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5-10-04 14:59

빌립보서 강해 27.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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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27/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2015.10.4.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빌립보서 강해 27번째 시간으로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에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살펴본 대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준 헌금과 음식 그리고 옷가지 등을 받아들고 감격했고 또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 한편에서는 염려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바울의 감사와 기쁨 때문에 저들이 행여 헌금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께서 우리의 헌금을 받고 무척 기뻐하시는데 우리 더 헌신합시다. 헌금을 더 모아서 바울에게 보냅시다”라고 할까봐 바울이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지금 자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보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 바울의 마음에 걱정되는 것이, 이렇게 내가 자족한다고 하면 저들이 정성껏 보낸 헌금에 대해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1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 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한 것이 자신의 괴로움에 동참한 것이기 때문에 잘 하였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5절에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도 헌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두 번씩이나 선교비를 보낸 것입니다. 바울은 그때를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글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헌금을 들고 기뻐한다고 하면 행여 부담을 느낄까, 그렇다고 괜찮다고 하면 정성껏 보낸 선물인데 섭섭해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바울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절대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마치 부모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홀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를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복음은 사역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늘 감사하고 기뻐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성도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행여나 성도들이 자신 때문에 신경 쓰고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조심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내주는 헌금이 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성도들이 보낸 헌금을 들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의 마지막에 이제 헌금을 보내지 말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홀로 감당합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수는 있겠지요. 왜냐하면 기쁨은 함께 나눌수록 커집니다. 그러나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은 함께 나누어도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을 나누면 함께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참 부모님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큰 고난이나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습니다. 삶의 어려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철이 없어서 몰랐던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부모님께서 다 감당하신 것입니다. 고통을 저희들과 함께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 앞에서는 늘 당당하시고 여유로우셨습니다.

저는 바울이 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고통당할 바울을 생각하며 염려가운데 있는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고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나는 배고파도 궁핍해도 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참 고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와 사역자간에 주고받는 아름다운 사랑과 배려의 관계가 참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17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그렇지요? 바울은 이제 더 이상 물질을 보내지 말 것을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유익”이라는 말은 은행에서 사용하는 상업용어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이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헌금이 이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요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어 마침내 풍성한 이자로 불어나게 되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헌금을 드린 여러분들의 손길위에 풍성한 축복으로 갚아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바울은 성도들의 헌금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애틋한 사랑의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던컨 목사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뉴질랜드 New Hope community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시는데 연세가 70이 넘으셨습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이분으로부터 시계가 달린 나무로 된 장식물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장식물 밑에 영어로 이 말씀이 쓰여 있었습니다.
“my God will supply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in Christ Jesus” 

그래서 일까요? 저희는 뉴질랜드에서 사역할 때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마치 이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듯 말입니다.
한번은 뉴질랜드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의 일입니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월급이 아니라 주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패턴이 주 단위로 돌아갑니다. 당시 아내는 홈케어라고 해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 집에 방문하여서 목욕이나 청소를 해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타과외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집 렌트비를 내고 주유료 하고 생활비를 하면 거의 빠듯합니다. 아마 그때가 겨울인지 가을이었을 것입니다. 스산하게 찬 바람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마트에 들려서 필요한 것을 사고 나니 주머니에 한푼도 안남은 것입니다. 주급을 받을 날은 며칠 뒤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마트문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날 월남국수가 먹고 싶냐?” 그렇게 터덜터널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차문을 열려고 할 때 저쪽에서부터 바람이 우리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많은 낙옆들이 함께 뒹둘고 있었습니다. 점점 저희쪽으로 그 낙옆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잘 보니까 그 속에 파란색 종이 한 장이 함께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파란색 종이가 제 발 앞에 떨어졌습니다. 주어보니 20불짜리였습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또 있나 봐봐” 머리를 숙여보니 차 밑에 또 한 장이 있었습니다. 40불,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떨어뜨렸을까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주차장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물론 아무도 없기를 바랐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어디로 갔겠습니까? 월남국수 먹으러 갔습니다. 그때 먹은 그 월남국수가 어찌나 맛있던지....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채워주시는 구나. 참 참사했습니다. 이러한 채우심이 손길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채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과 믿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바울은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쓸 것을 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쓸 것을 반드시 채우실 것이라고 확신하여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보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all your needs”입니다. 너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all your wants”가 아닙니다.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닙니다. 너희의 모든 필요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하여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그네로서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욕망의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소유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삶에 대하여 자족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품게 되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힘들어하는 많은 이유가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신실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윗의 이 고백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풍족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번영의 신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아 부유하게 된다는것입니다. 또 고지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높은 고지를 점령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는 것입니다. 번영의 신학은 1960년대 시작된 새마을 운동의 표어인 ‘잘 살아보세’와 맞물려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고지론은 1990년대 자본주의의 성공신화와 맞물려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목사님 두 분이 현재 돈 문제로 그리고 성문제로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러한 잘못된 신학에 물들어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성도들은 예수 믿고 잘 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업도 성공하고 병도 고치고 문제도 해결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자신이 없는 것에 대하여 자꾸만 부족함을 느낍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되는데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여호와가 목자이신 것은 감사하지만 더 이상의 것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만 삶의 문제에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장인어른께서 치매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여호와께서 장인어른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장인어른의 목자가 아니라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걱정하고 염려해야 지요. 그러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영어로 보면  “I shall not want.”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인생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갈 때 부족함이 없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풍성하게 해준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부요한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19절에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시되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인색하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풍성하게 주시고 후하게 주십니다.
롬8:32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마7:11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기도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지칭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것은 인격성, 내재성을 의미합니다. 즉 전능하시고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우리의 아버지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17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엡3:20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그 분의 풍성하심으로 우리를 채우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분의 풍성함을 담을 만한 인격의 그릇이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풍성한 은혜를 주셨지만 어리석은 우리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그 풍성한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택하시고 부르셔서 주신 은혜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은혜의 풍성함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습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영광중에 계신 그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깊게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보석인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이 보석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가치를 알 때 지금 내 가운데 넘치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돈도 중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나의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나의 하나님”이 채우신다고 했을 때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말합니다. 자신의 인생의 여정에서 늘 채우셨던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쓸 것을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처럼 진실하고 가슴 뭉클한 고백이 없습니다.
시편 18편에 보면
1.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수많은 원수들의 위협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자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한 것입니다. 이것은 책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는 누군가의 간증이나 설교를 통하여 경험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실제로 내 인생 가운데 인도하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바울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생에 신실하셨고 한번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뜻은 완벽하셨기에 내가 경험한 나의 하나님, 그 분께서 너희도 인도하시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하나님을 생각하니 마음속에서부터 찬양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절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껏 하나님은 풍성함으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고 확신가운데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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