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17. 성령을 따라 행하라 2.
갈라디아서 5:22–26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강해 17번째 시간으로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 즉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 분의 뜻을 알려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교회에 주신 하나님 말씀이며 성령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도들을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습니다.
성령님은 거듭난 성도들의 마음의 중심에 계십니다. 인격이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영으로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님이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 (NKRV)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은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진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성경의 저자입니다. 그래서 자의적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우리에게 저자께서 직접 참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한 사람들은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단들의 가르침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떤 분들은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로마서 8:14 (NKRV)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거짓과 더러운 것들이 오염시키려 할 때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뜻과 계획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좌절될 때도 많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막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5:25 (NKRV)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명확해 집니다.
갈라디아서 5:25 (NKSV)
25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바울은 성령으로 삶을 얻었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온전히 성령님께 붙들려 행했던 모습입니다. 바울의 예를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른 예.
사도행전 16:6–7 (NKRV)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은 아시아게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성령님께서 막으셨습니다. 6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7절에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할 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선교 일행은 성령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비누니아로 가고자 애쓰되“라는 것은 일이 순적하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애쓰는데 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무언가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애쓰는데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성령님께서 막으신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선교를 막으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던 중에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6:9–10 (NKRV)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환상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바울의 환상이 성령님의 인도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10절에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를 포함한 선교일행을 말합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바울의 환상이 과연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점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성령님께서 아시아 선교를 일단 멈추게 하시고 마게도냐로 가게 하신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 귀신을 쫓아낸 것으로 여종을 통해 돈벌이를 했던 주인들이 거짓 고소를 하여 심하게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때 바울과 실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빌립보에 왔는데 심한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억울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진행한 일들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있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캄캄한 감옥에서 잠잠히 찬송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5 (NKRV)
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봉착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이 좌절될 때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캄캄한 밤, 땅이 흔들리면서 옥문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진동일 컸으면 그들을 묵고 있던 사슬도 풀어졌습니다. 잠들어 있던 간수가 깨어 확인해 보니 이미 죄수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죄수에 대한 책임은 간수에게 있었고, 죄수가 탈옥 때 중형을 받았습니다. 간수가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소리 지릅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사도행전 16:28 (NKRV)
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했는데 그 우리가 누구입니까? 죄수들입니다.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고 모두 바울과 실라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이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할 때 성령님께서 그 캄캄한 감옥에 임재하셔서 그 찬양을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붙드셨던 것입니다.
간수가 등불을 가져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뛰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실제로 모든 죄수들이 바울과 실라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6:30–31 (NKRV)
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간수의 집에 갑니다. 먼저 상처를 치료한 후 그 집 사람들을 모아 복음을 전합니다.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사도행전 16:33–34 (NKRV)
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이후 바울은 풀려나 선교를 지속하게 됩니다. 이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 편지를 씁니다. 에베소교회, 골로새교회,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비록 바울이 감옥에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어떤 교회에도 선교비 후원을 요청하지 않았고 또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달랐습니다. 그들의 후원을 기뻐하였고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그 만큼 친밀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14–15 (NKRV)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바울이 사랑했던 빌립보교회. 그 교회가 어떻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 간수의 집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성령님의 인도함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리 선한 뜻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령님의 뜻이라고 믿고 간 길인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때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령님께서 무언가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캄캄한 감옥에서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대하며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은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바울은 선교 가운데 소망했던 것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유대교에 열심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고문하고 옥에 가두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충성으로 여겼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령님을 통해 거듭난 이후 과거의 자신과 같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 복음을 전한 후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에 밀레도에 있을 때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사역하면서 정들었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마지막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0:22–24 (NKRV)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합니다. 또 성령이 각 성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두로에 한 주 머물게 되는데 이때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1:4 (NKRV)
4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바울을 사랑했던 제자들에게도 성령님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고 환난을 당할 것을 말입니다.
