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11. 초대교회의 네 가지 모습
사도행전 2:42–47
42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 우리 시대 소홀히 여겼던 복음의 내용 중에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악한 세대에서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에 대한 바른 선포를 받도 당시 청중들은 ‘우리가 어찌할꼬!’ 탄식하며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삼천 명이었다고 하니까 그 장면을 그려보아도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처음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구성된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초대교회는 가르침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42절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가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당시 가르치는 자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는 권위를 가진 자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자격과 실력입니다. 두 가지가 겸비되지 않으면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시 가르칠 수 있는 자들은 사도였습니다. 이 권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여하신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1.가르치는 자(권위)
오늘날도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반드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자격이 무엇입니까? 공교회에서 인정한 자격입니다. 저의 교단의 경우 총신대 신학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후 1년의 강도사 과정과 목사 고시에 통과해야 목사로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다 목사로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을 통해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과정만 거친다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걸맞은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상한 데서 성경공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전하는 선교사님이 계신데 가서 배워보자 하면, 가면 안 됩니다. 거의 이단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침은 반드시 자격과 실력이 갖춘 목사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간혹 몸이 아픈데 병원 의사에게 가지 않고 주변에 민간요법 잘하는 사람 찾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빨도 치과에 가지 않고 불법으로 하는 곳에 가서 하는 분들 계십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랜 시간 공부를 하여 자격을 갖추고 많은 임상을 통해 실력을 쌓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규적인 신학과정을 거치고 오랜 시간 가르침의 훈련을 받은 목사에게서 배우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목사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2.가르침의 내용
교회의 가르침의 내용은 성경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교회의 모든 사역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선교, 봉사, 구제 등의 중요한 사명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 모든 사역이 성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선교하고 봉사하고 구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성경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배워야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곡된 성경지식은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최근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신천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삶에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입니다. 왜곡된 지식에 열정을 쏟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현명한 성도들은 자신들이 배우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비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진리위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17:11
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목사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인가를 상고하셔야 합니다. 상고했다는 것은 주의 깊게 검토하고 살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 때나 아멘 하시면 안됩니다. 그 말씀이 정말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 때 아멘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TV나 인터넷을 통해 내가 원하는 목사님의 설교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때도 베뢰아 성도들처럼 이 말씀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상고하셔야 합니다.
3.가르침의 목적
교회의 가르침의 목적은 단순히 성경의 지식을 늘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현실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운전을 배우는 목적은 운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영을 배우는 목적은 수영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움만 있고 순종함이 없으면 신앙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삶의 실천이 없는 배움은 비판적인 성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게 됩니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지만 조금씩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친절하고 인격적인 사람들로 변화가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신이 아는 성격지식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비판한다면 잘못 배우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나와 공동체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셔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주일설교 뿐만 아니라 수요일 설교 그리고 새벽설교를 통해 성경을 배우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아 가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초대교회는 교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교제는 원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교회의 코이노니아는 매우 중요합니다. 교제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질도 포함됩니다.
