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진리

15-12-07 14:32

기독교의 핵심진리 7.칭의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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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진리 7. 칭의/2015.12.5.

 

로마서 3:21-26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의 핵심진리 7번째 시간으로 칭의라는 주제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확고한 반석위에 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으로 보낸 서신입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이미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들에게 다시금 복음을 들려주기 원했던 것은 이 복음은 단지 우리가 회심할 때 한번 듣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다시금 들려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다시금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 원하는 것은 이 복음이 우리에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복음을 들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소성케 되며 하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321절 말씀은 이제는으로 시작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But now”, “그러나 이제라는 의미입니다.

신학자들은 그러나 이제” “But now”를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반전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320절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며 그러기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좀더 현대적인 표현을 하자면, 어떤 선한행위를 통해서도 결코 우리의 죄가 사함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바울은

이제는이라는 단어를 통해 위대한 반전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동안은 Good news가 아니라 Bad news 였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공의로운 하나님의 진노만이 남겨져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But now”

인류의 역사가운데 위대한 반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는데 그러나 이제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죄인이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죄인이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저는 어릴 적 전도사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프리카 흑인 아이가 자신의 피부색이 너무나 싫어서 개울가에 가서 돌을 가지고 피나나도록 벗겨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까마귀가 백로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인이 의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인이 의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단어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속량

첫 번째는 속량이라는 단어입니다.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이라는 단어는 당시 시장에서 사용되던 단어였습니다.

우리가 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나 또는 그 밖에 쿼바디스, 벤허 같은 영화를 보면 당시 로마의 노예시장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시 로마의 노예들은 인구의 절반이상이나 되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노예시장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당시 노예시장에서 쓰이는 단어였습니다.

 

간혹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친인척 중에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을 주고 그 노예를 사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그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속량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우리들은 죄의 노예이며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죄가 이끄는 데로 살았습니다. 죄와 대항하여 싸웠지만 늘 패배하였습니다. 또한 죄를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노예로서의 신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루시고 사셨습니다.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자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24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는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값을 치루지 않았습니다. 아니 우리로서는 값을 치룰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죗값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죄가 사해질까요?

여러분!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자체가 그렇습니다. 성철스님께서 마지막순간에 내 죄가 수미산처럼 높다 고백한 것 처럼, 진정으로 양심이 살아있는 자들은 자신의 죄악 됨을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죄에 대하여 무력한 존재인가 깨닫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내 죄가 사해지겠으며, 만약 그렇다고 하여도 죄인인 신분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다.

 

죄인으로서 죄의 값을 치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밖에서의 초월적 존재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일을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루셨습니다. 그 대가는 바로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죄의 저주와 심판을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오늘날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목거리로, 귀걸이로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십자가를 보면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십자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끔찍한 처형도구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이 형벌이 너무 가혹한 것이어서 국가반역죄나 살인 등의 악질적인 죄인에 대하여만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지나다가도 십자가 형벌을 받은 자들이 보면 얼굴을 돌렸고, 아이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그 죽음이 너무나 처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주 자체였습니다. 신명기 말씀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저주의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예수님의 죄는 신성모독죄와 성전모독죄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 사함의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눈에는 신성모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C.S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과대망상증 미치광이이든가, 아니면 진짜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가능성 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성자라는 말이 들어갈 구석이 없습니다. 미치광이든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와 성전모독죄를 적용하여 종교재판에 회부합니다. 그러나 종교법으로는 형벌에 처할 수 없기에 로마법정에 호소하기 위하여 국가반란죄를 덮어 씌운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죄악스러운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악의 극치입니다. 즉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잔혹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뺨을 치며, 하나님의 아들에게 침을 뱉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손에 못을 박고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릅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조롱합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행한 인간의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치른 대가가 이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한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께는 잊지 못한 큰 상처하나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십자가가 그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대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저주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그에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죄의 진노와 저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버림받고 찢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입니다.

바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24절 다시 볼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사단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의인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여 그 기쁨과 사랑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값을 치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찬양할 노래, 바로 하나님의 구원, 그 십자가의 은혜인 것입니다.

 

화목제물

두 번째, 바울은 화목제물이라는 단어를 통해 의롭게 됨을 설명합니다.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화목제물이란 제사용어입니다.

로마서를 쓸 당시 화목제물이라는 것은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하여 드리는 제물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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