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5. 복음은 사실이다
갈라디아서 1:11–24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갈라디아서 강해 4번째 시간입니다. 복음의 사실이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신은 사도이고 그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1
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또한 자신이 전한 복음도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11–12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이 편지의 시작부터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전하는 복음도 의심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철학 또는 사상 체계가 아닌가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진짜 사도인가? 그가 전하는 복음도 사실인가? 의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그것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조건적 믿어, 덮어놓고 믿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합리적 의심은 필요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그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을 의심했습니다. 바울은 진짜 사도인가? 그가 전한 복음은 사실인가? 만일 이것에 하나라도 흠집이 있다면 그들이 받아들인 모든 복음의 내용은 신뢰를 잃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과 자신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한테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그 내용이 13~24절까입니다.
어떤 주장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물증이나 증인 그리고 정황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간략하지만 확실한 몇 가지 증거를 제지합니다.
첫 번째 정황증거입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변화입니다. 이전에 이러한 삶을 살았던 내가 어떤 계기를 기점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사도로 세우신 일이었음을 밝힙니다.
먼저 과거 그의 모습입니다.
갈라디아서 1:13–14
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는 유대교에 열심을 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개의 표현을 쓰지요. 그 누구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 또한 조상의 전통에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유대교에 완전히 헌신했었습니다.
유대교 신앙에 비춰 보면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예를 들어 죄용서를 선포했습니다. 죄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여러 차례 “네 죄가 용서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 처형으로 죽었습니다. 유대교 입장에서 예수는 신성모독죄였습니다. 여기에 반역죄를 덧씌워 십자가 처형을 받게 했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신명기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저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하면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무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는 유대교 신앙으로 볼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런 자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을 자처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반역자로 낙인찍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로마의 황제만이 주님인데, 로마 정부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반역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바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던 그가 예수님을 전하게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어떤 계기로 변화된 것입니까?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 체험을 이미 말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언급만 합니다.
갈라디아서 1:15–16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어머니 뱃속에서 이미 나를 택정하셨고 은혜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 체험을 언급합니다.
사도행전 22:3–8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은 여기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입니까? 자신이 유대교에 헌신했었고,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고 체포했던 것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을 말합니다. 유대교 최고의 의결기관입니다. 공인들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이 예수를 전하게 된 것은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울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될 때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너도 저 사람의 제자가 아니냐’는 소녀의 말에 세 번씩이나 예수를 저주하고 부인했습니다.
마가는 예수가 체포되는 순간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도망쳤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계기로 흩어졌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다시 모인 것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한 날을 주님의 부활 날이라고 칭하고 모여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자신을 떡과 잔을 나누시며 자신을 기념하라 하신 말씀에 따라 주일마다 모여 성찬식을 했습니다.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파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 시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곳에 미문이라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문인지라 이곳에 선천성 앉은뱅이가 구걸하기 위해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날도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두 사도는 우리를 보라 하고,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에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그런 후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이때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걷기 시작합니다. 뛰어보기도 합니다. 그러자 그는 한번도 들어가지 보지 못한 성전 미문을 열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 모습을 성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본 것입니다. 그들은 놀라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물 때에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가르키며 저들이 나를 치유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솔로몬 행각에 모여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라고 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3:14–16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너희가 죽인 예수가 이 사람을 낳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발언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자신이 증인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후 산헤드린 공회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4:10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십자가형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주도했던 것이 바로 산헤드린 공회였습니다. 그들 앞에서 담대하게 외친 것입니다. 너희가 죽인 그 예수가 이 사람을 건강하게 했다.
그럼에도 공회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반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치유된 선천성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 증인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4:14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그러자 공회원들은 당황하여 이런 판결을 내립니다.
사도행전 4:18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4:19–20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러분, 보십시오.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했던 베드로가 맞습니까? 그 자리에는 70명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최고의 의결기관입니다. 그들 앞에서 주저함 없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말처럼 그는 실제로 본 것입니다. 무엇을 본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들은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우리가 내일 수 있는 결론은 사도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전한 복음은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은 사실입니다.
