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5-31 13:49

15.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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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5.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갈라디아서 5 (NKRV)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우리는 매 주일 갈라디아서를 통해 구원에 있어 중요한 교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된다는 이신칭의 교리.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즉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성취하시는 다는 것. 구원은 하나님의 입양 자녀가 되는 것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갈라디아 성도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일까요?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버리고, 인간적 의지와 노력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거짓 교리에 넘어간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마음이 안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내놓을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싫고, 하나님의 구원만을 기대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 것입니다.

 내가 행한 선한 일들이 구원에 있어 아무 공로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선행을 실천합니다. 그 선행을 통해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분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모범적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친 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양심적이고 정직하고 그 누가 보아도 따르고 싶을 만큼 고상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급속하게 그들의 가르침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위선으로 포장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들도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위험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습니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처럼 착각합니다. 영적인 자만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저는 오늘 모범적인 성도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율법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율법주의는 한 마디로 율법을 잘 지켜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력구원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위해 의지력을 불태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비유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한 행위를 해야만 참된 성도이다. 라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입니다. 

누가복음 10:25–28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가 예수님께 온 목적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시험일까요?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죄인이며 그 죄에서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를 믿는 길 밖에 없다고 가르침입니다. 그는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율법 교사이기 때문에 충분히 논쟁하여 예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의 질문은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딴지를 걸고자 한 것입니다.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즉각적인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이라 함은 구약성경을 의미하고 구체적으로 모세오경(토라)를 의미합니다. 그것을 네가 어떻게 읽었느냐는 것은 네가 바르게 이해하여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 교사답게 명쾌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바로 읽었고 바로 이해했으니 이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율법 중의 율법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면 살리라, 즉 영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율법 교사의 입술을 통해 해답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화는 종결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지루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러 왔습니다. 물러날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을 이어갑니다. 

누가복음 10:29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자기를 옳게 보인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즉 자신이 옳고 예수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질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니까? 입니다. 율법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이것일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창기와 세리들, 즉 죄인과 어울렸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도 사랑이 필요한 우리의 이웃들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5:30–32 

30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대답이라도 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율법을 총동원하여 예수님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반박하면서 예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가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0:30–37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사모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순례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여리고에 여인숙을 얻어서 왕래하였습니다. 제사 업무를 감당했던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의 거리는 36키로 되는 험한 비탈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순례객들이 성전에 바칠 제물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강도의 출몰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예루살렘 제사를 드리고자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어떤 사람’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킨 사람입니다. 

그가 강도를 만납니다. 그는 강도에게 모든 것을 강탈당합니다. 당시 옷은 상당히 귀했는데 옷까지 빼앗기고 거의 죽을 정도로 맞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제사장이 그를 발견합니다. 그는 보고 그냥 지나칩니다. 제사장은 제사 업무를 감당하기에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됩니다. 율법이 그렇게 규정했습니다. 피 흘린 자를 만지거나 죽은 자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제사 업무에서 제외됩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 하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물론 주변에 강도때가 있을 것을 두려워 하기도 했겠지만, 예수님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율법에 헌신한 자들의 한계성입니다. 

 

레위인도 제사장처럼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칩니다. 레위인 또한 율법에 따라 제사업무를 감당하지 않습니까? 그도 같은 이유로 지나칩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던 중, 그를 발견합니다. 여행하던 중이라고 말한 것은 제사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임을 드러내고 자 하는 것입니다. 율법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치료합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0:36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가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10:37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사마리아 사람처럼 선행을 하라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베풀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영생에 대한 질문에 이미 답한 바 있습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물었고, 누가 강도 만자 자의 이웃이겠느냐고 대답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강도 만난 자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강도 만난 자는 바로 율법교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25절에 ‘어떤 율법교사’라고 말하고, 30절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라는 같은 문형을 사용한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는 강도에게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도무지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를 누가 살려주었습니까?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닙니다. 율법에 헌신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정한 자비와 사랑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느라 죽어가는 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살려줍니다. 

여러분, 당시 예수님을 비난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기 위해 불렀던 호칭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요한복음 8:48 

48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강도 만난 자는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상태에 있는 율법교사를 포함한 당시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 의로워지려고 했던 사람들, 그 중에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가장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율법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율법의 한계입니다. 율법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죄와 사망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는 죽은 자이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나 거의 죽은 상태인 그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입니다. 네가 영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너를 율법이, 즉 제사장도 레위인도 즉 어떤 율법의 행위도, 어떤 예배의 행위도 너를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마리아 사람인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받을 때에만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37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는 여전히 자존심이 있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답하지 않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것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베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너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고, 예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이 장면이 등장하는 바로 앞의 내용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21 

2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구원의 진리를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셔서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아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3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살 수 없는 존재, 철저하게 부모에게 의존된 존재를 말합니다. 영생을 얻는 자들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무능을 알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붙드는 것임을 말합니다. 

마치 강도 만난 사람이 구원자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31 

31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당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리와 창기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철저하게 구원자를 의지하는 강도 만난 자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강도 만난 자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살려주신 분입니다. 

에베소서 2:1 (NKRV)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4–5 (NKRV)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8–9 (NKRV)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이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도 없고, 외식과 위선으로 인도하는 그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에 분노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25 

25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지켰던 부자들, 그들은 구제에도 힘썼고, 성전에 많은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구원은 그렇게 많은 돈으로 선행을 하고 헌금을 드린다고 얻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제자들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마가복음 10:26 

26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그냥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던 부자입니다. 선행과 구제 힘쓰는 부자입니다. 

마가복음 10:20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선행을 베푼다고 해도, 그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가복음 10:27 

27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몸을 불살라 희생하여 사람을 살린다고 해도, 그런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도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3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제나 희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 진짜 사랑은 율법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규정한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음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규정한 것을 지킴으로 행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여 그 감격이 너무 벅차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 사랑을 행할 때, 자유롭습니다. 율법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갈라디아서 5:6 (NKRV)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랑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4 (NKRV)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왜 이신칭의를 말하다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율법에 갖춘 사랑이 아니라 율법을 초월하는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17 (NKRV)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20 (NKRV)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그들이 행했던 율법 이상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38–44 (NKRV)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은혜가 이 일을 가능케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체험하며 이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좋아서 하게 되고, 기뻐서 합니다. 그래서 자유인 것입니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되지만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고, 구제하고 싶은 것입니다. 율법이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자발적 헌신, 자발적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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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약속의 자녀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갈라디아서 4:21-31 2024.05.19
13 13. 구원, 하나님을 아는 것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갈라디아서 4:8-20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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