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1-11 16:02

1.성경의 권위_사람에게 난 것이 아니다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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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 성경의 권위/ 사람에게 난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1:1–10 

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새해부터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가장 사랑한 성경입니다. 그는 이 서신을 붙들고 선행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해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 타락한 교회는 교황을 비롯해 사제들이 행위 구원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대부분의 성도는 그들이 말을 진리로 믿고 선행을 힘썼던 것입니다. 

이에 루터는 갈라디아서가 강조하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를 강조하며 교회를 개혁했던 것입니다.

 

신명기를 마치면서 올해는 어떤 말씀을 설교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명기 결론 부분이 은혜로 마무리되면서 새해에는 은혜를 주제로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신명기는 율법을 기록한 책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백성의 윤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은 제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너희는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할 것이며, 그럴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며 하나님 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비록 실패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론이었습니다. 

 

이 결론은 제 시각을 바꿨습니다. 제 자신과 성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성도답지 못한 행실을 하면 좌절하고 실망했습니다. 

“명색이 목사인데 이것 밖에 안되나?” 

또 성도를 바라보며, “아니 교회를 10년, 20년 이상 다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물많고 연약한 이스라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속 좁은 제가 조금은 넓어졌습니다. 제 자신의 못난 부분을 용납하게 되고, 또 주변 사람들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는 은혜가 일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은혜에 대해 설교하고 싶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선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기 위해 쓰인 편지입니다. 이에 따라 자유를 잃어버린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구원의 근거는 나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사역에 있다고 말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신조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어떤 은혜를 주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를 통해 속 좁은 저를 넓히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어떤 변화를 주실지 기대합니다. 이제 함께 본문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는 현재 터키의 일부 지역입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을 통해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봅니다. 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단지 한 교회가 아니라 갈라디아 지역에 살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 보낸 것이고 이 서신은 회람 서신 즉, 각 교회에 돌려가며 읽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편지를 왜 썼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심어놓은 신앙의 진리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맞지만, 또한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단지 할례뿐만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이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누가 너희를 꾀더냐? 그 ‘누가’ 바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유대인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을 꾀었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맞지만,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2 

12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또한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제사 행위, 정결 의식 등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무효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7–8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들의 가르침은 진리를 막아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진리 가운데 섰던 갈라디아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 기가 막혀서 긴박하게 펜을 들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헬라어 원문에 보면 ‘이상히 여기노라’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 단어는 ‘타우마조’인데 “내가 너무 놀랐다.” “내가 경악했다”, 

영어로는 6I am astonished. 

무엇 때문에 경악했다는 것입니까? 다른 신속하게 다른 복음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다른 복음이 바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머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은 복음의 다른 차원이 아닙니다. 전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깨뜨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얼마나 속이 터졌겠습니까? 

그래서 긴박한 심정으로 펜을 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바울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1-10절은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바울의 인사말입니다. 1~5절까지입니다. 두 번째는 6-10절까지로 갈라디아 교회가 처한 위기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사말을 보면 다른 서신서들과 다르게 시작되고 있음을 봅니다.  

갈라디아서 1:1 

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다른 서신서를 볼까요?

에베소서 1:1–2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특이하게 갈라디아서에서는 자신이 사도 된 것을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11–12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도적 권위가 없다고 헐뜯은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1)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2)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입니다. 3)예수님께서 사도로 세우시고 파송해야 합니다. 예룰 들어 베드로는 사도입니다. 그는 이 세 가지 조건에 충족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그를 세우고 파송하신 예수님의 권위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라고 부탁하신 예수님의 권위 때문입니다. 사도적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도들이 전하는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은 사도적 권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느냐? 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느냐?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세우셨느냐? 고 비방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리고 보면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와는 다릅니다. 바울이 아무리 같은 복음을 전한다고 할지라도 그들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도 아니고, 오히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과연 사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일 이 권위가 흔들리게 되면 그가 그동안 전했던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권위를 잃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식을 배우는 방식은 대부분 그 지식에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부터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니는 병원의 의사가 돌팔이였다고 판명되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진단받고 처방받은 모든 것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바울의 사도적 권위가 흔들리게 되면 그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먼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변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사도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10절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바울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는 바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도들이 보지 못했던 그 광채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때 예수님께 사도로 세움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9:15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는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받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1:12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는 승천하신 예수님만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7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러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파송한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그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 교회의 기초는 사도적 권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도적 권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 또한 사도적 권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신앙이 사도적 권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은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가르침을 기초로 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도적 권위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신앙은 사도적 권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로마 카톨릭은 사도적 권위가 교황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교황이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고 따라서 교황이 가르침이 교회의 기초라고 믿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대답에 예수님은 매우 흡족히 여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18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이 반석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이 반석을 베드로로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입니다. 1대 교황이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현재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황이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고 교황의 가르침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반석은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말합니다. 이 고백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교리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신구약 성경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바로 이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입니다.

 

사도들이 전했던 복음도 이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전한 이 복음을 기록하여 정리한 것이 신약성경입니다. 사도적 권위가 사도들이 작성한 성경을 통해 계승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도는 없습니다. 교황이 사도적 권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간혹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계시를 받는 사도들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도 그분께서 세우신 자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도는 없습니다. 그 사도성, 사도적 권위는 성경을 통해 계승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최종권위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기초는 성경인 것입니다. 아무리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거나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무오설을 주장한 로마 교회에 루터가 대항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오직 성경이지 교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한 것처럼, 오늘날 성경만이 권위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권위는 오직 성경뿐입니다. 여러분이 존경하는 아무리 탁월한 영적 리더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사람일 뿐입니다. 한경직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등.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목사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가르친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권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복음에 충실했고 성경만을 가르쳤기에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한국교회를 말씀 위에 세우신 훌륭한 분들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럴지라도 권위는 성경에서 나오지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신앙까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믿고 신뢰했던 목사님께 실망하여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선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성경이지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 또한 존경했던 목사님이 부끄러운 사건에 연루될 매스컴에 나오면 당혹스럽습니다. 그분들의 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영상으로 설교를 들으면서 많이 은혜도 많이 받았거든요. 한때 제가 많은 은혜를 받았던 목사님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이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 것일까요? 그분들에게 실망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전해준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는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권위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22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와 선지자의 터가 무엇입니까?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 즉 신약성경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퉁이돌은 건물의 중심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성경의 중심이고 교회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신앙의 기초는 성경입니다. 교회의 모든 권위는 오직 성경으로부터만 나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이 손상입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서 신속하게 떠났고 그 결과 율법에 얽매여 그리스도가 주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 진 자들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었던 복음에서 떠나 율법에 얽매인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경의 권위를 흔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학과 인간 이성을 앞세워 성경에 나오는 신비적 사건들을 신화로 규정해 버립니다. 불트만 같은 현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같은 신화적 요소들을 배제해야 복음서의 역사성과 진리가 명확해진다고 주장합니다. 

주로 신학자들이 이러한 시도를 많이 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신학을 주장하여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그 적용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진리 자체를 흔들거나 물타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경의 권위 위에 세워졌습니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신앙은 언제든 무너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사역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이 많이 있지요. 예배, 전도, 구제, 선교, 교제 등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교회사역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모든 사역은 말씀에 통제받아야 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4:6 

6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갈등이 생기고 교만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하는 자리에 서기길 축복합니다. 감사하게도 올해는 세 명의 말씀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단위에 서게 됩니다. 말씀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길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세분의 말씀 사역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풍성히 부어주시길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자신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올 항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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