최근에 가나안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좋은데 사람과의 관계가 싫어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목사나 성도들에게 실망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공동체에는 속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대부분 신앙이 없는 분들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떠나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게 갈등을 피할 수는 있지만, 신앙생활을 기쁨과 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대부분의 은혜는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되는 것은, 교회는 거룩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두 허물과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친밀해지면 실망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실망은 그럴 수 있지 하면 넘겨야 합니다. 어떻게 목사가 저럴 수 있어! 어떻게 성도가 저럴 수 있어! 하고 실망하기 보다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경계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성도들에게 실망을 받고 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나 또한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단 이것을 인정하고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점, 좋은 점만 보고 교제해야 합니다. 몇 가지 실망스런 부분 때문에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상대방의 연약함이 있으면 감싸주고 허물은 덮어주고 하면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어제 그런 말 하더라구요.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심란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죠. 그런데 이게 병원에서 조용히 쉬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있으면 편하죠. 밥 세끼 다 해주고, 아이들에게 자극 받을 일이 없습니다. 보고 싶은 책 보고, 쉬고.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나니,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비록 심란한 순간도 많지만, 이게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영상으로 예배드리면 자극받을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제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큰 기쁨과 감동도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이 영상을 보시는 분 들 중에 성도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시고 공동체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 공동체도 완벽한 곳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하고 원하는 공동체를 찾느라 이곳저곳 헤매지 마십시오.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있고 성례를 정당하게 시행하고 있다면 등록하시고 정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면만 보고 다니십시오. 실망스런 부분이 있으면 그럴 수 있지 하면 넒은 마음으로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저희 집에 돌보미 이모님이 오시는데 그런 이야기 하세요. 할 수 있으면 엄마가 좀 힘들어도 모유수요 하라고, 모유수유가 힘들지 않습니까?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잡니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행복할 때라고. 아마 어머님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유수유는 엄마에게 있어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자신의 것을 다 주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몸의 영양소를 짜내어 주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유익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아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들 힘들어 하고 포기합니다. 그런데 그 힘든 과정이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여러분! 교회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기 보다는 내가 이곳에서 어떤 희생과 섬김과 헌신을 할까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까가 아니라, 내가 어떤 섬김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교제를 나누시면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풍성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이것이 부족해’가 아니라, 내가 이 부족한 부분에 있어 헌신해야 겠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교제의 원형은 성삼위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높이시고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성자 예수님을 높이십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섬기시고 서를 위해 희생하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삼위 하나님이 누리시는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희생하고 헌신할 때 그 공동체가 건강하고 기쁨과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외롭고 힘든 세상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동체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예배는 드리지만 교제를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속히 모여 교제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때까지 건강하길 바랍니다. 우리의 만남과 교제가운데 하나님은 큰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 초대교회는 떡을 떼었습니다. 이것은 성만찬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떡을 떼었다는 것은 넓게는 공동체 식사를 의미하고 좁게는 성만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교리공부를 통해 참된 교회의 표지에 대해서 배웠는데요,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면 바른 교회 참 교회입니다. 성례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예전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당시 성찬식은 공동체 식사와 더불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성전에 모일 때도 있지만 집에서 모일 때가 많았습니다. 집이 교회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성도들을 가정을 오픈하였고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모이게 되면 함께 식사를 하고 이어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식사는 교회의 공동체식사입니다. 단순히 한끼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인식하며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게 가서 천국잔치와 주님과의 교제를 소망하며 나누는 식사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 후에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단순히 밥을 먹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고백하며 천국의 잔치를 소망하며 나누는 식사입니다. 이 식사는 당연히 잔치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성찬을 거행한 것입니다.
그들이 주식으로 먹던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찢기신 몸이며 흘리신 피 입니다. 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눈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했던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수단중 하나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은혜를 주시고 또 성찬을 통해 은혜를 주십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은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죽임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지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생명을 죽여 먹고 마심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그것을 죽이는 방식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돼지와 소와 닭과 그 밖에 채소들이 죽었습니까?
만일 그것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영적차원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너희의 생명이 죽음위에 서 있는 것처럼, 너희가 얻은 영생도 예수의 죽음위에 서 있음을 실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57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함께 모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피와 살과 에너지가 되어 우리를 활동하게 하듯,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고 그 분의 생명이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 안에 역사하여 영생을 얻은 존재가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반드시 모여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렇게 함께 모이지 못하여 여러 방도들이 방안 되기도 했습니다. 일회용기로 각 가정에 배달되어 흩어져 하는 것에 대한 의논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신학자들은 연구와 논의를 통해 성찬은 모여서 하는 것이 맞는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못한지 3개월이 됩니다. 다시 모여 예배가 진행되면 성찬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그때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내가 먹고 마신 것인 내 몸을 타고 들어가는 것처럼,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는 함께 예배하는 것도 있지만 함께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개인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모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18:19–20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공동체가 모일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핏값을 주고 사신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입니까? 하나님의 보배롭고 값진 자녀들입니다. 그들이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도 기뻐하지만 자신에게 간구하는 그 간구에 응답하기를 또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함께 모여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요기도모임이 5월 7일부터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지혜로운 방식으로 기도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한 초대교회의 네 가지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건강하게 자리 잡기를 소망합니다.
가르침이 풍성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순종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나누어지는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시고 힘쓰시는 성도님들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