀 걷는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전투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으로 무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익숙히 들어서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명확하게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무장하지도 못합니다. 복음으로 무장하지 못하니까 악한 사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영어로 굿 뉴스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이 부분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익숙하지만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1절에 복음이라 말하고 2절에 이것을 굳게 지키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3절에 “내가 받은 것”이라고 하죠. 바울이 누구에게 복음을 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복음을 받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깨닫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구별된 자에게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예수는 만왕의 왕이요, 완전하고 거룩한 제사장이요, 진리가 충만하신 참 선지자로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분입니다. 이순진장군할 때 이순신이 이름이고 장군이 직분인 것과 같습니다.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왜 복음이 되는가? 이것을 믿을 때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기 때문이죠.
이것이 복음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음이 되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충족시키고 풍성케 하는 참된 복음입니까?

한국전쟁이후 우리 사회는 가난과 질병으로 피폐했습니다. 그때 교회는 복음을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질병에서 낳고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고 축복된 삶을 산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소망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 다는 것이 복음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예수가 복음인데 예수만 있으면 충분한데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도 믿고 물질의 축복도 받고 건강도 하고 사업도 형통하길 바란 것입니다. 현세와 내세의 축복을 모두 추구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그렇게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예수 믿고 복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독교 사상은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고 질서와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기에 당연히 삶이 규모 있어지고 잘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문제는 점차 성도들이 예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축복을 간구하기 시작한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건강, 사업의 번창, 자녀의 형통, 물질의 축복 등을 추구하기 위해 복음을 수단화 시켜버렸습니다.

 

그 결과 예수를 믿는 목적이 현세의 복 받고 형통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어 그 결과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설교자들이 이것을 복음으로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특히 70년 이후 도시화 되면서 도시에 세워진 교회들은 사람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왔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히 자본과 권력도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들이 전한 복음이 얼마만큼 사실이며 진리인지, 세상에 성공한 자들을 내세워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교회의 간증자들로 세워져 예수 믿어 복 받은 성공신화를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90년대에 이러한 뒤틀려진 복음에 대한 용어들이 생겨났습니다.


기복신앙, 번영신학, 영어로는 Health and wealth Gospel입니다.

제가 그동안 사역하면서 만난 많은 성도들이 실제로 이러한 복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가운데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10년 전 목회를 하시던 저희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부친의 나이가 만64세였습니다. 폐암선고를 받으시고 고통가운데 계실 때 저희 가족 누구도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부르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20년을 개척교회 목사로서 어렵고 힘든 길을 가셨는데 목회한번 펴지 못하고 돌아가실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질병에서 고쳐 주셔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고 남은 인생 하나님께서 멋지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병환은 점차 깊어져만 갔습니다.

어느 주일 동네 근처의 교회에 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 앞에서 예배를 드리셨고 저는 아버지의 쳐진 어깨를 바라보며 뒤에 있었습니다. 그때 설교자는 이런 내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해 주셔서 질병에 걸리지도 않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도 부어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한 자에게 반드시 축복으로 보상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저는 저희 아버지의 어깨가 더 쳐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질병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우리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축복된 인생을 살지 못한 것일까?
예수 믿고 건강하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복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복을 주시기 않는가?
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두 누나들로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깊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20년을 한 결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헤어드라이를 하시고 포마드로 정갈하게 하시고 기도에 가셨던 분이셨습니다. 새벽에 가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때가 대부분이고 한분 많아야 두 분이 계십니다. 그래도 늘 기도의 자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 맘속에 기도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기도해도 암에 걸리는데. 기도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입니다. 당연히 찬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도 복음은 뒤틀려 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헌신하고 충성하면 당연히 삶이 형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목회자 가정이니 지금은 좀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복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물질과 건강의 복을 의미했습니다. 이 개념으로 삶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당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입니다. 연초에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게 됩니다. 한번은 저와 함께 교구를 담당했던 전도사님이 부르십니다. “목사님! 설교 그렇게 하시면 안되요. 무슨 말씀이신데요. 축복 설교하셔야죠. 그 가정에 복을 빌어주어야지 목사님처럼 설교하시면 안되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심방을 하는데 순간 제가 무당이 된 듯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방 상위에는 헌금이 올려져 있는데 꼭 복채처럼 느껴졌고 복을 빌어주는데 이게 양복을 입었을 뿐이지 무당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로 복음으로 무장되어 계십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사자밥이 되어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로마 시내를 밝히는 횃불로 태워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 예수를 믿게 되면 수많은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북한의 성도들은 어떠합니까? 중국은 또 어떠합니까?
북한의 성도들 앞에서 예수 믿고 복 받으라고 전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복음 자체입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를 소유하면 이미 복을 받은 것입니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예수가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소유하면 다 소유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좀 가난해도 불편할 뿐이지 괜찮습니다.
집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평생 전셋집에 살아도 괜찮습니다.
질병에 걸리면 또 어떻습니까?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고, 고통스럽지만 끝이 있습니다. 


