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9-23 13:26

31.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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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31.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

 

사도행전 7:54–60 (NKRV)

54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 다음으로 아름다운 죽음은 스데반의 죽음일 것입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증거하다 죽은 최소의 순교자입니다. 물론 이전에 세례요한도 죽음을 당했지만 온전한 복음을 증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온전히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죽음의 장면을 대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고 죽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장례식 때마다 설교한 것이라 이미 익숙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새로운 기름부음을 허락하셔서 이 말씀 가운데 은혜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이 어떠해야 겠는가? 라고 물어보면 저는 스데반을 소개할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을 온전히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베드로나 요한처럼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사도가 아니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성도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스데반 삶을 통해 깨닫게 되는 첫 번째 내용은,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복음을 증거 하다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훈련받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바를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연예기획사인 JYP의 대표 박진영씨가 얼마 전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무엇을 위해 살죠?”입니다. 서점에 가니 에세이 부분에서 베스트셀러 6위입니다. 책의 내용의 전반부는 자신이 어떻게 연예계에 입문하고 또 현재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그가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삶의 의미를 찾게 된 내용입니다.

그는 돈도 벌어볼 만큼 벌어보았고, 놀만큼 놀아보기도 하고, 명예와 지위도 얻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해보았지만, 늘 삶에 해결되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만족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방황하던 중 성경을 읽고 복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 책을 쓴 목적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은 이 책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앞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버켓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며 죽은 후에는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버켓리스트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 대한 비판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진보적 기독언론은 그가 성경을 문자 그대도 믿는 문자주의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또 보수적 계통에서는 회개에 대한 부분이 약하다. 구원에 있어 행함에 대한 강조가 약하다 등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박진영씨의 복음을 향한 열정과 그 담대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는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닙니다. 그런 비판은 신학자나 목회자에게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도로서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마침내 믿어져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책을 발간한 것입니다.

복음을 담고 있는 그의 책이 일반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코로나로 인하여 전도의 문이 막힌 이 시대에 하나님의 그의 책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그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죽음의 순간까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며 복음을 증거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의 모습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4:13 

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 성도는 죽음의 순간 예수님께서 맞아주십니다. 

55절을 보시면,  

55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 장면을 보자, 그곳에 있는 공회원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56절,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보통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것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우주 만물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16:19>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누가복음 22:69>

69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골로새서 3:1>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히브리서 1:3> 

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런데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서신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제 곧 죽게 될 스데반을 영접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군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을 영접할 때 일어서서 맞이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그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신 것은 전쟁 같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올라오는 성도들을 개선장군처럼 맞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군대 간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와 집에 올 때, 앉아서 맞이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보고 싶었던 내 새끼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생활할 때 한국에 잠시 들어올 때가 있었습니다. 오는 길이 설레고 흥분되었던 것은 공항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 때문입니다. 짐 가방을 찾고 입국 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 길이 그토록 설렜습니다. 문이 열리면 여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늘 쑥스러운 모습으로 기쁨을 숨기셨고, 어머니는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공항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우울하고 무거웠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영접해 준다는 것처럼 마음 설레고 흥분되는 일도 없습니다. 

온 종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린 아버지는 퇴근하여 사랑하는 가족이 반겨줄 때 모든 시름을 잊어버립니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불 꺼지고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올 때 초라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 반가이 영접하시는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집나간 패역한 탕자도 기쁨으로 달려가 끌어안으시지 않았습니까?

비록 이 땅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을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반겨 주십니다. 

그러니 성도의 죽음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2. 성도의 죽음이 복된 이유는 우리의 영혼을 받으실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59절입니다.  

사도행전 7:59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죽음의 순간 우리의 영혼을 맞길 분이 계시다는 것처럼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받으시는 분이 있다는 것처럼 평안함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만일 없다면 어떨까요? 

두렵고 무서울 것입니다. 그 공포는 짐작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의 순간 불신자의 영혼은 마귀가 끌고 갑니다. 어디로 갑니까?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기에 불신자들은 죽음 앞에서 지옥의 울음을 우는 것입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제사건 때 제가 사역했던 교회의 고등부 학생이 죽었습니다. 인천의 한 화장터에 그 꽃다운 아이들의 운구가 화구에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그 곳에서 들었던 울음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죽음은 그렇게 괴로운 것입니다. 

   

2003년 2월 18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구에 사는 김창재집사는 자신이 출석하는 서부교회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릅니다. 잠시 후 50대의 한 남성이 신나통을 들고 들어와 라이터에 불을 붙입니다. 지하철 문은 닫히고 불은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 사람들은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것으로 창문을 깨보려 하지만 깨지지 않았습니다. 연기에 휩싸인 채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냅니다. 

 

“엄마, 문이 열리지 않아요. 아빠, 너무 무서워요.”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죽어갈 때, 김창재집사도 아내 석태순집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나 지금 하늘나라 간다. 나 하늘나라 간다. 할렐루야 아멘”

 

이후 사체확인을 위해 황급히 달려나온 서부교회 남태섭목사님과 유가족들은 성경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아주 평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김집사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죽어갈 때, 그를 평안함으로 인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받으시는 분이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과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를 평안함으로 인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받으시는 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몸에서는 피가 튀고 그의 의식은 흐려지고 있었지만, 그 영혼은 명료하게 주님 품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은 이것일 것입니다. 

“주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마지막 순간,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겼을 지라도, 마지막 순간 이 고백을 할 수 없다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저는 기쁜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마지막 순간, 이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계신 우리 어르신들, 마지막 순간 이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코끝에 호흡이 다하는 순간, 이 고백하시고 주님 품에 안기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로,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60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합니다.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1:11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린도전서 15:6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사도행전 13:36 (NKRV)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성경에서 성도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도의 죽음은 영생으로 가는 잠시 동안의 잠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제 잠을 자고 일어나셨을 것입니다. 잠은 우리에게 안식입니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고 또 잠을 잡니다. 매일이 그렇게 반복됩니다. 

죽음이 잠과 같다면 우리는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잠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매일 하는 그것을 죽음의 순간에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루 밤에 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간밤에 악몽을 꾸었을지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2002년 9월 아내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선교훈련을 받으러 뉴질랜드로 향합니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울다 지쳐 잠이 듭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교통사고 후 늘 삐걱 거렸던 가정의 모습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부모님에 대한 걱정, 직장에서 있었던 억울한 일들과 분노들, 자신의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 인생의 길들 속에서 선교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도피하듯 떠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울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구름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됩니다.

비행기에서 해 뜨는 것을 보신 분들은 그 모습이 얼마나 장엄한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 모습에 압도된 순간 이전의 모든 슬픔을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한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한 것입니다. 

때마침 승무원이 가져다준 밀크티를 마시며 그 안락함과 따듯함 속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그 마음을 채우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내는 밀크티를 좋아합니다. 그때 느꼈던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추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떠한 슬픔과 아픔의 삶을 살았을지라도, 

마지막 순간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그때는 모든 것이 새로워 질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의 잠은, 우리를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꿈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눈을 떴을 때 온전한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도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염치없는 모습도 잊어버릴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지었던 부끄러운 죄의 기억도 남겨진 죄책감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온전한 주님의 평강과 안식이 눈을 뜬 그날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남겨진 삶의 시간이 얼마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죽는 것도 아니고, 또 젊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가 스데반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이름을 부르실 때,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간구하며 잠자듯 눈을 감을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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