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7. 용서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9-15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기도문 강해 8번째 시간으로 용서를 위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일용할 양식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것을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기에, 구할 것을 명하신 예수님은 이제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무엇 때문에 기도해야할 수많은 간구중에 용서에 대한 주제를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을까요?
또한 하나님 나라와 용서는 과연 어떤 연관이 있기에 주님은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하게 하신 것일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신데 이 일을 위해서 지난시간 살펴본 바와 같이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물적자원이라고 해봅시다. 그다음에 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죠? 인적자원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물질도 필요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 모여 이루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자신의 백성을 모아 그들을 교회로 부르시고 교회로 하여금 그 나라를 세워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으로 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의 죄에 노출되어 있고,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죄의 쓴 뿌리로 말미암아 죄를 범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 가운데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크던 작던 죄를 범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처럼 죄를 탐하고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사단의 종이 되어 죄에 끌려 다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고백할 때 이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 생명의 성령이 법이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의 연약함이 발동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에 앞에서 죄를 범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것은 죄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뿐만 아니라, 공동체에게 상처를 주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커다른 해악을 끼칩니다. 따라서 성도의 죄는 반드시 처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는 그 죄로 인하여 계속해서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그것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또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받아 다시 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책감과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용서라는 것이 조건이 있는 것처럼 이해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하나님도 용서해 주시고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4절과 15절에 이 기도가 보충되고 있는데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의 용서가 내가 타인을 용서하는 것에 따라 좌우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이해하면 성경전체의 내용과 상충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자기의 노력이나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용서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노력이나 행위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주기도문은 1차적으로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용서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용서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용서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죽어 저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할 나인데...그러한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은혜와 사랑 때문에 내가 용서받았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한 자들이라면 당연히 형제의 죄를 용서하게 됩니다. 만일 그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성경적인 예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1-35>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보면 화페단위중 달란트와 데나리온이 나옵니다. 1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싹에 해답합니다. 그리고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니까, 6천만 데나리온 즉 6천만일을 먹지고 쓰지도 않고 그대로 모아야 값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도무지 값을 수 없는 빚을 의미합니다. 그가 임금에게 1만 달란트의 돈을 탕감 받았습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100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만납니다. 그에게 돈을 값을 것을 명합니다. 그가 간곡하게 참아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를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1만 달란트를 다 값을 때까지 옥에 가둡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으로 도저히 값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다 치루어 내셨습니다. 그 용서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라면 마땅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성도가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목장과 교회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성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대한 모든 댓가를 치루겠노라고 용서를 구하면, 그 공동체는 그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만일 나는 절대 용서못해 라고 하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용서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용서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의미를 정리해 놓고 이제 성경적인 용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용서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또한 내가 잘못했을 때 형제 자매 그리고 공동체에게 용서를 구하고, 또 그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이러한 일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관계의 회복 때문에 그렇습니다. 용서의 목적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가운데 대부분은 관계를 통해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사 그 분의 생명과 사랑의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을 때 얻어지고 누리는 축복입니다. 또한 그 관계가 회복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어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과정속에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가정에서 누리는 그 행복, 목장에서 누리는 그 기쁨...그 모든 것이 관계를 통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는 것이 죄입니다.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들... 속이는 것과 거짓말, 이기적인 행동, 쉽게 분노하는 것, 남의 말을 하는 것, 경제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등...우리의 아름다운 관계를 깨뜨리는 수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없을 수가 없죠. 우리가 아직 완성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또한 우리도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볼 수 도 있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용서를 구해야 하고, 또한 용서를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영영 회복될 수 없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 몰래 부끄러운 일을 범했다고 해 봅시다. 이때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용서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용서는 그 관계를 회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여 매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심판과 징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지은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기에 그러한 절차는 필요합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차후에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관계를 회복하는데 목적이 있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용서를 통해 회복된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사랑이 깊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에서 그리고 목장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용서를 통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더 깊은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공동체는 용서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적인 용서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용서는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용서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용서를 죄를 덮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용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셨으니, 당신도 나의 죄를 덮어 주십시오...
또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당신에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을 덮고 가겠습니다. 그냥 없던 일로 합시다. 하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 그냥 덮고, 없던 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는 심각한 것입니다. 그냥 없던 일로, 실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심판과 저주를 댓가로 지불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지만..또한 공의로우셔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누가복음 17:3-4>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무조건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2)용서는 잘못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용서는 먼저 죄와 잘못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라는 것 자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전체로 합니다. 죄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용서하겠습니까?
다윗왕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간음죄와 그의 남편을 전쟁에 보내 죽게 하는 살인교사죄를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
사무엘하 12장 1-14>
1.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2.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5.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여기보면 다윗왕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인정합니다. 그때 나단은 13절에 보면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죄를 인정할 때 용서가 선포되고 있음을 봅니다.
따라서 용서라는 것은 가장 먼저 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으로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끼친 물적 심적 손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실수이든, 고의든 잘못에 대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 자들은 상대방의 심적 물적 고통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럴 때 용서가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강팍하여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가운데 누군가 죄를 범하여 공동체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아까 읽었던 일만 달란트 빚진 예화전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형제가 죄를 범했는데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교회는 그 사람을 치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땅에서 매고 하늘에서도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는데 이것은 교회에게 주신 치리권을 말합니다.
교회가 치리권을 정당하게 시행하지 않으면 교회는 급속하게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음행한 자를 교회에서 내 쫒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강하게 책망합니다.
<고린도전서 5:1-3>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예화2)
전에 있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실하신 안수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성가대도 하시고 늘 새벽기도를 드리시는 분이라 누구든 그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단은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법입니다. 이 분이 성가대를 하시면서 홀로 사시는 여성분을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를 하면서 친분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땅이 있는데 투자하면 큰 돈을 벌 것이라고 유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로 제가 알고 있는 한 성도님은 이혼 위자료 3억의 돈을 사기당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안수집사님은 전형적인 사기꾼이었습니다.
이 일을 담임목사님께 보고 드렸고, 목사님은 당회를 소집하여 그 집사님을 출교시켰습니다. 문제는 이 일이 이미 제가 그 교회에서 사역하기 5년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몇몇 성도가 이일로 부교역자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교회가 소란스러워 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일을 덮어 두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명의 여성 성도들이 끔찍한 일을 겪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용서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용서는 죄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그 책임감을 느끼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면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다.(요한일서 1:9)”
용서는 죄를 자백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인식도 없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성도와 교회에 상처를 준 자들에 대하여는 교회는 메고 푸는 권세를 시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순수성을 유지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메고 푸는 권세를 시행함으로 순수해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누가 용서를 구하겠습니까?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경제적인 손해를 끼친 것, 실수든 고의든 잘못한 것에 대한 진지한 참회와 회개가 있을 때, 그는 용서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진리의 말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는 자에게만 유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의 잘못과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직도 나에게 잘못한 자에게 용서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인정하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죄와 허물이 있는 자들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이 서로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어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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