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5-08-01 07:24

빌립보서 강해 9. 교회의 하나됨_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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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9/ 교회의 하나됨-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2015. 5.24

 

빌립보서 2:1-4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비록 성경에 2장부터 등장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1장 27절 부터가 본격적으로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실질적인 권면의 말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7절부터 30절까의 내용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세 가지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1.한 마음으로 서는 것
2.한 뜻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것
3.고난도 은혜로 받는 것

당시 빌립보 교회가 어둠의 악한 영들을 대항하여서 이러한 자세로 든든히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2:1-4절까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그 내용은 겸손과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5-11절은 하나됨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1:27-2:11절까지가 하나됨이라는 주제로 묶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긴문장인데 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의미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주요문장은 4절의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입니다. 바울은 이미 편지의 서두부터 자신이 기쁨가운데 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너희를 생각하면 기쁘고(1:4) 또 내 자신을 보아도 기쁘다는 것입니다(1:18). 비록 감옥에 있지만 이것으로 인해 복음이 증거되고 있어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이 내 안에 있는데 너희가 나의 이러한 기쁨을 충만케 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됨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 된다면 비록 감옥에 있지만 나의 기쁨은 충만해 지고 완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하나됨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빌립보교회 가운데 분열의 문제가 있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린도교회처럼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하면서 심각한 분열을 겪지는 않았지만 3장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교회에 은밀히 들어와 있었고, 또 4장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리더 간에 분열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1절을 보면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여기보면 4가지 하나되게 하는 4가지 동기가 나옵니다. ⓵그리스도안에 권면, ⓶사랑의 위로, ⓷성령의 교제, ⓸긍휼과 자비 이러한 것이 있다면 4가지 하나됨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말합니다. 2절에 ⓵마음을 같이 하는 것 ⓶같은 사랑 ⓷뜻을 합하여 ⓸한 마음, 그리고 3가지 하나됨의 실천이 등장합니다.
3절-4절
⓵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⓶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⓷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정리하면 1절은 4가지 하나됨의 동기이고, 2절은 4가지 하나됨의 자세, 3,4절은 3가지 하나됨의 실천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부터는 11절은 하나됨의 모범이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은 하나됨의 동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을 읽어보니까 ‘이러한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원문을 직역해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의 교제를 나누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와 긍휼을 받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같은 마음을 품어서 나의 기쁨을 완성하시오... 이러한 내용입니다. 즉 이미 여러분 안에 4가지 하나됨의 동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권면
그 첫 번째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입니다. 권면은 원어로 ‘파라클레시스’입니다. 파라클레시스와 비슷한 단어가 요한복음 14장에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14장에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것의 보혜사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파라’라는 의미는 옆에 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돕는자, 위로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세상을 떠날 것을 말씀하자 제자들이 두려움과 근심가운에 빠집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와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파라클레시스’ 권면이라는 것은 마치 보혜사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성도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권면은 단지 좋은 충고의 말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행하셨던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권면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권면하셨는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의 삶에서 지혜와 판단력을 주시고, 때로는 죄악된 세상에서 상처입고 방황할 때 위로하시며, 죄악 된 삶을 살 때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사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또한 기도하게 하시고 평안함을 주시며,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이 권면입니다. 이것을 잘 했던 성경의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사도행전 4:36절에 보면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그가 위로와 권면의 아들이란 호칭으로 불려집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은 교회 가운데 직접적이든 또는 사람을 통해서든 나타납니다. 이러한 권면의 특징은 지혜롭고 따스하며 친절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의 죄를 책망합니다. 이러한 권면이 교회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연합의 관계를 지속하도록 돕는 것이 권면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비록 적은 수가 이 자리에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 다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런대 때로 그 연약함이 드나날 때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두가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함께 하면서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감정 섞인 말을 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상대방의 연약함을 알아갑니다. “아, 저 사람에게 저런면이 있었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권면한답시고, “당신은 이러이러한 면에 있어서 잘못한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죄이지 권면이 아닙니다.

권면이라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 그 모델입니다. 성령님은 친절하고 따듯하고 지혜롭게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강하게 책망도하십니다. 그러한 다양한 접근은 우리를 그만큼 잘 이해하시고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설프게 권면한다면 상대방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그것은 권면이 아닙니다. 권면의 목적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충고나 평가하는 말이나 정죄의 말은 권면이 아닙니다. 우리가 권면하고자 할 때는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가 회복될까를 기도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사 지혜를 주십니다. 그때 바른 권면을 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지금 미취학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집을 방문해서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한 아이가 언어능력이 부족합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엄마가 일을 하니까 할머니가 키웁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집에서 상대방의 눈을 맞추고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장력이 부족하고 말이 어눌합니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또래 아이들에 들에 비해서 점점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서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주어야 하는지 아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 아내스타일은 돌직구형입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입니다.


