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4-01-24 21:54

3. 복음2_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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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3. 복음2_은혜

 

갈라디아서 1:3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복음,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돌아선 다른 복음을 규명하기 앞서 먼저 바울이 전한 복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은혜라는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3절의 내용은 바울의 인사말에 해당합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대부분 동일한 인사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1–2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2–3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디모데전서 1:2

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 1:1–2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발신자와 수신자에 대한 언급만 다를 뿐 모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와같은 바울의 인사말은 단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와 평강이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단어에 복음이 녹아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쓸 때 그의 심정은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른 복음에 오염되었고 그 결과 은혜의 복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6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이상히 여긴다’는 표현은 순화된 표현이고 ‘경악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너희가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셨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에서 속히 떠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성도들은 복음에서 떠났고, 그것은 은혜에서 떠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편지 서두에서부터 은혜를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기독교가 말하는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은혜’의 뜻은 아무 공로가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선물입니다. 

 

죄인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죄인은 심판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단지 심판을 면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 은혜가 표현될 때 사랑, 긍휼, 자비, 용서 등으로 표현됩니다. 그 기저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떠한 기준에 도달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심판받은 죄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노아를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온 인류가 물로 심판받았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그가 의롭거나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6:7–8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난 그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셨고 믿음이 없는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그는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첩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어떻습니까? 애굽에서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가 바로의 명령에 따라 낙태되거나 살해될 때 하나님은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그는 동족을 학대한 사람을 죽여 미디안 광야로 도피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을 붙여 주셨고, 능력 또한 주셨습니다. 모세가 한 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행한 업적이나 능력을 행했던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그들이 잘나서가 전혀 아닙니다. 

전 생애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이룬 놀라운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은혜를 분명히 이해해야만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과거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미래의 삶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내 과거의 삶 속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현재의 삶에도 은혜를 베푸시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 속에서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일어난 좋은 결과들은 내가 잘나서 또는 잘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이해하게 되면,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가 잘한 것에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비록 내가 지금 못나고 잘못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기에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체험하셨잖아요. 우리 인생은 인과응보가 아닙니다. 인과응보의 기본 법칙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열심히 잘했는데 잘못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잘못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 삶 전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은혜 베푸시길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바울은 그중에서 우리의 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지만 그 은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또는 의지력을 발동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때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때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영접 기도를 했기 때문에 난 구원받았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영접기도 한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 전 인생을 통해 이뤄집니다.  내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여정이라고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구원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2:12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잘하면 구원에 이르고 잘못하면 구원에서 이탈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은 전 인생을 통해 이뤄지며 너희 인생 전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너희 인생을 구원하실 때 그 하나님께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그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전 인생에 개입하여 구원을 이루어가실 때 너희가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구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2:13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관하십니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주셔서 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구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앞으로 남인 우리 인생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때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세운 선한 뜻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입니다. 여러분들이 ‘새해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야겠다.’ ‘새해에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 이렇게 해야겠다.’ 다짐과 결심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소원들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주신 소원입니다. 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게 하려고. 즉 여러분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주신 소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은 내 노력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셨다면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 속에서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에서 부지런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내 마음에 주신 소원을 나는 이룰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룰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자랑할 만한 선한 일들을 행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하기도 하고,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자랑할 만한 일이고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랑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일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맺어진 모든 선한 열매들은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일한 결과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실로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의 업적을 제외하면 교회가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일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의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삶을 보십시오.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6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은혜로 부르셨는데 그리고 지금까지 은혜를 주시고 계신대 왜 은혜의 복음에서 속히 떠났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갈라디아서를 통해 그 이유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자격이 없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그 끝이 영화로움입니다. 우리가 영화로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의롭게 하시고, 삶의 역사 속에서 성화시키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은혜로 시작되어 은혜로 마쳐지게 됩니다. 

로마서 8:30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28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삶의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는 잘못했고, 실수했고, 또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운 죄까지도 합력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선함, 즉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믿을 때 평강이 임합니다. 자유를 누립니다. 

은혜를 믿어야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완벽하게 내 삶을 컨트럴 해야 하거든요. 실수해도 안 되고, 넘어져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미련해지잖아요.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고, 몸도 예전과 같지 않고, 왜 이렇게 실수가 잦은지. 이런 생각에 빠지면 우울하고 미래가 두렵습니다. 내가 잘해야 하는데, 내 노력의 결과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다라고 생각하니까 두려운 거예요. 

 

돈도 많이 모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그래야 우리 자녀들 인생에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고,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 마음이죠. 그런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 바라보면 한심할 때가 많거든요.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야성도 없고 열정도 없고. 저래서 험악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됩니다. 

 

이것도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다 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한국에 들어와 오랜만에 창원에 계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전부터 전화로 장인어른이 이상해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모를 때였습니다. 창원에 도착해 근처 아귀찜을 먹으러 갔습니다. 화장실에 가신 장인이 한참을 지나도 오시지 않자, 장모님이 모시러 갔습니다. 아내도 걱정되어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장모님은 소리를 지르며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처음으로 장인어른이 치매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걱정과 염려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힘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깨달은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맡겨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돌보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혜를 베푸시고 돌보실 것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7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을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우리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은혜를 중단하신 적이 없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가 영화로워지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길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성도들을 위해 이러한 축복의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6:24–27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저는 여러분의 목사로서 동일한 축복을 기원합니다. 

복을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키시길 원하시며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평강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올 한해,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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