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83. 담대함의 이유 2
사도행전 24:1–23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본문은 바울이 정식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전에 산헤드린공회에서는 재판이기 보다 청문회에 가까웠고요, 오늘은 재판입니다.
여러분은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서 본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입양절차를 진행할 때 최종 판단을 가정법원에서 하게 되는데요 이때 법정에 서보았습니다. 저희야 좋은 일로 법정에 섰지만 대부분 재판을 받는 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재판의 목적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재판은 이미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불공정한 재판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재판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확고한 진리위에 서 있는가를 드러낼 것입니다.
반면 세상 권력은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간교한 계략을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재판을 중심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바울을 고발한 세상권력의 모습입니다. 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 바울의 변호입니다. 10-21절입니다.
세 번째, 총독 벨릭스의 반응입니다. 22-23절입니다.
1. 산헤드린의 고소
“닷새 후”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호송되어 가이사랴 헤롯 궁에 온지 닷새 뒤라는 것입니다. 저자 누가는 본 재판의 시간적 배경을 정확하게 서술합니다. 이것은 후에 있을 바울의 변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날짜를 정확히 계산하고 변론하거든요. 그 부분은 조금 후에 살펴볼 것입니다. 과연 이 5일 동안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요?
먼저, 바울을 죽이기로 결맹한 40명의 유대인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한 것을 알고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 이들은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할 내용과 이후 진행될 재판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변호사로 세우고 어떤 전략으로 바울을 무너뜨릴까를 고심했을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무엇을 했을까요? 헤롯 궁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세운 전략은 이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당대의 탁월한 변호사를 섭외했습니다. 그가 더둘로입니다.
사도행전 24:1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여기서 변호사로 번역된 ‘레토르’는 연사, 웅변가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통해 설득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정치인들 가운데도 말을 참 잘하시는 분들 계시죠. 최근 여당 대선후보가 되신 분도 보면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해지신 분 아닙니까?
예나 지금이나 재판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누가 변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죄를 짓고도 최고의 로펌회사의 탁월한 변호인단을 꾸려 무죄판결 받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변호 받지 못해 유죄 판결을 받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하여 당대 최고의 변호사 더둘로는 선임합니다.
그의 첫 발언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언변에 능숙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3–4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어떻습니까? 이미 첫 발언에서 부터 총독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총독 벨릭스에 대하여 잠시 말씀드리면, 그는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의 11대 총독입니다. 로마 황실 노예 출신으로 총독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세 명의 아내를 두었는데요,
당시 아내의 이름이 24절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24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드루실라가 누구인가 하면, 헤롯 대왕의 손녀입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의 막내딸이고, 헤롯 아그립바2세의 누이입니다. 드루실라에게 있어서 벨릭스 총독은 두 번째 남편입니다. 첫 번째 남편은 16세 때 결혼한 시리아의 작은 분봉국 아지스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년 만에 그녀의 미모에 반한 벨릭스 총독의 꾐에 빠져 결국 유대교 율법을 무시한 채 남편 아지스와 이혼하고 벨렉스의 세 번째 아내가 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는 돈과 색욕을 즐기며, 탐욕스럽고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더둘로의 표현을 보십시오. 그를 칭송하지요. 사용하는 단어도 유려합니다.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 나 크게 감사하나이다”를 원어로 발음하면 “판테 테 카이 판타초우 메타 판세스 유카리티아스”이거든요. 운율과 라임을 맞춘 탁월한 어법을 사용합니다.
더둘로는 언변에만 탁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전략 또한 탁월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바울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근거가 필요했는데요, 정치적인 죄목과 종교적인 죄목입니다.
먼저 더둘로는 사형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로마에 반역을 도모했다는 국가반란죄를 뒤집어씌웁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 합니다. 왜냐하면 반란죄에 대한 증거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종교적인 죄목을 더하게 되면 판세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 파견된 총독은 유대인들의 협조와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이들의 지지가 없이는 총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세우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로마의 황제의 신뢰를 얻기도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종교적인 죄목, 즉 신성모독이나 성전모독죄를 걸어 사형선고로 갈 수 있게 되면, 유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총독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결국 황제의 신임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 산헤드린 공회원들이었습니다.
5절이 정치적인 죄목입니다.
사도행전 24:5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흩어진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한다는 것은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 다니면서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의 반역을 도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정확하게 로마에 반역을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지요. 그래서 그 증거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더둘로는 이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나사렛 이단인가? 여기에는 상당히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나사렛 이단이라고 했을 때 벨릭스는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5대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집행한 이 사건을 모를 리 없습니다. 당시 예수는 로마에 반역을 주도한 혐의로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정치적인 죄목인 국가반란죄와 종교적인 죄목인 신성모독죄의 혐의를 걸어 죽였던 것입니다.
