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5-13 16:24

13.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joywoori
댓글 0

사도행전 강해 13.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도행전 3:11-15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강해 13번째 시간으로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일으킨 기적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걸인을 일어서게 하였고, 그는 성전에 들어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후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9시 기도시작, 즉 오후3시 기도시간은 희생제사와 함께 드려지는 기도시간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미문에 앉아 늘 구걸하던 사람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전을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11절에 보면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을 알데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삽시간에 성전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성경은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왔다”고 말합니다. 성전에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려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솔로모의 행각 앞에 모였습니다.

솔로몬이 행각은 당시 집회의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은 삽시간에 그곳에 모였고 자리를 잡아 앉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새 넒은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찼습니다. 웅성거리던 소리도 잠잠해 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기억합니다. 120명의 성도들에게 방언의 기적이 임했고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오순절에는 예루살렘 도시에서 설교가 선포되었다면, 지금은 성전 안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인 셈입니다.

두 번째 설교도 첫 번째 설교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주제나 내용면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설교의 톤이나 텐션은 상당히 강하고 높습니다. 첫 번째 설교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의 설교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베드로는 이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라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합니다.  따라서 너희는 그 분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사도행전 3:12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 기적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예수가 누구인가? 얼마 전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최근에 있었던 십자가 처형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도 두명과 함께 신성모독과 반역죄로 몰려 죽은 청년 예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다”   
재판과정 가운데 빌라도가 무죄를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그를 죽이기로 결의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잔혹하게 죽인 그 예수, 그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신 그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15절에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너희가 죽인 그 예수가 바로 생명의 주라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빈무덤을 목격한 여인들이 제자들을 긴박하게 찾았고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았습니다. 이후 자신들의 뒤에 서 있던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후 40일 동안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것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었고 베드로와 요한은 증인인 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 그 권세로 말미암아 여기 서 있는 앉은뱅이가 일으킴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다’라는 것이 베드로의 설교의 중심내용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설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과 교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교회입니다.
전도, 선교, 양육, 구제 등 모든 교회의 사역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분을 주목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사역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때때로 교회에서 진행되는 사역들 가운데 이것에서 벗어난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을 주목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경우입니다.


특정 목사님을 지나치게 주목하고 의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해가 됩니다. 그분들로부터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 목사님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보다 목사님을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도 의지할 대상도 아닙니다.

특정 목사님의 가르침과 설교만을 주목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의 가르침 속에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죠. 이해가 됩니다. 그 가르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었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건강한 신앙은 아닙니다.   

어떤 탁월한 설교자일지라도, 그가 신비한 예언과 신유의 능력을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사람을 주목하거나 의지하거나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 의존적 신앙은 건강한 것이지만, 사람에 대한 의존적 신앙은 병든 것입니다. 그런 분들 만나면 참 안타깝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지만 사람은 결국 실망시킵니다. 주님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지만 사람은 결국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곁에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들이 계실지라도, 결국 그 생명이 코끝에 호흡에 있음을 호흡이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우리 인생도 결국 마르고 시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축원합니다.

 

두 번째,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생명의 역사는 믿음을 동반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 대부분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9:2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9:22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맹인을 고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9:29
29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 여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5:28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 반드시 믿음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가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라는 믿음입니다.
자기 확신이나 자기 신념과는 다릅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는 참된 믿음을 확실한 지식과 굳은 신뢰라고 설명합니다. 확실한 지식은 진리이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입니다. 이것을 굳건하게 신뢰할 때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열성적으로 어떠한 것을 신뢰하더라고 그 근거가 진리가 아니면 그가 가진 굳건한 신뢰는 위험한 열정일 뿐입니다. 이단이 이 경우입니다. 또한 확실한 지식인 성경을 아무리 많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굳건하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면 이 또한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에서 귀신조차도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된 믿음은 바른 지식과 그것을 굳건하게 신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바로 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통해 주님의 권능이 앉은뱅이 걸인에게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 사건 가운데 앉은뱅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수동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할 때, 앉은뱅이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누구의 믿음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으로 믿음이 없던 자에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좀 전에 언급 드린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 매고와 지붕을 뚫고 내린 사건 속에서, 중풍병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친구들이 하는 일에 지극히 수동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9:2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귀신들린 딸을 고친 가나안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5:28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상당한 도전을 줍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을 통해 믿음이 없는 자에게 생명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굳건하게 신뢰할 때, 그 믿음으로 통해 우리 주변에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주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참된 믿음 가운데 거하시면 믿음이 없는 우리 부모님에게 또는 자녀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사용하여 저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확고한 믿음 가운데 서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이 있다면 지금도 세상 속에 주저 앉아있는 앉은뱅이와 같은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낙심한 자들, 절망한 자들,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사역은 우리의 힘과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로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을 도구로 드림에 있어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수단으로 하여 절망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3:19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저의 경우 부모님께서 믿음이 있으셔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이 부모님의 믿음의 영향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또는 누군가 믿음이 있는 분들의 전도를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그분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항상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선교사나 목사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복음이 없는 곳에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해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 결과 사람이 새롭게 됩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와 새롭게 됩니다.

에베소서 4:22–24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고, 죄악을 즐기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롭게 하십니다. 이 일에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놀라운 믿음의 사역자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회개에 이르렀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성실하게 역사하셨고 우리의 부모님들을 통해, 또는 우리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그분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우리가 주님 앞에 믿음의 도구들로 쓰임 받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생명을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믿음의 없는 가족들, 남편, 아내, 부모님, 자녀, 손주들에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으로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시고 그 이름의 권세로 복음을 증거하시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시는 능력의 사역사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20 20.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5:1-11 2020.06.28
19 19.나눔의 공동체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4:32-37 2020.06.21
18 18. 대주재께 기도하는 공동체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4:23-31 2020.06.14
17 17.기독교 신앙의 담대함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4:13-22 2020.06.07
16 16.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느니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4:8-12 2020.05.31
15 15.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4:1-12 2020.05.24
14 14.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3:20-26 2020.05.17
» 13.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3:11-26 2020.05.10
12 12.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3:1-10 2020.05.03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