예수를 소유하지 않는 인생이 불쌍한 것이지,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겠습니까?
이것을 믿는 다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도 없습니다.


예수가 복음입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자에게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것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치료받아 살아도 결국 죽을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결국 죽습니다. 우연히 산 로또가 당첨된 것이 복된 소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도 결국 죽을 것입니다. 통장에 수백억 원을 쌓아놓는다 해도 밥 새끼 먹습니다. 그 돈 다 쓰지 못할 것입니다. 쓰면 또 얼마나 쓰겠습니까? 결국 그 인생도 죽을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복된 소식입니까?

죄 사함 받아 영생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살리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으로 무장하면 평안이 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합니다.
복음이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평안을 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평안을 줍니다. 질병에 걸려도 가난해도 사업에 실패해도 평안을 줍니다.

평안은 원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성경에서 샬롬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문제가 해결될 때 찾아오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분의 통치아래 거할 때 우리 삶에 평안함이 임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만이 평안을 누립니다. 그 평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후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삶이 두렵거나 염려가 엄습할 때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으로 무장할 때 평안함이 임합니다. 뒤틀려진 복음이 아니라 순전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의 틀을 깨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한 풍성한 하늘의 축복이 보일 것입니다.
저는 올 한해 여러분들이 복음으로 무장하기를 권면합니다.
복음으로 무장할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떤 고난과 핍박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복음으로 무장하면 악한 사단이 흔들어도 결코 요통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신으로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을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 수 없을 것입니다.


네 번째 무기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방패는 폭이 약75센티미터, 길이가 120센티미터이며 테두리의 두께는 손바닥 넓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두 개의 판을 접착제로 붙인 것으로 바깥 표면을 소의 가족으로 덮었습니다. 위아래 테두리는 철을 둘러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방패는 굉장히 요긴한 무기였는데 불화살을 막을 뿐만 아니라 대형을 이루어 방패의 오와 열을 맞추면 전차도 넘어뜨릴 정도였습니다. 전술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이 방패였습니다.
16절에 보면 “악한 자의 공격이 불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당시 전쟁의 상황을 염두해 둔 것입니다. 화살촉에 가연성 물질을 묻혀 쏘게 되면 상대진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됩니다. 이때 이것을 방어하는 것이 방패였습니다. 방패를 덮고 있는 가죽에 물을 묻혀 소멸시켰습니다.

사단은 마치 불화살을 쏘는 것처럼 우리를 공격합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하여 계속해서 불화살을 쏩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는 믿음을 두개의 요소가 합쳐진 것으로 설명합니다. 바른 지식과 굳건한 신뢰입니다. 바른 지식은 진리입니다. 이미 첫 번째 무기인 진리의 허리띠에서 설명되어졌습니다. 여기서는 굳건한 신뢰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믿음은 단지 진리의 지식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굳건하게 신뢰할 때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만일 진리의 지식을 아는데 그것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바른 지식을 굳건하게 신뢰하여 순종할 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이 한분이신 줄 아느냐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고 합니다. 귀신도 하나님에 대하여 압니다. 우리보다 잘 압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머리로 알뿐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른 지식 즉 진리를 굳건하게 신뢰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의 지식이 많다고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고 있는 진리를 얼마만큼 신뢰하는가 그래서 내 삶 속에서 주의 뜻에 순종하는가의 여부로 믿음을 판단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하게 신뢰한 것입니다. 그 말도 안되는 명령을 신뢰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난공불락의 성벽과 장대한 아낙 자손을 대항하여 승리한 것도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자신의 계략과 전투력과 무기를 의지했을 때는 어김없이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할 때 강해집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불화살을 쏘아댈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충성하고 헌신하고 희생하고자 할 때 그 공격은 더욱 거셀 것입니다.
이때 복음을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무장하여 대항할 때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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