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6.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2016.1.31.
마태복음 6:9-13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강해 6번째 시간으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는 제목을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본문의 내용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일부입니다. 주기도문은 6가지의 간구내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앞에 3가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측면에서의 기도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인간의 필요적인 측면에서의 기도하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을 공부하면서 제가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이 기도는 그렇게 6가지 간구로 나누어서 먼저 세 가지는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 나머지 세 가지는 우리의 필요를 위도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기도는 특별히 한 가지 기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난시간 함께 나눈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에 함께 포함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첫 번째 간구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라는 기도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달라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마태복음 6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먼저 6장 8-9절을 보겠습니다.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하고 주기도문이 시작됩니다.
또 6:32-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동일한 패턴이 반복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간구하는 내용이 그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다음에 나오는 기도문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했으니, 이제 우리의 필요를 마음대로 간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예의상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우리의 필요를 집중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필요에 더 관심이 많지만, 주기도문에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하라 했으니 예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러나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너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비전, 열정,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와 같은 것들을 이루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동시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책임져 주겠다는 약속이 이 기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냐?
그렇다면 먹고 사는 것은 염려하지 말라.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33-34절을 보시면,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 염려가 무엇인가 하면, 31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염려입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일하여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을 일할 수 있을까? 일을 하여 돈을 벌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하시면서 3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너희는 공중의 새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장소가 산이었으니까 아마 그때 산에 새가 날아갔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시선을 하늘에 날고 있는 새를 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저 새들은 먹을 것을 먹기 위하여 땅에 씨를 심거나 거두거나 그것을 모아 창고에 보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저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느냐? 그것은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들의 백합화보다 더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8-부터입니다.
아마도 그 근처에 백합화가 아름답게 피워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시선을 백합화를 향하게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오늘날 우리는 의복 때문에 염려하지 않지요? 그러나 당시는 의복이 재산목록 2위에 해당하였습니다.
주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지만, 솔로몬의 그 영광스러운 옷도 이 백합화보다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는 백합화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입니까?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말씀하시는 그 음성속에서 우리는 주님은 애처럽고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용할 양식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32절이죠?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라를 구하려고 하는데 일용할 양식이 자꾸만 걱정 되십니까?
그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양식에 관심에 있으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 해석에 따라 우리의 신앙적 삶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4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1. 성찬의 떡
첫 번째는 성찬에 제공되는 떡입니다. 성찬의 떡은 교회 공동체의 회원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혀져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들이 그 떡을 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항상 교회의 흠 없는 한 회원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성례의 은혜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가 됩니다.
2. 영적인 떡, 그리스도
첫 번째 의미보다는 초대 교회부터 중세 초기까지 광범위하게 환영을 받던 두 번째 해석이 있습니다. 떡을 물리적인 떡이 아니라 영적인 떡으로 해석해서 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영적인 떡인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가 주님을 먹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적인 일체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3. 음식의 떡
세 번째 견해는 역사적으로 소수였고, 여러분들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음식으로의 떡이라고 해석을 한 것 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하루 쓸 양식을 주시옵소서입니다. 이틀 치도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매일 매일 간구해야 하고 저축이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쌓아놓는 모든 것들은 복음의 교훈에서 이탈한 생활의 원리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4.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
네 번째 해석이 가장 어울립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해설했습니다. ‘여기에 양식은 단지 식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인 진리의 말씀, 인간다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 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학문과 문화의 누림, 이 모든 것을 총칭하여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단, 귀금속은 안 된다.’ 귀금속은 일용할 양식에 안 들어갑니다.
어거스틴은 ‘복된 삶을 영위하는데 이바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복된 삶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답게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석할 때 일용할 양식의 범위는 시대와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변천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자가용은 일용할 양식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차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된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가방 하나 정도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나 수백만원 하는 명품가방은 아닐 것입니다. 그 선을 우리가 잘 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이 어느 선인가? 각자 하나님 앞에서 정식하게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각자가 선을 그어야 하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작은 물질도 탐심의 죄를 낳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 많은 물질이 꼭 필요한 양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늘 풍성하게 이웃을 구제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풍성함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의 해답은 아굴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굴은 잠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잠언 30:7-9
7.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이 기도했던 필요한 양식이 바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 일용할 양식은 너무 많으면 교만하여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고,
너무 적게 주시면 도둑질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죄를 범하게 될까 두려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가장 적당한 수준의 양식, 그것이 바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에는 욕심이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욕심이란 필요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가지고 있는 모든 가구와 전자제품, 옷, 가방, 신발 등의 모든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중에 정말 필요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없어도 되는 것은 또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이사할때마다 내가 쌓아놓은 욕심의 덩어리들을 보게되지 않습니까?
앞으로 쓰게 될 것이라고 집안 한구석에 놓아두지만, 지금 쓰지 않는 것은 나중에도 쓰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들은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이것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주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굶주리고 헐벗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 가운데 반드시 그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먹지 못해 죽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그들은 세상 먹을 것이 없어 죽는 것이 아니라, 나눔이 없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류가운데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탐욕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다른 이의 굶주림을 왜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평안과 안정이 우리가 쌓아놓은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통장에 수십억이 있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가져가시면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건강도 우리 것이 아니죠. 그러 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쌓아놓은 내일의 양식은 오늘의 양식이 필요한 자들을 향해 나누어질 때 비로서 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그저 골방에서의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고 또한 일용할 양식이 없는 자들을 돌보겠다는 능동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일용할 양식이 걱정이 돼서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말씀에 힘을 내시고 헌신하기실 바랍니다.
끝으로 고훈목사님이 쓰신 시인데요
목회일기라는 시에서 한편을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신학생 담임전도사 시절
눈은 온통 땅 위에 쌓이고
쌀은 떨어지고 나무도 다 뗐다.
저녁밥을 굶고 나니
첫 아이 갖고 배부른 아내가
가엾고,
왠지 무능한 사람 같아
서글퍼졌다.
40일도 금식한다던데
눈 오고 날씨 찬데
돈 꾸러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반지 팔아 쌀 팔아 먹을 수도
없고,
한끼 굶자
신앙으로 합의하고
누웠다.
밤 10시 다 돼가는데
계시받고 온 사람처럼
집사님이 쌀 한 말과
나무 가지고 와서
부엌에다 놓고 간다.
늦은 밤
저녁상 앞에 놓고
감사기도하다가
우리에게 오늘도
일요할 양식을 주시오니 감사하나이다
하는 대목에
나는 울었다.
예수 믿는 날부터
수천번을 주기도를 외웠으나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밥 한그릇
얼마나 귀한 것인가
주님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 달라고
기도하시라니....
-고훈목사님 목회일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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