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때 아가보에게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1:11–12 (NKRV)
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대부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이 행을 만류했습니다. 가게 되면 고문과 투옥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그의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에게도 같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각각 달랐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럼에도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성령님의 뜻일까요? 한편에서는 바울의 고문과 투옥 장면을 알려 주신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이해한 것은 성령님께서 그 뜻을 보여주신 이유가 비록 고난의 길이지만 준비하고 가라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울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는 고난의 길에 기도로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13
13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 20:23–24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다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성령님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해 붙잡히게 됩니다. 바울로 인해 예루살렘에 큰 소동일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1:31–32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예루살렘 성전 옆에는 안토니아 요새가 있습니다. 이곳에 로마군인 들이 2천 명 상주하여,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합니다. 당시 로마의 압제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기 위해 주전 37년 세워진 요새입니다. 망대에 올라가면 성전전체가 한눈에 들어왔고 조금이라고 소요가 일어나면 병력을 동원하여 진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 소요가 일어났으니 급히 병력이 동원된 것입니다.
천부장이 군중을 조용히 시킨 후 영문을 알아보니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하여 진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흥분한 군중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고, 이에 천부장은 군인들에게 바울을 들어 영내로 들어가라 명합니다. 바울은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영내로 들어가는 계단위로 올라가다 천부장에게 말합니다. 그것도 헬라말로. 천부장은 로마 사람이니 헬라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기에 당연히 헬라 말에도 능통했습니다.
사도행전 21:40 (NKRV)
40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의 계단 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도 천부장과 로마병력 천명의 호위를 받으면 말입니다. 바울이 전혀 기대했던 방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그립니다.
사도행전 22:2 (NKRV)
2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흥분은 가라앉았고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바울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박과 환난은 당했지만 복음은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후 일어난 일들은 더욱 놀랐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소요사건으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날 밤 바울이 안토니오 요새에 감금되어 있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23:11
11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네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예루살렘에서처럼 한 것처럼 할 것이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자유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고소를 당하여 결박된 상태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결박과 환난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상태에서 복음은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의 결박은 오히려 그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손길과 같았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당시 로마시민의 법적 권리 중의 반역죄라 할지라도 로마에서 재판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건을 황제 가이사에게 항소했고, 로마로 호송되면서 군인들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죽이기 위해 준비된 암살단, 자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를 알고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철저하게 보호합니다. 바울을 위해 비밀호송작전이 계획되고 진행됩니다.
사도행전 23:23–24
23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바울을 위해 엄청난 병력이 동원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로마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이와 같이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바울은 만난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가이사랴에서 총독 벨릭스를 만납니다. 가이사랴는 헤롯궁이 있는 곳이고 로마 황제의 휴양소가 있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벨릭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4:24–25 (NKRV)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또 바울은 이곳에서 아그립바 왕과 그의 아내 버니게를 만납니다. 그들이 베스도 총독을 문안하러 왔던 것입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이에 총독과 왕을 비롯한 유력한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5:23 (NKRV)
23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이후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되던 중 풍랑을 만나 밀레데 섬에 체류하게 되는데,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8:7 (NKRV)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바울은 로마에 들어가서도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28:16–17 (NKRV)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사도행전 28:23 (NKRV)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들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놀랍게도 로마에 가택연금 상태에 있으면서 유력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을 주관했던 상류층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살펴본 것처럼, 로마로 오는 동안에도 주로 상류층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28:30–31 (NKSV)
30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
성령님의 뜻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바울의 결박과 환난은 오히려 복음을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21–23 (NKRV)
2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가이사가 누구입니까? 로마 황제를 말합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이란 로마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바울은 비록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지만, 로마의 심장부에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성령을 따라 행할 때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바라기는 이곳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 성령을 따라 행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유익과 만족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내 뜻보다 성령님의 뜻에 순종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하실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를 한다거나, 직장을 옮긴다던가, 사업을 시작할 때, 성령님의 뜻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성령님의 뜻을 묻고 인도함을 받으세요. 성령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 분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할 때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NKRV)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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