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4. 찬송과 찬송의 이유
에베소서 1:3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은 1,2절에 에베소 성도들에게 인사말을 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고 나서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1.찬송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니 찬송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려고 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그의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찬송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쥐어짤 수 없는 것이죠. 찬송을 강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늘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2.찬송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왜 베푸시는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6절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절과 5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언급한 후에 그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2절도 보시면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절입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로 창조된 것이죠.
3.찬송의 주제는 성삼위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분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찬송할 것인가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찬양이 개인적인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불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찬송을 통해 찬송의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의 한 장면과 신약의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5:1-3>
1.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이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다. 왜냐하면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졌음이로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찬양합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과 연관됩니다.
그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고 노래이며 구원이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신약의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입니다.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하늘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 그곳의 광경을 보게 됩니다.
요한은 먼저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게 됩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보좌에 둘려 이십사 장로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구약성도의 총수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신약성도의 총수 즉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다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 주변에 네 생물이 있는데 이들을 천사를 상징합니다. 이들이 무엇을 합니까? 찬송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4:8-11>
8.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8절의 천사들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찬양합니다.
10절부터 보면 이 찬양이 이십사장로들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을 자신의 머리에 쓰여진 금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면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섭리를 찬양합니다.
이렇게 찬양이 울려퍼지는데 요한이 보좌에 계신 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두루마리를 주목합니다. 안팍으로 쓰여진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이 두루마리 책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이 펼쳐져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인류 역사 가운데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인봉에 잠겨 있어 펼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이기에 그 누구도 손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5장 2절>에 보시면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천사의 큰 음성이 들립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누가 하나님의 오른손의 책을 취하여 그것을 펼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룰 것인가?
그런데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고나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그 누가 하나님의 오른 손의 책을 취하겠습니까?
그래서 요한이 통곡을 하며 웁니다.
그때입니다.
<요한계시록 5절-7절>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요한은 그 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러면서 7절에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자 찬송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 찬송은 이십사 장로들로부터 시작됩니다.
<8-9절>
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그러자 이 찬송은 천사들의 찬송으로 이어집니다.
<11-12절>
11.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이제 이 찬송은 모든 피조물로 이어집니다.
<13-14절>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성도들로부터 시작된 찬송이 천사들로 이어지고 마침내 모든 피조물이 찬송합니다.
그들의 찬송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구원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섭리 그리고 구원의 계획 이를 이루시기 위해 역사 가운데 오시고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우리의 찬송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고 성령님의 다스림.
성경에서 찬송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러한 삼위일체적 성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바울의 찬송을 보면 이러한 삼위일체적 성경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3절- 6절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송합니다. 7절- 12절. 그리고 성령 하나님 13-14절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지금 찬송하리로다 라고 할 때는 그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삼위하나님과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은혜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찬송은 어떠합니까?
저는 오늘날 우리의 찬송이 성경에서 너무나 많이 멀어져 있음을 봅니다. 많은 찬송이 개인적인 삶의 고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신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고백적 차원에서 찬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찬송의 본질은 성삼위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다스림입니다. 이러한 찬양이 많이 올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고백적 찬양이 드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의 이유 -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심
다음으로 바울의 찬송의 이유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성삼위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가 찬송하는 이유를 3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의 찬송의 이유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무엇인가? 구체적인 내용은 5절부터 진행되고 그 초점은 구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로 복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복입니다(every spiritual blessing).
바울은 이것을 물질의 복과 대조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복은 대체적으로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재물, 건강, 사업의 형통함, 많은 자녀 등이죠.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에게 복은 영적입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 우리가 복을 이해함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이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분을 알지 못하면 그 복의 가치와 유익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제가 희수에게 100만원과 과자를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과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희수는 아직 돈의 가치와 유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희수에게 과자를 사주면 좋아합니다. 그것을 통해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 느낍니다. 또한 아빠가 그것을 사줄 능력이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달라지죠.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물질적 축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불충할 때는 그랬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 예수님 믿고 은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많이 체험하죠. 병이 낫기도 하고, 물질의 복을 받기도 합니다. 계획한 일들일 잘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게 되죠.
그러나 신약에서는 복의 개념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었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격적이고 하나님,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에 깨닫게 된 복은 영적인 것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질적인 것들, 눈에 보이는 복은 금방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면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애써 쌓아놓은 통장의 돈이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힘들게 올라선 자리도 나이가 되면 내려와야 합니다. 젊을 때 자랑했던 건강도 시간이 지나면 피곤을 이길 수 없어집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았던 우리의 자녀들, 때로는 삶의 의지와 목적이 되었던 아이들도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축복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함에 따라 영적인 복들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주어진 복에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보면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시점이 완료입니다.
‘신령한 복을 줄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너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하늘의 신령한 복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지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염치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가치와 유익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중에 이렇게 기도하죠.
<18-19절>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되면 이미 받은 신령한 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복은 기원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복입니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영적인 것들이고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세 번째 이러한 복은 어떻게 받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받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에베소서에 계속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그림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 농부가 되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 그리고 성도들은 거기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의 안에 거하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분은 나무의 뿌리를 통하여 올라와 가지에 전달됩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으면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에게 신령한 복음 예수 안에 있을 때 받게 됩니다. 그분을 떠나서 받는 축복은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좋고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하늘의 신령한 복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그 복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으로 성삼위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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