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5-23 14:09

14. 약속의 자녀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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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4. 약속의 자녀

 

갈라디아서 4:21–31 (NKRV)

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어떤 중요한 말을 할 때 반복하게 됩니다. 잘 이해 시키기 위해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가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반복하되 깊이를 더합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이신칭의’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위를 쌓거나,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은 비유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한 아브라함의 두 아내와 그들의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원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사라와 하갈입니다. 사라는 본처이고 하갈은 후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5 (NKRV)

5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의 나이가 75세입니다. 그때까지 아이가 없었으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처음에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나이가 많이 여성의 생리가 끊어지자, 아브라함을 찾아가 자신의 여종인 애굽 사람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낳으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13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가 임신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라는 이 약속을 받을 때 믿지 못하였지만 얼마 후 자신의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이삭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였습니다. 

 

두 여인과 그들이 낳은 아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하갈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여종입니다. 정확히 말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입니다. 그가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본처입니다. 그가 낳은 아들은 이삭입니다. 

하갈이 어떻게 아들을 낳았습니까?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자연적으로 낳았습니다. 자연적 출생, 일반적 출생입니다. 본문에서는 육신을 따라 낳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반면 사라가 이삭을 어떻게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였고, 사라는 생리가 멈춘 지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적 노력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애씀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본문은 이를 약속으로 말미암았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이를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태어났습니다. 반면 자유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이삭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갈라디아서 4:22–23 (NKRV)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러분, 지금도 두 종류의 자녀가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녀가 있고, 약속을 따라 난 자녀가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녀는 일반적인 출생, 자연적 출생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녀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그 분의 능력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난 자녀입니까? 아니면 약속을 따라 난 자녀입니까?

 

우리 모두는 육체를 따라 난 자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하여 우리를 임신하여 태어났습니다. 자연적으로 출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우리 삶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약속을 따라 태어나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어로 born again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출생한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 랍비였고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유대 사회의 덕망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밤에 찾아온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또 한 성경에서 밤은 영적인 무지, 어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관해 대화하길 원했습니다. 그가 찾아와 첫 번째로 했던 말은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3:2 (NKRV)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선생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 모든 표적을 행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3 (NKRV)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러분, 이 대화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전혀 동문서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둔산동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나요?”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칭찬이나 인정 또는 비판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니고데모는 성경 전문가였습니다. 하나님이 대한 지식에 있어서 가장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의 지식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선생으로까지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너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네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네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뉘앙스입니다. 

예수님은 왜 니고데모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요한복음 3:4 (NKRV)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난다는 말입니까?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것을 자연적 출생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두 번이나 자연적으로 출생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 3:5 (NKRV)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순절 교회가 말하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쉽게 풀면 물과 같은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인데 그것을 물의 어떠한 기능을 비유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겔서 36장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에스겔 36:25–28 (NKRV)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백성이 될 것이냐 할 때, 그 대답으로 이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28절에 “내 백성이 되고,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25절에 맑은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 숭배한 우리가 샤워하면 정결하게 된다는 것입니까? 세례를 받으면 정결하게 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수백 번 물세례를 받아도, 깨끗한 계곡물에 수천 번을 담가도 우리의 죄는 씻겨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음 절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26절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신다고 합니다. 그 새영이 너희의 굳은 마음, 즉 죄악을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더러운 것을 씻듯이 새영인 성령님이 우리의 죄를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물의 기능, 즉 깨끗하게 하는 기능을 비유하여 성령님이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으로 돌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물이 더러운 것을 씻겨내듯인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모든 죄를 완전히 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죄가 제거되었으니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6–8 (NKRV)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8절에 거듭나는 것을 뭐라고 바꾸어 말씀하십니까?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즉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마치 물이 더러운 것을 말끔하게 씻어내듯, 성령님께서 우리의 강팍하고 죄악된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바람의 예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바람과 성령은 헬라어 발음이 같습니다. ‘루아흐’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 말을 잊어버릴 수 없도록 발음이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 그의 머리에 각인시킵니다. 루아흐, 즉 바람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가 바람을 본 적이 있느냐? 여러분 바람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보지 않았기에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바람의 존재를 어떻게 압니까? 보이지 않지만, 나무가 흔들리고, 낙엽이 날리는 것을 통해 바람의 존재를 압니다. 우리 몸에 스치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바람이 있음을 압니다. 누구나 알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바람입니다. 신비롭습니다. 

 

거듭나는 것, 즉 성령으로 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님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듯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고 성령님을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다시 갈라디아서로 돌아오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28–29 (NKRV)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우리가 누구라고 말합니까?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29절에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셔서 새롭게 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세례식은 이것을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꼭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 근거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 근거로 성령님이 내 죄를 씻으십니다. 이것을 성경의 용어로 예수님의 보혈이 내 죄를 씻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실까요? 성령으로 나게 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12–13 (NKRV)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어떻게 받습니까? 혈통이나, 육정으로 되지 않고, 쉽게 말하면 자연적 출생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처럼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녀 삼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입니다. 

로마서 8:29–31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에베소서 1:5 (NKRV)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기의 아들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입양이라는 단어입니다. 큰애와 둘째가 제 아들이 된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닙니다. 제가 선택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선택했어요. 그냥 두 아이가 좋았습니다. 집에 데려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욕을 시키고 저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입니다. 

이후 저의 아들로 부모가 준비한 가정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우리 죄를 씻기시는 것입니다. 물로 씻기듯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씻기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납니다. 바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옷을 입히십니다. 그 옷이 의의 옷입니다. 

 

스가랴 3:3–5 (NKRV)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이사야 61:10 (NKRV)

10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누가복음 15:21–22 (NKRV)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 믿고 죽어 천당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은 이 모든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사 자녀로 살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는 모든 과정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너희가 누구이냐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 거듭난 자녀, 성령으로 난 자녀이냐? 그렇다면 너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자유를 말합니다. 그 자유를 누려야지 왜 율법에 매여서 종들처럼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자유의 자녀답게 살아라, 노예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예는 잘해야 사랑받거든요. 그러나 자녀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1–5:1 (NKRV)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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