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10.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강해 마지막시간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해”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이 땅 가운데 임할 때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여 임하기에,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책임져 주실 것임을 기도를 통하여 구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땅의 그분의 백성들이 그 나라를 위해 연합하여 일할 때 때로는 서로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주고 또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 있기에 서로 용서함으로 하나됨을 이룰 것을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살아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긴장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때로는 시험에 빠지기도 하고 악한 사단의 유혹가운데 있기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또한 악에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이것은 결국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이 가장 가치있고 여기는 것, 그리고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을 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들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또한 가장 시급한 것은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라고 이 기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당시 이 말씀을 듣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굉장히 파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문 이후에 진행되는 말씀을 보면, 그들의 삶은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정된 직장도 없었고 또 미래가 총망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뱃사람들이요, 공사장의 인부들이었으며, 농장의 농부들이며, 가축을 키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한 학식과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 태어나서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존귀한 자들임을 기도를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그저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하고 술담배 하지 않으면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 삶의 영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또는 자녀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인지, 학교에서 캠퍼스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옳은 것이라고 살아갑니다. 얼마전 지인이 올린 페이스북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만화로 만든 것인데 이런 내용입니다. 노란색 고급 승용차를 몰고 가던 사람이 헬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 합니다. 나도 헬리콥타 타고싶다. 그 옆에 빨간색 4륜구동을 타고 가는 사람이 노란색 고급승용차를 보면 부러워 합니다. That’s my dream Car. 작은 파란색 차를 타고 가던 사람이 4륜 구동차를 보면서 나도 저런차 타고 싶다고 합니다. 그 옆에 소형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저런 새차 한번 타봤으면” 합니다. 그 옆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나도 승용차가 있어으면 합니다” 그 옆에 걸어가던 사람이 “나도 자전거 있었으면” 합니다. 걸어가던 그 사람을 휠채어에 탄채 병원 창밖으로 보던 사람이 말합니다. 나도 저렇게 걸어다녀 봤으면....
우리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죠. 계속해서 더 가지고 싶고 더 높아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당연한 욕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우리는 거듭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전에 당연시 되었던 욕구들이 하찮아 지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풍성한 사랑과 기쁨 안식을 맛 본 사람들은 더 그 나라를 사모하게 되지요.
우리는 한번쯤 맛 본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전혀 먹어보지 않은 것을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호기심에 먹고 싶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먹어본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맛본 사람, 그 나라의 사랑과 평강과 기쁨을 맛 본 사람들은 그 나라를 더욱 소망합니다. 그래서 빨리 그 나라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라에 내 모든 소망이 있으니까 이 땅의 것들이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나서 왜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지 6장 전체에서 풀어서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너희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마6:19-).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헌금이나 구제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보물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그것이 결국 쇠하여 지고 없어지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 그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인데 그것이 진정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일하고 공부하고 살림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나라, 내 뜻을 위한 것입니까?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의 관심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6가지의 간구인데 앞의 세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우리의 필요를 위한 것이라 라고 설명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 깨달은 것은 우리의 세 가지 필요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기도, 종교인들의 기도와 같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기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일관적으로 말하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 나라를 중심에 두고 우리의 사업, 가정, 학업, 나의 진로 그 모든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필요가 이분화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따로 기도하고, 나의 필요와 간구는 또 따로 기도하고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마지막 주기도문의 내용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것은 간구의 내용이 아니라 송영입니다. 영어로는 dowology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 ‘영광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신 분들은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는 왜 이 부분이 괄호에 들어와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문은 지금 성경에는 없지만 “대게”라는 말이 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도 가끔씩 이 기도를 때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어 “대게 나라와 권세와”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대게” 라는 말을 넣으십니까?
첫 번째, 질문인 왜 이 부분이 괄호로 들어와 있는가? 그것은 원래 이 부분은 성경에 없었습니다. 초기의 거의 중요한 모든 사본들이 이 송용문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은 이 부분을 빼기도 하고 괄호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아마 후대 사람들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마치니까 좀 어색한 것 같아서 첨가한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송영은 빠지고 ‘아멘’만 첨가한 경우도 있습니다.
추측건대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문장은 성경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송영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송영이 없는 주기도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멘”없는 주기도문을 사용하기에 좀 이상하니까 그 당시 이미 관습이 되었던 기도문의 종결구인 ‘아멘’이 자연스럽게 첨가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소영이 있었는데, 다른 것에 비해서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이 주기도문의 후반부에 첨가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에 있어서 하나의 관례로 굳어지게 되자, 성경 필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 송영을 집어 넣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교회에서 성도들이 주기도문의 6개의 간구를 모두 마치면, 목사가 송영으로 응답하고,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송영은 사람이 만들어 붙인 것이니 무시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송영은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 문구 그대로의 송영은 성경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문구가 가르키는 정확한 내용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역대상 29:11절 이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역대하 29:11>
“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 기도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 앞에서 공적으로 드린 기도입니다.
이 유명한 다윗은 기도는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예배 가운데 사용되었고 신약 교회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요한계시록에 동일한 내용이 자주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주기도문에 요약된 형태로 첨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송영이 주기도문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기도하는 근거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대게’라는 말로 시작되어서 “대략‘이라는 말로 이해되기 쉬운데, 원래 헬라어 단어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입니다. 전에 우리성경에 “대게”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을 참고하기 보다는 중국어 성경의 잘못된 번역을 참고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게”라는 사전적 의미는 “일의 원천으로 미루어보건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냐하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은 바로 주기도문 전체를 수식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의 송영의 내용이 무엇 때문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일까요?
이 세 가지 외에도 하나님을 높여 드릴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텐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은혜와 기쁨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라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나라, 즉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성경전체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주권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주권과 통치가 임하면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은 그 나라가 속히 이 땅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를 찬송합니다. 그 나라를 찬송한다는 것은 그분의 통치를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다스리심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기에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와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사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보다 더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에게 시작된 그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통치를 생각하면 찬송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서 1장에서 그분의 다스리심을 이렇게 찬송합니다.
<에베소서 1:3-6>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를 이미 창세전에 택하시고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 삼하주신 그 은혜, 우리에 성령님을 보내사 저 영원한 나라가 임할 때까지 보호하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그 은혜,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생각하면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권세는 무엇입니까?
권세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우리에게 권세로 나타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능력으로 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이 그리스로의 부활의 권능으로 임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장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위대한 명령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앞에 올라가셨을 때,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사단의 종노릇 하던 우리를 그분의 아들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권세와 능력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 나라가 우리 가정에 임하면 막혔던 관계의 갈등이 용서와 이해 그리고 화해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일터에 임하면 지혜와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담대함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추진력 그리고 끝까지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으로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광입니다.
이 영광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8편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우리는 자연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여기 앞에 놓여있는 장미꽃 한 송이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 분의 아름다움과 그 섬세함, 그것은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한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창조물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섰을 때 초라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분의 권세 가운데 임할 때 그것은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친다고 그분의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우리를 빛과 소름이라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발광체가 아니죠. 하나님의 빛을 받아 반사할 때 그 빛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행할 때 그 사랑이 나타난 곳에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게 되겠죠.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렇듯 주기도문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기도의 처음과 끝이어야 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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