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6-20 12:58

18. 성령을 따라 행하라 3

jo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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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8. 성령을 따라 살라 3. 

 

갈라디아서 6:1–5

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갈라디아서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결론부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배웠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비슷한 패턴을 따르는데, 전반부는 교리에 대한 가르침을 하고, 후반부는 삶에 대한 강조를 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전반부에 이신칭의의 교리를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후반부는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가 몇 가지입니까? 아홉가지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열매, 단수로 쓰고 있습니다. 아홉가지 열매가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맺히고 희락을 열매는 맺지 못할 수 없습니다. 화평의 열매는 맺고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9가지 열매가 골고루 맺힙니다. 

 

바울 편지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님에 대한 강조입니다. 

에베소서의 경우 결론부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5:18 (NKRV)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린도전서는 너희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19 (NKRV)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2:8–11 (NKRV)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빌립보서는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3:3 (NKRV)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결론부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 (NKRV)

19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결론부에 항상 성령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라, 성령 충만함을 받아라,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성령님에 대해 강조할 때 여러분은 어떤 것을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성령 충만이라고 할 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많은 성도님이 성령 집회에 모여있습니다. 앞에는 부흥사 목사님께서 열정적으로 말씀으로 전하십니다. 성도들은 아멘 아멘 하며 말씀에 화답합니다. 설교 후 손뼉을 치며 뜨겁게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성령님의 충만함을 간구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분들도 계시고, 손뼉을 치며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과연 바울은 이러한 것을 염두하고 성령 충만을 말했을까요? 

 

성경을 잘 보시면, 성령님에 대해 강조할 때는 성도들이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와 연관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보시면,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고 나서 부부관계에서 섬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의 사랑과 순종, 그리고 직장에서 성실함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성경충만이나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일상의 삶과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라면,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먼저 오늘 본문을 보시면 범죄한 형제가 있거든 온유함 심령으로 바로 잡으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1 (NKRV)

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누군가 죄를 범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살펴서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도 범죄한 사람이 있고, 직장에도 있고, 가정에도 있습니다. 이때 가장 최악의 상황은 그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으라고 합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너희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의 죄인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물론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십니다. 

 

에베소서 4:30–31 (NKRV)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너희가 죄를 범하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십니다. 하나님, 예수님처럼 온전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성령님은 근심합니다. 

자식들이 죄를 범하면 부모는 근심합니다. 심판하지 않습니다. 정죄하지 않습니다. 물론 매를 들어 때릴 때가 있지만 그것은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과 다릅니다. 안타까움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근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임을 아십니다. 그리고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임도 아십니다. 그러한 우리를 긍휼함으로 바라보십니다. 

로마서 8:1 (NKRV)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정죄하지 않습니다. 만일 성령님이 정죄하는 분이시라면 우리는 벌써 심판받아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끌고 왔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왔다는 것은 이 여인이 미리 파놓은 계략에 빠졌음을 의미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평소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 등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죄인을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에 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현장에서 간음한 사람을 붙잡아 예수 앞에 세우고 예수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율법에는 이러한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용서하라고 한다면 율법에 반하는 것입니다. 반면 율법대로 돌로치라고 하면 그동안 죄인을 용서하신 예수의 모습에 반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간음한 여인은 돌에 맞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수치심에 몸을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는 여인의 행동에 분개한 사람들이 돌 하나씩 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몸을 굽히사 손가락을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순간 깊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기 시작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첫 번째 돌을 던지는 사람은 현장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 앞에 있는 여인의 죄만을 보았지,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살피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8:9 (NKRV)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10–11 (NKRV)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정죄는 의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죄가 없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록 정죄하지 않았지만 네 행동은 죄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정죄한 권리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정죄할 만큼 의로운 사람은 아마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나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누군가 죄를 범한 것을 알았다면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새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1 (NKSV)

1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온유함 마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향한 마음입니다. 부모가 연약한 자식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정죄하여 파멸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방법은 온유함으로 바로 잡는 것입니다. 제가 범죄한 일이 있고 그것이 드러났다면 여러분을 저를 온유함으로 바로 잡아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누군가 범죄한 일이 있다면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떳떳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 (NKRV)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예수님은 교회내에서 범죄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5–17 (NKRV)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이렇게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정죄하여 심판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다시는 그 죄에 빠지지 않고, 회복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자신에게도 죄가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살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통해 자신의 죄를 살피는 사람입니다. 행여 나에게는 그러한 죄가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한동안 제가 사는 동네에 시커먼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교사를 갑질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가족이 저희 동네로 이사 온 것입니다. 살인자는 이 동네를 떠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습니다. 어떤 분은 갑질 부모가 운영하는 가계 앞에 돌과 계란을 투척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죽은 교사의 학교 앞에는 수많은 조화가 세워졌습니다. 

저는 갑질한 학부모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을 대할 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 안에 죄를 살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3 (NKRV)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정의를 외치며 정죄하는 사람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는데 된 줄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의롭지 못한데 의롭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데 거룩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순결하지 못한데 순결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5 (NKRV)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는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악은 악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합니다. 나는 약자들 앞에서 갑질한 적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나의 갑질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26–27 (NKRV)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여 비난과 판단의 말을 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혀를 재갈 물려야 합니다. 정죄하는 입을 다무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3.서로 남의 짐을 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2 (NKRV)

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의 짐을 져야 합니다. 여기서 짐이란 연약함을 말합니다. 

교회는 강한 사람도 있고 연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연약함을 담당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3 (NKRV)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부르셨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이듯이, 가족이 하나이듯이, 교회도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나됨을 지킬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4:2–3 (NKRV)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 사랑 가운데 용납함 그리고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연약함을 감당합니다. 남편의 연약함을 아내가 담당하고, 아이들이 돕습니다. 아내의 연약함을 남편과 아이들이 담당합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부모가 감당합니다. 만일 서로의 연약함을 담당하지 않으면 가정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담당해야 할 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셔야 합니다. 도망치면 안 돼요. 그것이 나에게 맡겨주신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 6:2 (NKSV)

2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법이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법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서로의 연약함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황홀하고 달콤한 것이 아니라, 사랑은 고통입니다. 

뉴킹제인스 버전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Love suffers long” 사랑은 오랜 고통이다. 왜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연약함을 짊어져야 하니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것도 오랜 고통입니다. 

우리의 삶이 왜 고통스러운지 아십니까? 사랑해서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어요. 사랑하는 만큼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여러분, 고통스러울 때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많이 사랑하는구나! 

 

우리가 다 연약합니다. 남편이 부족하면 고치려 하지 마시고 그 부분을 내가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짐을 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5 (NKRV)

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그것이 내 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감당해야 할 내 짐이에요. 원망하지 마세요. 불평하지 마세요. 그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내 짐입니다. 내 짐만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진 짐이 다 무겁습니다. 

 

성령을 따라는 삶은 막연하지 않아요.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주변에 죄를 범한 사람이 있을 때, 그래서 분노와 비판에 사로잡힐 때, 성령님께 기도하세요. 그를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그를 긍휼히 여기고 회복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우리 가족 중에 연약함 분이 있을 때 그 연약함을 함께 짊어질 수 있도록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짐을 끝까지 묵묵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살아 가는 실제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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