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2. 복음 1_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갈라디아서 1:4–5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른 복음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펜을 들었습니다. 다른 복음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1:7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란한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변질시킨 것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변질시킨 복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다른 복음을 규명하기 전에 바른 복음에 대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복음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명확하게 설명은 못 하셔도 어느 정도 아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복음을 설명하기 어려우시면 우리가 암송하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12가지로 요약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음 하면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로 인해 우리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이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이보다 훨씬 풍성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세상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창조되었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삶에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히 생기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일어나며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어떻습니까? 복음이죠. 내 삶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또, 이제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다. 라는 것은 어떤가요? 이 땅에서의 삶은 비록 고되고 힘들어도 마침내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고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충만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간혹 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성도님들이나 임종이 가까운 성도님들을 만나면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을 들려줍니다.
요한계시록 21:4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질병으로 인해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러운 분들에게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복음입니다.
임종을 앞둔 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절망한 분들에게도 복음입니다.
화장터 화구 앞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인해 울고 있는 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님, 비록 아버님은 시신은 불에 타 없어지겠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사실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복음입니다.
사형선고를 앞둔 죄수에게 당신은 비록 참혹한 죄를 범하여 사형을 받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당신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합니다. 비록 사형을 면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복음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 이후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성경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시 뉴스는 슬픈 소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성경은 복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고 읽으면 기쁨이 생기고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가 복음이지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설명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4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3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받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에게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된 소식을 먼저 그에게 전하셨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절에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성경을 가르쳤고-바울이 가르친 성경은 구약성경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왜 오셔야 했는지, 왜 죽으셔야 했는지. 왜 부활하셨는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과 가르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 신약성경입니다. 그중의 복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전하라고 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나머지 신약성경입니다. 그러니까 신구약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세움을 받고 갈라디아 지역에 다니며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다 전파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능통했던 바울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차근차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한 사건, 이후 모든 인간이 죄의 비참함 가운데 처한 이야기,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의 백성 삼은 이야기.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이야기등.
이러한 구약성경의 내용을 통해 내린 결론은 바로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고 자기 백성 삼으시며 늘 신실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셔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를 만족시킬 대상, 즉 우상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구약성경이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신명기서를 통해 확인했던 것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게 하도록 율법을 주셨지만,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죄가 크고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쓴 첫 번째 서신입니다. 1차 선교여행 후 작성한 것으로 봅니다. 주 후 48년 경입니다. 후에 3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것이 로마서입니다. 주 후 58년 경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쓰고 10년 후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먼저 쓰고 10년 후에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그 주제나 내용이 매우 흡사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6장이지만 로마서는 16장입니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의 내용을 좀 더 세밀하고 풀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1-3장까지의 내용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구약성경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그 결론이 이것입니다.
로마서 3:10–12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23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선포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처한 비참한 상황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구약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 기분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복음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모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이런저런 검진 후에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의사가 모니터의 화면을 보더니 유심히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암입니다.”
이것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희는 죄인이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선포합니다. 너희는 결국 죽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18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로마서 2:3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로마서 2:5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얼마 전 미자립교회 목사님 모임이 있었습니다. 최근 개척하신 젊은 목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초등학교 하굣길에 아이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이 반응한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복음을 듣는다고 합니다. 하루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경찰이 온 것입니다. 그 옆에는 아이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목사님을 보자마자 당신이 뭔 대 내 아이한테 죄인이라고 하냐고 다짜고짜 다그치더랍니다. 경찰은 신고받고 왔다면서 잠시 조사에 응해달라 했습니다.
목사님은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은 목사이고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중,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엄마, 모르는 아저씨가 내가 죄인이래.”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에 엄마가 화가 난 것입니다. 요즘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면 혐오적인 표현을 한다고 해서 신고를 당합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전도하러 갈 때마다 위축된다고 했습니다.
전에 부목사로 사역할 때입니다. 새벽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청년 자매였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자매입니다. 자기는 제가 담당한 교구 지역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병원으로 빨리 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려고 하는 데 와서 복음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서울아산병원으로 갔습니다. 병들에 들어서니 남편분은 한쪽에 멍하니 서 있고 자매가 저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합니다. 어제저녁에 쓰러졌는데 의사가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여성분 쪽으로 다가가 먼저 반응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어머니, 제 이야기가 들리면 눈을 꿈쩍여 보세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의식이 있든 없든 귀에 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복음을 전해야겠기에 5분 정도 예상하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어머니,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 또한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 뿐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인입니다.”
그 말에 끝에 의식이 없던 분이 고개를 좌우로 젖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얼굴은 검었고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마치 악한 영이 장악한 듯 보였습니다. 구석에서 지켜보던 남편분은 당황했고 청년 자매도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 과연 복음을 듣고, 죄인임을 인정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것은 죽어 가면서도 자신이 죄인이라 사실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번은 구역예배를 인도 하고 돌아가려는데 한 할머니께서 제 손을 붙잡고 밑에 층에 있는 어르신 좀 만나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목사님 오셨어요”라고 말했지만 요동하지 않고 창밖만 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지만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뭔가 화가 난 듯 보였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난감했습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무작정 왔는데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르신 밖에 목련꽃 참 예쁘죠?.” 어르신은 창밖으로 목련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내년에도 저 예쁜 목련꽃을 보실 수 있으실까요?”
한숨을 쉬셨습니다.
“어르신이나 저나 모두 결국 죽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어르신보다 제가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결국 죽어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요.”
할아버지는 몸을 제 쪽으로 돌려 앉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들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저는 복음을 전했고 이번 주에 꼭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어나 돌아올 때는 할아버지께서 문 앞까지 나와 마중해 주셨습니다.
그날 할아버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36살의 청년목사가 8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당신은 죄인이라고 말했고 그 당돌한 선포에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분께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따귀를 때렸을 그 말에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었고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이 죄인이라는 말에 경찰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무릎을 꿇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4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자입니다.
구원자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심판으로 멸망할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대속이 무엇입니까? 죄인의 심판을 대신 받는 것입니다. 죗값을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죄로 인해 죽습니다.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9:27
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죽음을 그렇게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고 끝나는데 뭐가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심판 있습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압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우리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 영혼이 예수님이 재림할 때 부활을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생 복낙을 누리던가,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0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살아온 모든 삶의 행위를 심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행위를 어떻게 아실까요? 우리 삶은 다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 우리의 말, 행위 모든 것은 기록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심판대 앞에 책들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 있습니다. 책은 생명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책들은 무엇입니까?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지요. 즉 행위를 기록한 책이기에 여러 권 책으로 있습니다. 요한이 이것을 기록할 당시 행위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책이었지만 현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오히려 메모리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촬영한 메모리칩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곧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데 그때 우리 삶의 모든 행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까?
의인입니까? 아니면 죄인입니까?
고린도후서를 다시 볼까요?
고린도후서 5:10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심판대에 누가 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갈라디아서 1:4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석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께 오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의롭게 하십니다.
요한1서 1:9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암환자에게 복음은 치료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료된들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복음을 믿으시고 영생을 얻으시길 축복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