“어머니 아이가 말이 어눌하고 문장력이 없어요. 엄마와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일을 줄이시고 아이와 대화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받아들일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어머니 아이가 암기력이 좋고 공부할 때 집중도 잘합니다.  그런데 언어능력이 조금 부족한데 이것만 고치면 훨씬 더 자신감 있는 아이로 성장할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일을 좀 줄이시고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세요.”

물론 이렇게 말해도 고쳐지지 않을 때는 좀 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 아이가 말을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권면의 목적입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아주 강한 책망으로 권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반복해서 죄악을 행할 때 그는 양심이 무뎌져 있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권면으로는 그를 살려낼 수 없습니다. 그때는 강하고 따끔한 권면으로 그를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교회내에서 권면의 목적은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상대방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설픈 권면으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덧붙여 우리는 항상 성도들의 권면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자존심을 세우거나 자신을 합리화하기보다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항상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할 때 교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위로
두 번째, 사랑의 위로입니다. 권면은 성도들 간의 잘못된 행실이나 말과 관계된 것이라면 위로는 어려움과 절망 그리고 상처 가운데 있는 자들과 관련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권면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지금 위로가 필요한가 아니면 권면이 필요한가? 아니면 둘 다 필요한가?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인데 사랑이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위로’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위로가 안 됩니다.

뉴질랜드에서 사역할 때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뉴질랜드 사역을 접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를 떠날 때 사람들의 반응이 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던 일을 접고 한국으로 가느냐?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함께 안타까워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교회를 떠나는 주일이었습니다. 마오리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늘 큰 개를 끌고 다니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인사를 하자 제 손을 꼭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 잠깐 동안의 시간 속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의 그분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위로는 상처입고 절망적인 성도를 일으켜 세우고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한 위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위로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의 위로는 넘어지고 상처 입은 성도에게 용기를 주어 견디게 합니다.

 

고후1:3-6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이렇게 성도들은 위로를 통해서 고난을 견디고 험악한 인생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홀로 험악한 세상길을 헤쳐 나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야 할 때가 있고, 또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형제의 아픔을 보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위로가 넘쳐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험악한 인생길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교제
세 번째 성령의 교제입니다. 성령님의 교제에 대해서는 빌립보서 1장 초반부를 다룰 때 나눈적이 있습니다. 교제는 원로로 ‘코이노니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포함합니다. 성령의 교제라는 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 간에 교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교회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성도가 지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 각자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기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교회모습 속에서 교제라는 것은 마치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기관들이 활동력 있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피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가운데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교회는 생동력과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성령의 교제가 활력있게 진행되도록 먼저는 기도하고 또한 실천해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긍휼과 자비입니다. 긍휼은 원어로 ‘스플랑크’인데 몸의 위를 말하고, ‘자비’는 오이크르모이는 내장을 말합니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심, 자비심이 위 또는 내장에서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말에 ‘애가 탄다’ ‘애를 태운다’는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애는 내장을 가리킵니다. 마치 내장이 타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이러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실 때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하나님은 정죄와 심판의 자세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범할 때도 긍휼과 자비로 우리를 다시금 용서하시고 세워주십니다. 그러다 또 넘어지면 또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저는 이러한 긍휼과 자비를 부모님에게서 느꼈습니다.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참아주시고 인내하시고 묵묵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대할 때도 긍휼과 자비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연약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대할 때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 또한 허물 많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물은 감싸주시고 연약함은 덮어주셨습니다. 만일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다 드러내셨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던 자비와 긍휼이 이제는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만일 교회에 긍휼과 자비가 없다면 그것은 세상의 공동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4가지가 교회를 건강하게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도 안 되고 네 가지 모두가 필요한 것입니다. 권면은 많은데 위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교회는 분위기는 메마를 것입니다. 반면 위로는 많은데 권면이 없다면 성도들이 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가 많은데 권면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도들이 죄악에 대하여 무뎌질 것입니다. 세 가지는 풍족한데 성령의 교제가 부족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하여 힘을 잃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 주에 기도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안의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마땅히 있는 것이 교회이며 그것을 풍성하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기둥으로 하여 기쁜우리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힘쓰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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