두 번째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에 대한 증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정황증거를 통해 사실여부를 입증했다면 이번에는 증인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8–20
18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바울은 다메섹 회심 직후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시간을 보낸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바울이 3년 이라는 시간을 언급한 이유는 정확한 정보를 통해 사실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게바를 만났습니다.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15일을 머뭅니다. 정확한 날짜까지 언급합니다. 이 또한 증거의 정확성을 위해서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납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말합니다. 당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정확한 기간, 날짜, 만난 사람을 언급하며 증인 두 명을 소환합니다. 당시 법정에서는 2명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초대교회 공신력 있는 두 명, 수제자 베드로와 총회장 야고보를 언급함으로 사실임을 못 박았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정황증거와 인적증거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 분에게 복음을 전달받았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은 사도이고 자신이 전한 복음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합리적 의심을 차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이기 때문이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대합니다.
복음은 분명한 사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명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신화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과학 실증주의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과학으로 입증된 것만 사실로 믿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일들을 신화로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독교는 신화적 이야기를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어 죽고, 화형으로 죽고 할 때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지어낸 이야기입니까?
130여 년 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미개한 땅 조선에 선교사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성경의 신화를 전하기 위해 온 것입니까? 자식들이 풍토병에 죽어갈 때도 이 땅을 떠나지 않은 것은 신화를 전하기 위한 것입니까?
빅뱅이론과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어떻게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는데, 빅뱅의 원인을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른 방도가 없어 그것으로 설명할 뿐이지 증명하지도 못합니다. 현재까지 최선의 답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설명합니다. 과학적 이론과 주장은 다른 이론에 의해 계속해 뒤집혀 집니다. 과학이라고 해서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기 1;1절의 말씀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게 되면 성경의 모든 내용이 믿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신데 무엇이 불가능하겠습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오천명이 먹는 것. 신화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 신화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창조주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찬란한 광채에 눈이 멀었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게 어짜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부인할 수 없는 실제였고 사실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유한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과학, 의학, 철학 등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겸손합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마지막 결론은 ‘모르겠다’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인간 존재는 무엇인지,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과학과 지식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공부한 사람들이 교만합니다. ‘하나님이 어디있어? 성경은 신화야?’라고, 말합니다.
전에 TV에서 알뜰신잡이라는 프로를 본적이 있습니다. 각 분야의 지성인들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충남 서산, 당진 여행을 떠난 다섯 잡학박사 유희열 작곡가, 유시민 작가, 김영하 작가, 김진애 박사, 김상욱 교수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학살 당했던 해미읍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김영하 작가는 어떻게 신앙 때문에 순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에도 신자들에게 십자가를 밟으면 살려준다고 했는데, 그것을 거부하여 비참히 죽은 신도들이 있다며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인간은 돼지보다 소중한지? 왜 다른 가축들은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데 왜 인간은 소중한지? 그 권리를 누가 준 것인지? 과학은 답을 하지 못해요.
종교 말고는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요. 과학자의 시선으로는 인간과 돼지는 차이가 없거든요.
우리 문명의 기반에 종교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순간에 종교를 걷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물론 무신론자이지만 학자로서 겸손하다고 봅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신대원때 조직신학 과목을 서철원교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시고 네델란드에서 공부하신 탁월한 신학자입니다. 수업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과학이 틀리고 성경이 맞아요. 과학이 지금까지 성경을 설명하지 못할 뿐이지 더 발전하면 다 설명될 거예요”
만일 우주선을 타고 달에 다녀온 사람이 100전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달에 다녀왔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것입니다.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현재 우리가 증명하지 못한다고 거짓이거나 신화가 아닙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으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복음을 전달하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글로 전달해 주었습니다. 신약성경 27권은 증인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술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증인들의 증거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증거하다 죽은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타협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증거가 참됨을 입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실입니다. 복음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이것이 사실이기에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12개의 조항들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이심은 사실입니다.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도 사실이며, 그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고, 빌라도가 통치할 때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도 사실이고, 부활하신 것도 사실이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도 사실이고, 이제 심판하러 곧 오실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몸으로 부활할 것도 사실이고, 영원히 살 것도 사실입니다.
그 무엇보다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예배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이 죄와 사망에 갇혀 있는 영혼을 살려낼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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