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2-25 16:21

3.성령의 권능으로 예수의 증인이 되다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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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실황 전체 영상

사도행전 강해 3.

사도행전 1:4–8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또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리시는 성도님들에게도 하늘의 평강과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사도행전 강해 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함께 모인 가운데 이루어진 대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까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라고 할 때 ‘모이다’라는 단어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거나 교제를 나눌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최후의 만찬 때처럼 자주 모여 식사를 나누고 교제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승천하시기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분부하신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4절 뒷부분부터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에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이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보혜사 성령님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과 분부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 (NKRV)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예수님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자주 나눈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이 땅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반면 사도들이 기대했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당시 로마의 압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다윗 왕 때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와 간청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왕으로 등극하시면 한 사람은 주의 우편에 한 사람은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열 제자가 듣고 분개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21절입니다.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세베대의 아들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청탁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아들을 주의 나라에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여 다스릴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경험하고 살았던 세상 나라처럼 여긴 것입니다. 그들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상황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십시오. 윗 구절을 보시면

마태복음 20:17-19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르십니다. 12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특별하고 중요한 것이기에 열두제자를 따로 부른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씀한 내용이 이것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오로지 관심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다시 말하면 자신 들이 원하는 나라에서 한 자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마태복음 20:25–27 (NKRV)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무슨 말인가 하면 로마의 권력자들이 힘과 지위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너희가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큰 자들은 다스리고 부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들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세상 나라를 향한 관심이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목격했음 데도 불구하고 전혀 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주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세운 열두 사도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고 주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자신들도 한자리씩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도 로마의 고위관리들처럼, 힘과 권세를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도들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통치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소망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 나라에서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 힘과 권세를 누리기를 소망하시나요?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어 섬기는 자들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 나라에서 큰 자가 되어 섬김을 받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한때 한국교회의 청년들에게 유행했던 고지론은 그리스도인들이 힘과 권세를 가져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한 세상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또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만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세상을 섬길 수 있다면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세상을 섬길 수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관심은 세상 나라의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성공하여 풍요롭게 살고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이 세상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까?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한순간 무너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능함과 무기력함을 철저하게 깨닫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로켓을 타고 우주를 정복하는 시대에 바이러스로 인해 수천 명이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가지 않아 백신이 개발되겠지요. 그렇지만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생성되어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 아직도 세상 나라에 소망을 걸고 계십니까? 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지 않고 소망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 바라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아서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성령님이 임하시지만,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와 다스림 앞에 굴복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도들은 이제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이후 그들의 삶은 180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계속해서 성령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고, 5절에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하시면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 (NKRV)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먼저 4절에 성령세례가 등장하는데 성령세례는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처럼, 성령 세례는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사람은 다 받았습니다. 성령세계는 계속해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가진 분들은 다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서가 아니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세례는 믿음이 특심한 분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은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의 임재 안에 거하면서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할 때, 그것은 다스림의 의미입니다. 술을 먹으면 술이 우리의 이성과 감성과 행동을 주관하듯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장악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성령세례를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가운데 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 나라의 성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거하게 될 때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세상 나라에 관심이 있던 사도들은 성령님이 임하자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 권능은 사도들에게 있던 권능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 증인, 곧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살았던 사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았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내’ 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마르튀스인데 이것은 목격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대상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사도들에게 특별한 권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관심은 오로지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을 세상에 나타내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역이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인간 저자들에게 임재 하여 그들 각자의 인격과 개성을 활용하여 성경을 저술하게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모두 예수님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윤리적인 교훈이나 도덕책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경전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기 위하여 쓰인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증인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서 증인들의 기록을 읽는 것입니다.
증인은 법정 용어입니다. 증인은 반드시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만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공생애 사역 내내 함께 있으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새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이 직접 떡을 나누어 주었고 남겨진 것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실 때 그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병자들을 고칠 때나 귀신을 내어 쫓을 때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도 목격하였고 무덤에 안치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무덤으로 달려가 그곳이 빈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기록은 세밀하였습니다. 빈 무덤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도들은 자신들이 증언한 내용을 죽음으로써 증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들의 증거를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모진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것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마르튀스인에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martyr 순교자라는 단어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담대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고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담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의 목사님들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분들 중에 어떤 분은 신사참배를 하였고 어떤 분들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옥게 갇혀 고문을 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 분들도 계십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움가운데 있는 나를 담대하게 하실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어떻게든 살기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당시 예수님을 증거했던 성도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5–38 (NKRV)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성경은 사도들의 증거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이 죽으면서 까지 지키고 싶었던 진리, 그러기에게 성경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증인들의 기록을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 증거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이 사실,
예수 크리스토스 퀴리오스
예수는 주님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이 진리.
우리는 기록된 증인들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습니다. 그 분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믿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주님은 2천년전 계셨던 책속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체험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이제 우리도 주님의 증인들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내가 경험한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나라는 종말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심판의 때가 곧 임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증인들로 살아간 자들에게는 하늘의 위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히브리서 12:1–2 (NKRV)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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