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46. 안디옥교회의 설립과 부흥
사도행전 11:19–30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오늘 본문은 안디옥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이방 땅까지 전해지면서 이방인교회가 세워지는데 그 첫 번째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최소의 이방인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처음 불리기 시작한 곳입니다. 세 번째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입니다. 이렇듯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첫 번째 안디옥교회의 설립은 세밀하신 주님의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21절의 보시면,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표현입니다. 주님의 손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손길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가를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스데반의 순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창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할 때에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지 않습니까?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땅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땅으로도 가게 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19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11:19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안디옥은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과 비시디안에 있는 안디옥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수리아 안디옥을 말합니다. 이곳은 지중에 연안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여러 문물과 인종들이 왕래했던 관계로 고대부터 상업이 발전하고 타문화권에 대한 개방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BC 65년경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는 이곳을 제국 내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확장 발전시켰습니다. 두 번째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박해를 피해 안디옥까지 올라간 성도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었습니다.
19절 후반부에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초기의 성도들을 대부분 유대교에서 개종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언어입니다. 아무리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어도 그 나라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보통 4년 정도는 언어만 공부합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진행합니다. 외국에 나가계신 목사님들 보면 언어가 되시는 분은 사역의 스케일이 보다 넓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안 되면 한국인들 사역만 하시거든요.
이렇듯 예루살렘에 온 성도들은 이렇듯 사역의 한계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을 안디옥을 보내십니다.
왜 이들을 보내셨을까? 헬라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절묘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의 세 번째 큰 섬으로 현재의 키프러스(사이프러스)입니다. 또 구레네가 등장하는데, 이곳이 어디인가 하면,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중요 도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힘들어하자 로마병정이 억지로 십자를 지게 했던 사람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거든요. 이들은 다 헬라 문화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에서 헬라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요.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성도들은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적절하게 모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21절에 보시면
사도행전 11:21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렇듯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세밀한 손길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두 번째, 안디옥교회의 부흥에서 바나바라는 신실한 목회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1:24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안디옥에 성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알려졌습니다. 이에 바나바를 담임목사로 파송합니다.
왜 바나바일까요?
사도들은 안디옥교회에 담임목사로 누구를 보낼까 의논했을 것입니다. 먼저는 헬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했습니다. 바나바가 어디출신입니까? 그는 구브로 사람입니다. 헬라문화권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하여 받은 느낌과 행한 사역을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사도행전 11:23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교회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어떠한 은혜였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누린 은혜와 같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44–47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바나바는 그들을 말씀으로 세우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가 전한 말씀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사도행전 11:23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안디옥 교회는 이미 복음을 받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신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수많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 속에서 신앙을 버리는 분도 많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퀴리오스, 즉 주님으로 고백하며 주님만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안디옥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를 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불복한 학교들은 폐쇄해 버렸고 목사님들을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옥에 갇혔습니다.
이러한 외부적인 핍박 속에서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바나바는 로마의 문화권에 살고 있던 안디옥 성도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되는 것은 쉬어도, 부부사이를 지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아이를 낳는 것은 쉬워도 양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그것을 꾸준히 지켜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굳건한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애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바나바는 그 의미가 ‘권면의 아들’ ‘위로의 아들’입니다. 본명은 요셉이죠. 그런데 사도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나바입니다. 그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목사님들 중에도 보면, 어떤 분들은 가르치고, 지시하고, 잘못하면 책망하고 하는 분들이 있고 어떤 분들은 이해하고 공감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따듯한 위로와 권면으로 성도를 세우는 분들도 있거든요. 바나바는 이런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따듯하게 다가갔습니다. ‘외부의 수많은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 머무르십시오.’ 권면한 것입니다. 권면의 아들답게 권면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역이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1:24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목사로서 바나바의 이러한 평가는 부럽습니다. 저도 이러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착하다는 원어는 ‘아가포스’인데, 영어로 굿입니다. 제가 아는 스코틀랜드 선교사님은 대화중에 자주 God is good. 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좋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라는 표현이죠. 바나바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교회는 부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고”
안디옥교회는 계속해서 부흥했습니다.