그때 십자가형으로 죽었던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가 바로 바울이기 때문에, 예수와 범했던 똑 같은 범죄사실이 있고, 따라서 예수와 같이 사형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6절은 종교적인 죄목입니다.
사도행전 24:6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성전모독죄입니다.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모독하려는 목적으로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더둘로의 고소가 끝나자 유대인들도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이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돈을 받고 거짓증언에 동원된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이미 재판 전에 산헤드린 공회는 벨릭스 총독에게 뇌물을 주었을 것이고요. 이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4절입니다.
사도행전 24:4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대강 여쭐 수 있는 재판이 아닙니다. 상세하고 세밀한 증거가 필요한 재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고소하고 있거든요. 이미 모종의 거래가 오갔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몰고갈때도 돈으로 가롯유댜를 매수하지 않았습니까? 돈을 주고 거짓 증언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본 재판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다 벨릭스가 어떤 인물입니까? 돈을 좋아하거든요.
그는 바울이 무죄임을 알고 있음에도 석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사도행전 24:26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런 사람이기에 이 재판에서 바울이 승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법정 싸움은 힘과 재력을 가진 다수의 세상 권력과 한명의 바울과의 싸움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 바울의 변론
총독은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고 합니다. 바울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있지요. 바울의 첫 발언은, 더둘로와는 전혀 다릅니다. 총독에 대한 장황한 칭송이 없이 사실만을 말하고 바로 본론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 24:10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바울 변호의 특징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확한 정황과 증거를 끌어옵니다.
먼저 바울은 정치적 죄목인 반란죄에 대해 변론합니다.
사도행전 24:11–13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자신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온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를 물질로 돕고자 온 것이지 명절을 기점으로 반역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 증거가 바로 날수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 후로 열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7일은 유대인의 결례를 행하기 위해 주로 성전에 있었고, 나머지 5일은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헤롯 궁에 있었지요. 그런데 이 짧은 기간 안에 어떻게 반역을 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발자들은 반역을 도모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종교적인 죄목인 신성모독죄에 대한 변론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자신도 섬기며 저들이 믿는 성경을 자신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14–16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그렇지요. 바울은 한 번도 유대 신앙을 적대시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안타까움과 긍휼함으로 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유대 신앙에 헌신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신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전에 있었던 것은 유대인의 결례를 행하려는 것이었고, 이방인을 데리고 왔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려 죽이려 했던 자들은 과연 그것을 직접 보았는지 그 증거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있다면 이곳에 증거를 가지고 와야 하는데, 고발한 자들이 증인으로 오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19–20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3. 담대함의 이유
여러분 어떻습니까?
바울은 여전히 총독 앞에서도 담대하게 자신을 변호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청문회 장면을 다룰 때 담대함의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뢰이고 두 번째는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피면서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진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진실도 있습니다. 진실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거짓입니다. 그러한 진실은 곧 무너집니다.
바울이 한 때 스승으로 모셨던 가말리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면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왔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5:38–39
38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들이 주장하는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이전에 있었던 드다 사건을 예로 듭니다. 자칭 메시야라고 하며 유대인 400명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켰던 드다가 죽자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갈릴리의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한 유다라는 사람도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다 흩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한 진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 메시아야 아니기 때문에 결국 무너졌으니, 사도들의 주장과 소행도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답습니다.
본 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로 대표된 세상권력을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권력과 재력을 이용하고, 세상 지혜로 무장한 탁월한 자들을 세워 기독교 진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의 진리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근거한 진실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사실을 말했고 더둘로는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여 말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논리와 언변술로 포장했지만 사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진리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신앙은 믿지 못할 것을 억지로 믿는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기독교신앙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실제로 그 일이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당시 종교권력은 신성모독이라고 여겼고 이 때문에 십자가형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부활했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사도들을 부활의 주님을 실제로 만났고 함께 있었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증인입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바울도 만났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나사렛 이단을 박해하는 삶에서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는데 만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혹독한 고문과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고 해도 이 믿음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기독교 신앙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총독은 바울에게 무죄선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죄판결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변론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판결을 미루는 방식을 택합니다.
사도행전 24:22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바울을 풀어주지는 않고 헤롯 궁에 머물게 합니다.
사도행전 24:23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이렇게 해서 바울은 헤롯 궁에서 2년을 머물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진리위에 서 있습니다. 그 진리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담대케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기독교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온갖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무너뜨리려 했고, 실증주의는 동정녀 탄생, 예수의 부활과 같은 신비적 사건을 조롱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철학사상들은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무시하고 다양한 비평방식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해체했습니다.
세상은 힘과 지혜로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건재한 것은 기독교는 사실을 근거한 진리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믿음이 있었기에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묵묵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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