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90. 신앙의 항해 2
사도행전 27:21–44
21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 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이에 군인들이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 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8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사도행전 강해 90번째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신앙의 항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저자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로 향했던 항해의 여정을 돌이켜 보면서, 중요한 영적인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여정이 항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계속해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구출 또는 구조라는 단어가 적합할 듯 하지만 구원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풍에 밀려 배가 표류하게 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27:20
20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31절에도 보면, 사공들이 거룻 배를 타고 뭇으로 가려고 시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7:31
31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4절에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7:34
34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 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저자 누가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이 사건을 구원이라는 영적인 차원에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이 사건의 영적인 의미 곧 하나님의 구원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1. 신앙의 항해에서 멈출 때와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지도를 보면서 그 간의 과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 지도>
알렉산드리아호는 그레데섬의 미항에서 뵈닉스항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멀지 않습니다. 12절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7:12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항구가 양쪽 바람을 막고 있어 안락했던 것입니다. 또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보다 안락하고 안전한 곳,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달랐습니다. 이 결정에 반대했습니다.
사도행전 27:10
10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바울은 이 여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유인즉, 항해하기 위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10월부터는 항해가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11월 11일 부터는 3월 10일 까지는 아애 항해가 금지 되었고요. 바울은 판단과 의견은 이것입니다. 비록 가까운 곳으로의 이동이지만 너무 위험하고 결국 배와 우리 생명도 타격과 손해를 입게 될 것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의 신분입니다. 그 누구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7:11
11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행하실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이제 항해의 주도권을 바울이 쥐게 될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는 항해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니 백부장이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는 뜻하지 않게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항해의 전문가들의 의견이 틀린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의 항해를 하는 동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말아야 할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질병에 걸리면 의사의 말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신뢰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말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판단과 결정의 순수성입니다. 전문가의 순수한 의도인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이 개입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선장과 선주의 결정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항해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바울은 워낙 항해의 경험이 많기 때문이 이 시기에 배를 띄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험적으로 알았습니다. 선장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강행한 것은 그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보다 안락한 곳에서 즐길 거리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기왕 정박해야 한다면 미항보다는 뵈닉스가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12절에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전문가의 판단과 대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어 뵈닉스로 가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들은 분별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전문가의 의견을 무조건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판단과 결정이 과연 순수한가를 분별합니다. 무조건 수술을 결정하기 보다는 두 사람 이상의 의사의 판단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TV를 통해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눈앞에 정상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앞두고 포기하는 경우입니다. 등반에서 과욕은 금물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등반이라 할지라도, 수억 원의 후원금을 받고 오르는 산행이라 할지라도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잃게 됩니다.
해녀들이 물질하러 갈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딱 자기 숨만큼만 있다가 오너라” 욕심을 부리는 순간 물을 먹고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한 후 재기에 성공한 성도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때 다 내려놓기를 잘했다고, 손실금을 막으려 처음에는 가족들 돈을 끌어 쓴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지인들의 돈을 빌리려고 하는 순간 깨달은 것입니다.
“여기서 멈추자. 그리고 다 내려놓자.”
만일 그때 멈추지 않았다면 그때 내려놓지 않았다면 현재 자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신앙의 항해 가운데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멈추지 않으면, 그때 내려놓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내 욕심 때문에 잘못될 길로 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멈추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가면 안락하고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 같습니까? 그래서 가족과 주변을 희생하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까?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가족과 이웃을 희생시키면서 얻은 행복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리아호의 위기는 결국 선장과 다수의 의견이 자조한 결과입니다.
우리 삶의 많은 위기들도 그렇습니다. 내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서야 합니다.
항해의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에게 도착할 때까지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2. 신앙의 항해에서 성도의 역할 -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자
알렉산드리아 호는 유라굴로 광풍에 밀려 표류하기 시작합니다.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바람에 밀려갑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배에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 난관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광풍은 크기는 그들의 능력보다 컸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성경은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말합니다.”
이때 바울이 한 행동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27:22
22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모두가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바울은 살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도 아니고 긍정의 힘도 아닙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27:23-26
23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여러분, 성도들은 소망 없는 세상에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구원의 소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캄캄한 어둠속에 표류하는 배에게 멀리서 깜박이는 등대의 빛은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 빛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빛은 발견된 자에게만 소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속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5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나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어둠속에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명은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예수의 빛을 보게 하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알려줌으로 주님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이 빛을 발견하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3. 신앙의 항해에서 믿음 힘 1-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줍니다.
사도행전 27:25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죽음의 공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합니다. 이유인즉,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항해하던 배가 폭풍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과 싸우지만 예수님은 뱃고물에게 주무셨습니다. 어떻게 광풍 속에서도 잠을 잘 수가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풍랑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실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항상 내 능력보다 내 앞의 문제가 클 때 찾아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문제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내 자신의 능력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능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은 능력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평안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늘 불안할까요? 아닙니다.
삶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본질적인 감정입니다. 누구나 두렵습니다. 그것은 능력의 문제도 소유의 문제도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내 신앙의 항해에 함께 하신 주님을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뱃사람들입니다. 항해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으로도 광풍을 이기지 못하자 이렇게 외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4:40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두려움은 내 인생에 함께 하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지 못할 때 두려운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뱃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이, 창조주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임을 믿었다면 과연 두려워했을까요?
만일 여러분이 두려움과 염려가운데 계신다면 주님을 신뢰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삶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실 분이십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의 힘과 지혜로 온 것 아닙니다. 그때 그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 주님께서 내 손을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견인해 가십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항상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그 믿음이 폭풍가운데서도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4. 신앙의 항해 가운데서 믿음의 힘 2-소망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이러한 바울의 믿음은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7:33–34
33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 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참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바울은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권합니다.
사람이 소망을 잃어버리면 먹기가 싫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면 가장먼저 식욕부터 끈깁니다. 소망을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나흘이나 먹지 않았으니 기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섬에 걸리게 될 것이고 그 섬까지 헤엄쳐 가려면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바울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가가 손을 잡아주며 음식을 먹으라고,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누워있는 자들을 부추겨 세우고 음식을 나누는 바울의 모습을 말입니다.
바울의 말에 소망을 품은 사람들은 이제 바울을 중심으로 주변에 둘러섭니다.
그리고는 마치 성찬의 한 장면처럼 바울은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떼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7:35-37
35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그들은 기력을 회복했고 배는 하나님의 약속처럼 어느 섬 가까이에 이릅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헤엄을 치기도 하고, 널조각을 의지하기도 하여 섬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배에 탄 276명의 사람 전원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편23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23:5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목전에 있는데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상을 차려 주시고 먹으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밥 먹어. 괜찮아. 내가 너 지켜줄게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 가운데 삶에 닥친 어려움 때문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먹는 것조차 힘겨워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말씀을 통해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드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붙드실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을 붙드실 것입니다. 그 붙드심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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