세 번째, 안디옥교회의 부흥의 원인을 바나바와 사울의 동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부흥하면 목사가 첫 번째 고민하는 것이 무엇일줄 아십니까? 예를 들어 저희 교회 성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면 제가 무엇을 가장 먼저 고민하겠습니까?
예! 동역자를 세우는 것이죠.
바나바는 자신의 역량으로 안디옥교회를 섬기는 것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에 동역자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이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을 만나길 원했을 때, 그들은 다 두려워하여 꺼려했습니다. 이때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간 사람이 바로 바나바거든요. 사도들은 사울을 믿지 않았지만 워낙 바나바가 신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바나바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에 소속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조심스럽게 유대사회에 접근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울이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의 목숨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가 위기에 몰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그를 다소로 보냅니다. 사울은 복음에 열정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사역자로서 다듬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9:28–30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다소는 사울의 고향입니다. 그가 다소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생업을 위해 천막 제조 일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기억해 냅니다. 그를 동역자로 세우길 원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바나바는 충분히 예루살렘 교회에 동역자를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죠.
왜일까?
여러분! 사울이 예루살렘 형제들에 의해 다소로 가게 된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은 복음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행보는 교회 전체에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다소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돌아가는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사울이 조금만 다듬어 지면 더욱 성숙한 복음 전도자가 될 것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그를 사역자로 세우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사울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에는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바나바가 사울을 세우고 함께 동역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바나바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바울이 하나님 나라 사역의 주역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는 위대한 목회자이며 선교사이며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갑니다. 안디옥에서 다소까지는 230km입니다. 찾는다는 표현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아는 것은 그는 텐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시장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만일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참 감동적이겠다 생각됩니다.
위대한 사도 사울이 다소의 어느 시장에서 텐트를 팔고 있습니다, 저만치서 그것을 지켜보는 바나바, 바나바가 사울에게 다가가 서로를 끌어 앉습니다. 밤이 새도록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나누었을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부흥이야기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나바가 말합니다.
‘나와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깁시다.’
사도행전 11:26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와 사울의 아름다운 동역은 1년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붙여준 이름일까요? 안디옥 주민들입니다. 여기에는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행전 26:28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베드로전서 4:16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마치 오늘날 예수쟁이라는 말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비춰질 때, 그 정체성이 분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였고 삶의 방식도 달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비웃음과 조롱꺼리였습니다.
그만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네 번째, 안디옥교회의 부흥의 이유는 이웃 교회의 어려움을 함께 감당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9–30
29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안디옥교회가 헌금하여 보낸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27절에,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이들이 누구일까? 선지자들이라 지역교회에 소속되어 있거나 또는 순회 사역을 하면서, 권면과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던 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역할은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사라졌습니다.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큰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을 했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글라우디오 황제 통치동안에는 제국 전반의 기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잦은 기근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가 주후 46년경에 유대에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유대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부조를 보낸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로 갑니다. 여기 보면, 장로들에게 보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이 집사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성경은 일곱 사람이라고 언급합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정을 담당했습니다.
아마도 이후 장로로 불려지게 됩니다.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안디옥교회는 물질을 모아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지역에 본격적인 기근이 있게 되었을 때 물질을 보낸 것입니다.
이렇듯 안디옥교회는 이웃교회의 어려움을 돌아볼 줄 아는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러한 교회를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주님의 손길이 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에 주님의 손길이 임하게 하옵소서 기도합시다.
두 번째 기도는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제가 바나바와 같은 목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기쁜우리교회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나바와 같은 목회자를 청빈하여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바나바처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사울처럼 복음에 열정이 있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 우리 교회가 이웃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입니다.
잘 준비되게 하시고, 풍성한 물질로 채워 주셔서 어려운 교회, 이웃들을 섬기는 건강한 교회 되게 하옵소서입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은 이 네 가지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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