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6-08 14:36

16. 성령을 따라 행하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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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6.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 5:16–26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16번째 시간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제목을 하나님 말씀 나누겠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과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5:16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삶의 결과 두 종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맺는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고 그들이 맺는 열매와 결과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25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라 강조하며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먼저,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다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무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우리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육체 또는 육신으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창세기 6:3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떠남으로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이라는 단어는 ‘호흡’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은 하나님의 호흡이 떠난 사람입니다. 이들을 육신, 육체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창세기 6:3 

3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그러면 육신이 되기 전에 사람은 어떤 상태였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창세기 2:7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흙이라는 물질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 즉 숨쉬는 기관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생령(네페쉬)’ 되었습니다. 죄를 짖기 전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의 생기가 깃들어 있어 영생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됩니다. 흙으로 창조된 육체에 깃들어 있던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됩니다. 공동번역 성경이 말한 것처럼, 사람은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상태입니다. 성경에서 육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떠난 상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동물과 같은 상태가 육신입니다. 인간사회를 잘 보십시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동물적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1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면 육신인 인간은 왜 이렇게 살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 상태에 있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갈망상태가 욕망입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갈망하게 됩니다. 갈증상태에서 물을 갈망하는 것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갖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대표적인 욕망인 식욕, 성욕, 성취욕, 명예욕 등은 죄가 아닙니다. 식욕이 있어야 음식을 먹고, 성욕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성취욕이 있어야 사회가 발전하고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기독교는 욕망 자체를 죄로 보지 않습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그 욕망을 바르게 채우는 법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성욕은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채울 때 만족함이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육체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갈라디아서 5:19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성적욕망을 하나님이 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으니 변태적인 행위들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명하지 않는 방식 즉 자기방식으로 채우려는 것을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합니다. 욕망은 죄가 아니지만 욕심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결핍 상태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데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채우려 할 때 죄가 됩니다. 

 

이 상태, 즉 욕심의 상태에서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이웃을 착취하고 자기를 파괴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벌었는데,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대부분 ‘더 많이 벌어야 채워지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삭개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 그는 왜 예수님을 그토록 보고 싶었을까요?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19:2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당시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 이상으로 부과하여 착복하였고 이를 로마 정부에 상납하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상업이 가장 활발할 때 도시였기 때문에 상당한 세금을 거둬들였을 것입니다. 그 도시의 세리장이었으니 당연히 부자였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무엇이 부족했기에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을까요? 그는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공허하고 허무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핍과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많은 군중이 있었기 때문에 인파들을 뚫고 갈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가 한 행동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만큼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은 삭개오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누가복음 19:5–7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며 조롱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자기 친구들을 초대했을 것입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성경은 삭개오의 집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어떤 가르침을 하셨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홀로 들어가셨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8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서서 주께 말했다’는 것은 세리장으로서 공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착복한 것이 있다면 네 배고 갚겠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2장에 보면 도둑질한 것은 두 배로 배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네 배 배상을 약속했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율법을 초월하는 행위입니다.

 

 삭개오가 이런 결단과 약속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시간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육신의 욕심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웃을 착취하는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삶에서 성령을 따르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령님이 임재한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령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 분의 뜻을 알리실 때 따르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항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임하십니다. 아무 때만 무작위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임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이 마른 뼈의 환상을 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스겔 37:1–3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성령님께서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고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뼈가 살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에스겔은 주 여호와께서 아십니다. 대답합니다. 

에스겔 37:4–8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뼈들이 연결되었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으로 덮였습니다.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과 같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마른 뼈가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립니다. 

에스겔 37:9–10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육체에게 생기야 들어가라 대언할 때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군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마른 뼈가 육체가 되었고, 육체가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까?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7:14 

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생기는 곧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사람들, 그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의 말을 대언하게 하셨고, 에스겔에 대언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을 통해 임하심을 보여줍니다. 

 

성령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일하십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찬양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 임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라고 세워주신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임하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읽고 있는 성경 말씀이 이해됩니다. 이해가 되면서 마음에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 임하시고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어떤 신비한 계시를 받고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기록된 말씀을 주의 종들의 말씀을 통해 듣고 깨닫고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하는 것을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도들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과 기록된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령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3:7–8 

7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라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광야에서 시험하던 조상들처럼 완고해지지 말라고 합니다. 

동일한 말을 15절에 다시 하는데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3:15 

15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동일한 것을 하면서 한번은 성령이 말씀하셨다고 하고, 이어서 성경이 말했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성경의 말씀이 성령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은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5–16 

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성령이 증언했다고 하면서 예레미야 31:33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구약성경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성령님이 증언했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 성령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2 

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계시 즉 구약성경을 말하면서 이 구약성경은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자들을 통해 너희에게 알리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는 구약성경만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약성경을 성령님의 뜻으로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이 성령님께서 교회, 즉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4:6 

6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즉 기록된 성경 말씀이 우리 삶에 기준이 되고,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상황, 비상 상황에서 성령님께서 그분의 뜻을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꿈을 통해, 환상을 통해, 기도 가운데, 또는 생각 속에 성령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함은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는 사람들, 성령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그것도 특별한 상황, 비상 상황에서 임합니다. 이때 성령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8:14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두 가지 방식으로 성령을 따라 행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하소서>라는 간증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선한목자교회를 얼마 전 은퇴하신 유기성목사님 사모님이신 박리브가 사모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최근 ‘기도를 송두리째 바꾼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간증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았던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밤에 기도중에 성령님께서 얼마의 물질을 한 성도님에게 보내라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내는데 그 날은 당장 보내라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송금을 했습니다. 잠시후 돈을 받은 성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께 왜 나는 이렇게 돈이 없냐고 하소연하며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는 사모님이 있는데 그분이 돈이 없어 어려움 가운데 있어 돕고 싶은데 자신도 돈이 없어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박리브가 사모님께서 보내신 돈을 받고 놀랍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돈을 어려움중에 있는 사모님에게 보냈답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그 저녁에 그 사모님도 하나님께 물질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더랍니다. 

또 한번은 늦은 저녁 기도중에 한 성도님에게 가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신 것입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여전도사님와 함께 찾갔습니다. 가보니 이 성도님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시도를 한 것입니다.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위세척을 하고 살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박리브가 사모님은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잘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기에 사모님의 말씀이 너무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중심으로 온전히 세워져 있지 않으면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이 뜻에 순종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분들이 내 주관적 생각을 성령님의 뜻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음도 주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먼저는 성경 말씀을 통해 성령님을 따라 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여러분 마음 가운데 말씀하실 때 그 뜻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약속하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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