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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1 07:37

빌립보서 강해 12.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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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2/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2015. 6.21

 

빌립보서 2:9-11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강해 12번째 시간으로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의 영역에서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이해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어떤 사실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된 믿음은 잘못된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잘못된 신앙에 감정적 열성이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도 파괴시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르게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겸손함, 온유함, 풍성한 사랑을 배워 인격적으로 성숙해 집니다.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반면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변화가 없다면 그 신앙은 잘못되었거나 병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잘못된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아니면 아애 잘못된 가르침일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깨어서 우리가 전하고 듣는 말씀이 바른 것인가? 성경적인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 전체는 예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도덕적 교훈이나 윤리적 지침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가 그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 당시 성도들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찬송시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지난 시간부터 살펴보고 있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두 개의 주제로 분리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입니다.

아주 간결한 찬송시지만 성경전체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우리가 잘 이해하기만 하여도 성경을
관통하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찬송시는 교회의 하나됨의 모델로서 제시되고 있기에 우리가 이 모습을 본받게 되면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핵심적 내용은 바로 예수님이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었고 또한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러한 낮아짐과 높아짐이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로 작용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 ‘낮추심과 높이심’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성경의 인물중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셉과 모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죄수, 살인자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통치하실 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바닥을 치는 어려움을 겪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겸손케 되어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을 때 하나님은 그를 높여주십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 그리고 야고보와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서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바로 예수님을 모델로 하여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게 될 텐데
첫 번째가 예수님의 높아지심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예수님의 높아지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9절에 보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십자가에 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그리고 보좌에 앉으심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정리한 단어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첫 번째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부활”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가 용서되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보면 그분께서 어떤 모습이셨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활 후 예수님께서는 40일간 이 땅에 계셨습니다. 성경에는 부활의 몸으로 총12회 등장하십니다. 그중에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도마와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자 도마는 믿지 않습니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을 보고 찔린 창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본 후에야 예수님임을 믿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동일한 몸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창에 찔리고, 못 박히는 몸과 어느정도 연속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수안에 있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동일하게 부활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죽음이후에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고전 15:42-49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후에 우리의 모습이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프고 병드는 죄악 된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부활 후에는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가는 잠깐 동안의 수면상태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고 일어나면 간밤에 꿈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을지라도 잊힙니다. 그래서 한순간의 꿈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육신이 수명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은 활발합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삶이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화려한 날갯짓을 하듯이, 겨울에 죽은 듯 메말랐던 가지에 봄이 되어 화려한 꽃을 피우듯이 우리의 부활도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승천
두 번째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승천”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하늘로 그 장소를 옮기심이 승천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상태도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음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요한이 밧모섬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요한은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1:17)”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요한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어서 우리가 감히 고개를 들어 볼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다메섹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러한 광채는 부활직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승천은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에로 복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는 예수님의 승천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늘로 그의 인성과 함께 올라가신 것입니다. 승천하신 곳은 구원받은 자들과 천사들이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보좌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사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타나사 그의 피흘려 속죄하신 사역을 보고하여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피흘린 그 몸으로 아버지의 얼굴 앞에 나타나 속죄사역을 보고하심으로 속제제사의 완성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이러한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육이 하나님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승천이 우리의 구원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히브리서 10:19-20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의 인성이 하나님 앞에 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앞에 직접 갈 수 있는 것도 승천하신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앞에 가 있기 때문에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 된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심


세 번째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보좌에 앉으심”입니다.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은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승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18). 그 통치의 시작이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조성하시고, 그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성에 빛을 비추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시기에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은 세상을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역사의 진행목표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무의미한 사건들의 진행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합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 하나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인생이 경영되었다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만 보아도 내 자신의 의지적 노력과 결단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노력하여도 이해되지 않는 성경의 진리가 우리에게는 이해되어지고 믿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길을 놓아버리지만 우리는 그 길을 더욱 붙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계심을 나타냅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사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시키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통지를 우리가 믿는다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회할 것도 미련을 가질 것도 없습니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날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하늘보좌에서 우리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것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9절 후반부터 보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신 이유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1: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본질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과 독특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야곱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부여하시면서 예수님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의 인격과 본질의 변화를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우리도 부활의 몸으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이름을 부여해 주십니다. 아직 알지 못하지만 그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님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1절에 보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바로 “주”라는 호칭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주” 라는 호칭이 바로 가장 간결한 우리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으로 예수님 당시 흔했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메시야의 번역입니다. 기름부음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왕이나 제자상 선지자가 그 직분을 수행할 때 행했던 의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할 때는 예수님이 왕, 제자상, 선지자로서 그 직분과 사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야웨)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너무 거룩하여 성경에 그것이 나올 때마다 발음하지 “아도나이”로 읽었습니다.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도 바로 그 정신을 살펴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 “여호와(야웨)”를 “퀴리오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퀘리오스라”가 우리말로 하면 “주”라는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퀴리오스”, 즉 ‘예수 그리스도 주’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할 때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야,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을 때 외쳤던 그 고백이“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누가복음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주. 구원자 하나님이셨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 이것이 바로 사도들의 복음전파의 핵심이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바울은 로마서 10:9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8:5-6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요한계시록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예수를 주라고 하는 표현은 신약성경에만 747번 등장합니다. 그만큼 이 이름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를 때 구원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입술로 주님, 주님 부르는 것이 아니라, 2천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늘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고백을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면 그처럼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시편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이 이름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반면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입 맞추는 자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를 낮추시고 높이사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대행케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주사 우주의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예배 받으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높이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목적은 그 이름을 시인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11절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 가장 영광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된다는 것이며 내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자리자리마다 넘쳐나길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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