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5-07-31 14:43

빌립보서 강해 3. 바울의 감사와 기쁨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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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3/바울의 감사와 기쁨 2015. 4.12

 

빌립보서 1:3-7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우리는 지난 시간 빌립보서 1:1,2절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수신자들에 대하여는 예수 안에 있는 자들, 그리고 성도라는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를 향하여 드리는 감사와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감사와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가?에 주목할 것입니다.

3절에 먼저 바울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어떨 때 감사한다고 말합니까?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또 4절에 보면 바울은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그동안 빌립보교회를 자주 생각하였고, 또한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바울 서신 전체를 통해 살펴보았을 때, 정기적인 기도, 즉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어떠했기에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은 감사하고,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였을까요?

당시 빌립보교회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사랑의 교제가 풍성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3장 초반에 보면 유대주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은밀히 들어온 이단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4장에 보면 교회의 분열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4:2절에 유오디아와 순두개라는 두 여성 리더가 언급되는데 이들이 교회안에서 분열된 것입니다. 우리가 빌립보교회의 설립배경에 대하여 2주전에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시작될 때 강가에 모여 기도하는 여성 무리들 중 루디아의 회심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회는 처음부터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시선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러한 문제를 넘어서는 어떠한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또는 생각하고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를 들어 부모님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 어떠합니까?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까? 오히려 걱정과 근심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비록 문제가 있지만 먼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선과 관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만 보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잘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문제를 보지 않고 감사할 것과 기뻐할 것을 기억하고 생각합니다. 문제들은 차츰 해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기쁨은 억지로 짜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바라보는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삶이라는 것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없는 가정이 없고, 어려움 없는 시기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습속에서, 특히 말속에는 불평과 원망과 짜증이 섞여있습니다. “왜 우리 가정은 이것 밖에 되지 않는가?” “왜 내 모습은 이렇게 초라한가?” “왜 내가 원하는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불평과 원망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은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부모님에게 자녀들에게 그리고 또한 내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와 기쁨으로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인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하면, 병고치고 예언하는 것이 떠오르지만, 물론 이런 것도 능력이겠지요. 그러나 지난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아닙니다. 진정한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시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으로 좌절가운데 자들에게 그것을 말해줄 때 그들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증거 두 가지
그렇다면 바울이 바라보았던 그 은혜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5절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이 가지고 있는 확신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절에 “참여”라는 단어는 원어로 ‘코니노니아’입니다. 교제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함께 ‘코이노니아(교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위한 일에 함께 교제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제”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 예배 후 함께 모여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제의 원래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을 포함합니다. 지금 바울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을 때는 빌립보 성도들의 물질적인 후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그러한 바울을 돕고자 헌금을 하여 그것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워낙 험난한 여정이어서 에바브로디도가 도착하자마자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가뜩이나 바울이 감옥에 갇혀 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에바브로디도까지 죽을병에 걸렸으니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에 큰 근심이 생긴 것입니다.

 

빌립보서 2:25-28절을 보겠습니다.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렸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제는 회복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다시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10-20절입니다.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렇게 읽어보니까 지금 어떤 상황에서 바울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두 번이나 선교헌금을 후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너희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이 풍족하고 또한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표현과 동시에 물질적으로 충분하다는 의사를 표현한 부분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온 선교후원금을 받아들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함과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편지의 서두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제”라는 것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도 포함됩니다.

 

5년전에 아버지께서 폐암선고를 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암보험을 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들이 돈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막막할 때 안양에 있는 샘병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은 샘물교회의 신실한 장로님께서 원장님으로 계시는 곳입니다. 원무과에 선교사들을 위한 창구가 있을 정도로 병원의 모든 시스템이 기독교정신으로 무장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선생님께 저희의 어려운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폐암환자를 위한 임상실험이 있다고 합니다. 안양 지역에서 5명의 사람을 모집하는데 몇 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의 암조직이 위험한 위치에 있어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힘써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찾아갔을 때 의사선생님은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절망적인 눈빛으로 간절하게 부탁을 드리자, 그 자리에서 몇몇 의사선생님과 통화하여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상대상자로 확정해 주셨습니다. 치료의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큰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5개월 정도 무상으로 약 5천만원 정도의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병원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함께 나누면서 희망을 갖게 되고, 치유되기도 하고, 또 비록 죽음의 상황에 처할지라도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기쁨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경험되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이러한 ‘코이노니아’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도 빌립보교회에서 처음부터 도움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돕는 교회로 시작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사와 기쁨의 근원은 바로 복음을 중심으로 한 ‘코이노니아’에 있었습니다. 비록 빌립보교회에 이단의 문제와 분열의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확실한 증거인 ‘코이노니아’가 있기에 감사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바울의 감사와 기쁨은 이유는 바울의 확신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어떠한 확신인가?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어떤 확신입니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여기서 착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시작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일을 “예수의 날”, 예수의 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그날은 최후의 심판이 있는 날이며 구원받은 자들은 완전한 구원에 이르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6절의 바울의 확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일은 완전해지고 완성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교회의 문제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의 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6절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신실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물어보면 “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답은 맞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대답은 아닙니다. 왜일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내가 어느 순간 믿게 되었다는 것인데, 만일 내 인생의 여정속에서 또 어느 순간 그 믿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구원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믿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거기에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는 조금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실 때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신실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들이 거룩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물어보면 성경적인 대답은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도 맞지만 더 정확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가 더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완성됩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마무리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완성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주 만물을 생각해 봅시다. 모두가 완성품입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 그리고 모든 행성들의 위치나 움직임을 보면 완벽합니다. 또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보아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아릅답게 핀 꽃만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게 창조되었는가를 봅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다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성 속에서 여전히 세상의 악과 내 속에 있는 연약함과 싸워 나가지만 그 구원은 마침내 완성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보길 원합니다. 
에베소서 2:1-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절에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죽은 상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
그렇다면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습니까? 스스로 노력해서 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생명이 그 안에 들어가서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6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함께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가 생명을 얻은 것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또 중요한 구절인데 6절 보면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앉힐 것이다 미래 시제가 아니라 이미 앉혀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을 보니까...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까?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그렇다면 은혜는 누가 내려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음은 누가 믿는 것입니까?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 즉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다면 완성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상태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여전히 죄악 된 상황 속에 놓여있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는 하늘에 앉혀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기에 우리의 존재가 여기도 있지만 이미 천국에도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시작하셨구나 그렇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고 그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바라볼 때도 그리고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시선이 있을 때 문제를 초월하는 감사와 기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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