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2-07 11:30

89. 신앙의 항해 1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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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89. 신앙의 항해

 

사도행전 27:1–20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바울은 이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미결수의 신분입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내용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항해 중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누가는 이 여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항해 중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신앙의 여정은 항해와 같습니다. 

첫 번째로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신앙의 여정은 항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배에는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탔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어떤 이는 죄수의 신분으로, 어떤 이는 죄수를 호송하는 임무로. 

어떤 이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또 어떤 이는 절망감으로 배에 오릅니다. 

총 276명의 사람들, 이들은 이번 항해에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가운데 바울이 있습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반드시 이 배는 이탈리아의 어느 항구에 도착할 것이고, 자신은 로마에 가게 될 것을 말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확신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몇 차례 네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어떤 항로를 통해 가는지, 또 여정 중에 어떤 이들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목적지는 알았지만 과정까지 안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종착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어디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가는 여정은 모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까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셨습니다. 어디를 통해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우리의 결정과 책임으로 두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종착지를 알았습니다. 

그곳은 가나안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루트까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으로 남겨두셨습니다. 

히브리서 11:8

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지도를 펼쳐주시면서 이곳으로 가라 저곳으로 가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간혹 그런 일이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갈 것을 환상 중에 알려주시는 일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십니다. 그 판단과 결정을 통해 우리 인생길을 걸아가게 하십니다.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도 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를 성숙한 자들로 빚어 가십니다.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지게 하심으로 어린아이 같았던 우리를 장성한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결정해 주시면 의존적인 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부모가 자녀의 앞길을 결정해주고,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처리해 주면, 자녀는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비록 잘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망치는 일이 있어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를 발견해 갑니다. 그리고 성숙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과정을 숨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근심과 걱정으로 다가오겠지만, 성도들은 다릅니다.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행하실까? 나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바울은 기대와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기에, 앞날에 펼쳐질 항해 길에 새로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현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신앙의 항해를 믿음을 사람들과 함께 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27:1–2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바울이 배를 타고”라고 표현하지 않고 “우리가 배를 타고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습니다. 아리스다고가 누구입니까? 

사도행전 19장에 에베소에서 우상직공 조합이 데모하고 극장에 모였을 때 끌고 왔던 사람이 바울의 동역자 아리스다고입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선교에서 얻은 동역자로서 선교 여행중 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10 

10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늘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선교여행에서나 로마의 연금 상태에서나 있을 때나 늘 곁에 있었던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 이들로 인해 바울은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있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항해를 홀로 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함께 할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외롭지 않도록, 두렵지 않도록, 어려움을 함께 할 동역자들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여러분에게는 누가와 아리스다고와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면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의 돈으로도 못 바꿉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축복일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복을 중히 여겨 사람의 복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요, 사람이 축복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큰 축복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믿음이 있으셨습니까?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도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 또는 아내가 믿음이 있습니까? 이 또한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 곁에 신앙의 항해를 함께하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습니까? 축복입니다.

 

주님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고, 어려울 때 함께 기도해줄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신앙의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 믿음의 동역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돈은 잃어버려도 되지만 사람은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신앙의 항해가운데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바울의 호송 책임자는 백부장 율리오입니다. 1절에 보면, 아구스도대의 백부장이라는 소개합니다. 아구스도대는 로마 아구사도 근위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율리오는 로마의 장교, 세상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율리오를 통해 바울을 보호하십니다. 

 

사도행전 27:3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지도를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 지도- 바울의 로마행

 

시돈에는 바울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율리오는 바울에게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가이사랴에 있을 때도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이것은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 아니라 복음전도자로서 권력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유대인에게 테러를 당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7:42–43

42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항해 중에 광풍을 만나게 되고 배가 표류하게 되거든요. 이때 군인들이 헤엄쳐 도망갈 때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도 율리오가 바울을 보호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 세상 권력을 통해 성도들을 보호하심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요새에 있을 때도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보호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국가나 정부를 우리의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세우시고 정부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정부가 죄를 조장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이상 성도들은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의 권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위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지요. 따라서 국가나 정부가 하나님의 권위에 반하는 것을 지시할 때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와 같은 - 불복종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따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세상정부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총리가 된 것입니까?

그는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있을 때 충실했습니다. 

 

창세기 39:5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그의 아내를 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지만 옥에서도 충실했습니다. 

 

창세기 39:23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노예지만 충실한 것, 죄수지만 충실한 것, 이것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이것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결국 애굽의 총리자리에 오르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백부장에게 감동을 준 것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울이 얼마나 성숙하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주 강조드리지만, 우리가 직장인이라면 상사에게 인정받고 사장님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라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누가 보던 보지 않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에 세상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여 우리를 돕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감동하여 우리를 돕는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동역자들을 통해서도 은혜를 베푸시만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니 세상을 배척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죄에 대하여는 맞서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앓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도의 대상들이고 우리도 전에는 그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4. 신앙의 항해에도 위기는 닥칩니다. 

 

본문을 보면 순풍의 순간과 폭풍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7:13–14

13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바울이 탄 배는 남풍이 순하게 부는 안정의 시기도 있었지만,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나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폭풍은 세상 사람과 성도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도 폭풍은 몰아칩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길에 위기는 닥칩니다. 

그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7:7–8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간신히” 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지요. 항해가 어려웠음을 보여줍니다. 바람과 파도가 항해하기에 녹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는 배가 파선될 위기를 겪게 됩니다.    

사도행전 27:15 

15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사도행전 27:20

20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광풍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항로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항해술은 해와 별을 보면서 항로를 잡았기 때문에 해와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배가 표류하다가 완전히 항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구원의 여망마저 없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가는 항해에도 폭풍이 붑니다. 

마가복음 4:36–37 

36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러분! 신앙의 항해는 위기를 동반합니다. 예수 믿고 만사형통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을 위해 예수 믿게 되면 잘못 믿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코로나의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닥칩니다. 성도라고 피해가지 않습니다. 

폭풍이 불면 배안의 모든 사람에게 위기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목적지를 압니다. 그래서 담대합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일이 생길지라도 성도들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5. 신앙의 항해중 위기의 순간은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시기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배는 결국 모든 짐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 배에는 많은 곡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항해 시기가 주후59년 10월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9절에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다’는 언급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절기인 속죄일을 말하는데, 9월에서 10월 사이입니다. 당시문헌에 따르면 9월 15일 이후에는 항해가 위험하다고 간주되었고 11월 11일부터 다음해 3월 10일까지는 아애 항해가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9월 15일 부터는 항해는 가능하지만 매우 위험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선들을 항해를 하곤 했는데 그것은 돈 때문입니다. 평상시보다 4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운항한 것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운항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7:10–11

10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결국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7:18–19

18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욕심 때문에 가려졌던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살면서 이전과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이러한 때에 버릴 것은 버리고 삶을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발견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 귀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7:26–27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여러분! 지금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일상의 삶이 불가능한데 일상의 삶을 추구합니다.

이제 홍수가 내리고 방주의 문이 닫히는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갑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고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구촌교회를 목회하셨던 이동원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aJpMJLFXUc

 

위기의 때에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코로나라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영혼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만일 오늘 죽는다면 천국에서 눈을 뜰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인생은 침몰하는 세월호 같습니다. 모두가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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