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진리 1/창조주 하나님/2015.10.18.
창세기 1:1-5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오늘부터 ‘기독교의 핵심진리’라는 주제로 앞으로 8주 동안 하나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을 유신론자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불가지론자라고 부릅니다.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어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든 이 세 부류 중에 하나에 속할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도 여러 갈래로 나눠집니다. 신은 한분이라고 믿는 유일신론과 신은 여럿이라고 믿는 다신론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이라고 믿는 범신론이 있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도 보면 실제적으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차를 사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 고사를 지낸다거나 또는 제사를 지낼 때의 모습을 보면 신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를 할 때 손 없는 날을 잡는 다던가,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본다던가 하는 일들도 신의 존재를 의식한 행동입니다. 그것이 하늘신이던 땅신이던 바다신이던 조상신이던 또는 귀신이던 간에 신적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은 저마다 다릅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또는 종족 주변의 환경 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달라집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이 믿는 신과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믿는 신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신은 있는 것이며 또한 어떤 신이 참신일까요?
그런데 인간이 신의 존에 대하여 알려는 모든 시도는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경험으로 우리를 초월하신 분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고, 그 허상에 인간들의 바램과 소원을 담아 신이라고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결코 신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신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신이 어떤 신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가 만들어낸 수호신일 뿐이지 참 신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에 대하여 결코 알 수 없는 것일까요? 불가지론자들처럼 신은 시공간의 초월하여 계신 분임으로 우리의 제한된 이성과 지혜로는 결코 인식이 불가능 한 것일까요?
그런데 인류역사 가운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먼저 한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4천년전의 일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 을 말씀하셨습니다(창12). 그리고 그 일을 가나안이라는 지역에서부터 시작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따라 그의 인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흘렀습니다. 40대의 한 남성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호렙산이라는 곳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출3). 모세는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떨기나무는 타지 않았고 그 가운데 어떤 존재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경이로운 나머지 그곳에 가까이 갈 때에 그 신적존재는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모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믿었던 하나님임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전에 아브라함에 말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가나안땅에서부터 세울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일에 너를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모세의 인생에 함께 하시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계획과 뜻이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기록하여 책으로 남기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 글이 없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우리의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마다의 추측만 난무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우주론 학자들중에 어떤 사람은 100억 년 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200억년 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추측할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략 137억년이라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숫자도 합의한 숫자이지 검증된 숫자는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고 그 폭발로 말미암아 우주는 10⁻³⁴초마다 그 크기가 두 배로 늘어나면서 정신없이 팽창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팽창이 1초의 100만분의 100만분의 100만분의 100만분의 1에 해당하는 10⁻³⁰초 이내에 끝났지만, 그 결과로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였던 우주가 무려 1하고 뒤로 0이 24개 붙은 배로 커졌다고 합니다(10.000,000,000,000,000,000,000,000). 그리고 이러한 우주의 팽창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물질들이 결합하여서 생명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53년 시카고 대학의 대학원 학생이었던 스탠리 밀러는 원시의 바다를 나타내는 약간의 물이 담긴 플라크스와 초기 지구 대기에 해당하는 메탄, 암모니아, 황화수소 기체의 혼합물이 담긴 플라스크를 고무관으로 연결한 후에 번개를 대신할 수 있도록 전기 방전을 일으켰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플라스크 속의 물은 아미노산, 지방산, 당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기물이 뒤섞인 녹황색 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들은 이제 누군가가 잘 흔들어 주기만 하면 플라스크 속에서 생명이 기어 나올 것처럼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러한 실험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일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아주 원시적인 아미노산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문제는 단백질은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100만 가지 정도의 단백질이 들어 있고 그런 단백질 하나하나가 작은 기적입니다. 모든 확률법칙에 따르면 단백질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콜라겐이라는 단백질을 만들려면 1,055개의 아미노산을 정확한 순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단백질은 아무런 지시도 없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조작하여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가능한가 하면 슬롯머신에 보통 3개 4개 판이 돌아가는데 1,055개의 회전판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회전판에는 아미노산의 수에 해당하는 20개의 기호를 새겨 넣습니다. 이제 1055개의 기호가 정확한 순서로 나열되려면 손잡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잡아 당겨야 할까요? 무한히 잡아 당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단백질 분자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도 불가능 합니다.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이러한 재미있는 비유를 했습니다. “회호리 바람이 폐차장을 휩쓸고 간 후에 완전히 조립된 점보 제트기가 남아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듯 그들은 우주의 기원은 빅뱅에 있으면 생명의 기원도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이 혼합되어 우연히 생명이 발생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이 세운 가설중 하나가 다중 우주론입니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생명이 생겨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검증된 것이 아니라 상상이고 추측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말했기 때문이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생명의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주 만물은 우연히 또는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그 분의 섭리가운데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주는 완벽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중력이 조금만 강하거나 약해져도 우주는 급속도로 팽창하거나 반대로 쪼그라져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기적들은 하나님께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땅과 바다와 동물과 식물등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함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시작합니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생명체를 창조하셨는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근원이 있습니다. 세상에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습니다.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로부터 생겨났을까요? 그것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원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존재하셨습니다. 