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16-01-12 10:41

주기도문 강해 2.하나님, 우리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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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2.하나님, 우리들의 아버지/2016.1.9

 

마태복음 6:9-13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을 강해 두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 우리들의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번 나눈 말씀을 잠시 정리하면,
1.기도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너희는 이것을 기도하라 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것은 기도에는 원칙과 방향 그리고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이러한 것을 위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주님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먼저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전능성을 의미하며,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신 분,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며 그 분의 절대주권으로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우리가 제비를 뽑을 때 그 결과를 주관하시며, 마음으로 어떤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사소한 일상 속에도 하나님의 허락하실 때만 가능하며, 들의 백합화가 피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진정으로 알고 믿는다면 과연 어떻게 기도해야 되겠는가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크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필요만을 아뢰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라고 부를 때,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 나의 필요를 채우려는 자세는 불경한 태도입니다.
또한 어떤 능력있는 기도자나 기도문을 의지하는 것도 잘못된 자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응답이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어진 것처럼, 기도의 응답도 은혜로 주어집니다. 나의 어떠함에 하나님이 종속되거나 움직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선하고, 온전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기도를 통해 바뀐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라는 문구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흔들리고 움직여져, 마침내 그분의 뜻이 나의 기도에 의해 조정된다면, 그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기도자들, 예를 들어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고질적인 육체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삶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 있으며,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선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내 계획과 바람대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한대로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되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삶이 인도되기에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전 만난 집사님께서 하소연 하시면서 “남편이 구원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고, 자녀들 모두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여전히 응답이 없네요. 목사님 이것도 제 욕심인가요?”
그런 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고 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삶의 환경속에서 지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않습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고, 설득해도 안된다는 것 아셨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남편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내 남편을 사랑하시고,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주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그 하나님이 절대주권자란 사실, 그분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한이 없으시다는 사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합니까? 아니면 소망을 줍니까?

 

나의 삶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가운데 있음을 믿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또한 삶의 모든 어렵고 낙심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선을 이루시고 영광 받을 것이란 확신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넉넉하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이러한 질문이 생깁니다.
만일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면 내가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구원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고, 또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두 번째 주제인, 하나님, 우리들의 아버지라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주권을 의미한다면
두 번째, 우리 아버지여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사 우리의 감정이나 필요에 반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변함이 없으나, 또 동시에 우리의 기도에 반응하시고 응답하시는가? 이 두가지 논리가 어떻게 공존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적 지식이 바르게 확립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거나 기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조금 어렵더라도 잘 집중력을 발휘하셔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 까지만 이해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리 피조물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고 인간의 언어로 그분의 뜻과 계획과 일하심을 말씀, 즉 성경으로 기록해 주셨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기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 같은 신학자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이해되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적인 분이시기에 인간의 노력이나 어떠함에 상관없이 그분의 선하신 뜻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전하는 진리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사, 자녀 된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들을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아바 아버지,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큰 감동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때, 제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전능하시기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조차도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쓰다가도 하나님 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목욕을 하고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썼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경외했는지, 모세는 시내산에서 불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 나로 하여금 다시는 이러한 일을 목도하지 않게 하소서 간구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라”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존재는 그 이름조차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야훼 또는 아도나이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니, 그 충격이 어떠했겠습니까?
당시로서는 신성모독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하나님을 부를 때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요한킴 예레미야스라는 신학자가 당시의 문헌을 조사했는데 예수님이 오시기전과 그 당시 어떤 문헌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가 단 한건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그 초월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것을 가르져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그 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여 친근하게 그분 앞에 나아갑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로 부를 때 그분께서 나에게 다가오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다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사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더욱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진리 편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눌 때에 믿음은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신뢰라고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서 그 분의 인격에 대하여 신뢰하게 되지 않습니까?

 

지난 한주동안 저희 아이가 아퍼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입원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처음에는 저를 낫설어 했습니다. 머리를 만지거나 몸을 만지면 몸을 비틀고 싫어 했습니다. 제가 안아주어도 무언가 어색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저를 아빠로 인식하시 시작한 것이 목요일이었습니다. 아이가 제 앞에서 당당해 진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크게 울고 땡깡도 부립니다. 처음엔 안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몸을 만져도 가만히 있습니다. 아이가 병실에서 저와 계속 함께 있으면서 저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구나. 그리고 나와 늘 함께하고 보호하고 있구나. 이 사람이 아빠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아버지가 아니면 이 아이를 돌보거나 책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상관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가혹,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신데, 자신이 아이를 너 무 사랑해서 자녀에게 안좋은 일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이 질투해서 심판하신 일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질투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더욱 풍성하게 베풀기를 원하시지 그것 때문에 질투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잘 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부모도 자식들 좀더 좋은 것 먹이고 싶고 입히고 싶고 베풀어주고 싶은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를 기뻐하시며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간절한 간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균형잡힌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 동시에 나의 아버지라는 것,
이 땅의 아버지들은 실패할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그 권능과 능력을 행사하실 때 우리에게 다가와 친밀하게 그 분의 사랑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때로는 잘 못 기도하고 때로는 실수해도 그 기도에 나무라지 않으시고 우리를 그 분의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다는 사실만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너무 무서워 전전긍긍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나와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고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함께 하시기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지와 뜻을 간절히 아뢰어 응답받기를 소원했습니다.

 

다니엘서 9장
2.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하나님의 뜻은 70만에 포로생활이 그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뜻이 선포되었다면 그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아모스 7장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에스겔 22장에는 중보기도 하는 자가 없어 결국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의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절대주권적인 분이시지만 또한 인격적인 분이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자신의 뜻을 돌이키시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난주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우리의 기도로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진리의 공존하면서 하나님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사용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일에 우리를 동참시키시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며 그러기에 기도에 더욱 힘을 내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이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라는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뜻이기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하지 않고 , 오히려 더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하나님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더욱 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이번 한주도 그 하나님께 기도로 가까이 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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