빅뱅이나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無에서 有가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답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면 그들도 ‘하나님은 어디서부터 왔는가?’라고 도리어 질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했듯이 “스스로 있는 분”(출3:14)입니다. 하나님은 만들어진 분이 아닙니다. 리차드 도킨슨이라는 진화론자가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어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책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신은 스스로 있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경건하게 암송하는 성경구절 쉐마에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신6:4,새번역)”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하늘을 주관하는 신이 있고, 땅을 주관하는 신이 있고, 바다를 주관하는 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은 한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을 읽다보면 인간을 창조하는 대목에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나님이 한분이신대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세분이 계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하나님이 계신데 성경에는 성자 하나님이 등장하시고 또 성령 하나님도 등장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인격을 가지시고 하시는 사역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 세 분들이 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개념이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이 만든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이 창조주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창조주께서 밝혀주신 것만큼만 알아갈 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일 뿐이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개미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분이시만 또한 우리라고 말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여 계신 분임을 깨닫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분을 경외하게 만듭니다. 이해할 수 없기에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믿게 되고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도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 결혼은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어떤 신비적 에너지나 추상적인 어떤 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그 분은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들과 소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실 만큼 초월적 존재이시시만 동시에 인간과 함께 거하시며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초월성과 인격성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여질 것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2장에는 죽음이나 부패, 살인, 악의, 증오, 욕심, 교만, 파괴와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아주 선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그분에게서 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때로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만일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라고 이 땅에 왜 악과 고난이 존재하는가?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 기원도 아니고 악의 배후에 계신 분도 아닙니다. 처음 창조 때에는 모든 것이 선했고 그것은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관측하며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신비한지를 깨닫습니다. 생물학자들은 동식물의 정교함과 세밀함에 감탄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모습가운데 나타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은 결코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 각막의 정교함의 신비에 대하여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피조물 하나하나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탄합니다. 시편 1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감탄합니다.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다음으로 창세기 1,2장을 통해 인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인간이나 침팬지나 돼지나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가진 동일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가운데 인간이나 돌고래나 침팬지나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 동물이나 태어나고 살고 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반영하는가? 창세기1,2장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은 그분께 대답합니다. 서로 감정의 교류가 있고 언어로 표현하여 소통합니다.
또 인간에게는 창의성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창의성은 하나님의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無로부터 有를 만드셨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창의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본받아 어떠한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인류문명이 지금껏 이룬 모든 결과물들은 사실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고 밝혀내어 본뜬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 벧전1:16)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나타내는 것, 용서를 베푸는 것 등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이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차이와 구별이 있습니다. 여자가 돕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2: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책임에 있어서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그러나 차이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부부라는 관계를 맺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창조의 질서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확장되어 나갑니다.
세 번째, 남자와 그의 아내는 죄가 없었습니다.
창세기 2장 마지막 절에서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5절)고 말합니다. 이 벌거벗음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은 3장과 연관됩니다.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벌거벗었음을 인식하고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게 됩니다. 따라서 2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서로 숨길 것이 없는 순수하고 순결한 상태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창세기 1,2장을 통하여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임을 알게 됩니다. 특히 인간존재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특별한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모든 것이 선하고 완벽했음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조기사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놀라운 정도로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은 내가 경배하고 찬양해야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찬양의 주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위대하시고 피조물들은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왜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분이 나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명령할 수도 있고 내 삶을 그분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들까지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이 의존되어 있고 빚지고 있기에 창조주의 뜻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만이 참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그분만을 경외하여 예배하고 그 분의 뜻을 순종할 때만이 참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떤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즉 창조주로서 예배하며,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만이 참된 만족과 행복과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창조주 하나님만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 저 천국에 가서도 그 하나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헛된 것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그 분이 주시는 축복으로 우리 삶은 행복해 질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된 삶에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