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5-05 07:29

12.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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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1–10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성령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권능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고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이 소개됩니다.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사건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깨닫길 원합니다. 

 

먼저, 1절에 보니까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장소와 시간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성전이고 시간은 제9시 우리시간으로 하면 오후3시입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오전9시 낮12시 그리고 오후3시에 성전을 찾아 정기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3시 희생제사와 함께 드리는 정례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공들여 지었습니다. 당시 성전을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였기에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를 수반한 희생제사 역시 신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제9시 기도시간에 맞추어 성전을 향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으로 들어오는 입구 중에 동쪽으로 난 문을 미문이라고 불렀습니다. the beautiful gate,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의 이 문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높이가23미터에 달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금과 은을 입힌 황동으로 만들어진 이중문이어서 웅장하고 장엄하기 그지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을 이용했던 것이죠. 본문의 사건은 바로 이 문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문 앞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구걸하기 위해 앉아 있었습니다. 

2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3:2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성경은 그가 그곳에 날마다 있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이 사람을 메어 그곳에 두면 온종일 구걸을 하다가 저녁이면 또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마침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을 지나는데 구걸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경은 이 순간 베드로와 요한의 반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이 걸인을 주목하여 봅니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어 그와 눈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우리를 보라”로 말합니다.  

 

걸인은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는 동전 몇 푼을 받을까 하는 기대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성경은 이 순간의 눈 맞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는 여러 만남들이 있고 다양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만남과 순간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를 주목하게 하시고 그에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게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9시 기도시간에 자주 미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곳에 앉아있던 걸인 또한 자주 만났고 또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다른 날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를 바라 볼 때 뭔가 자신을 이끄는 강한 힘에 이끌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걸인이 기대한 것은 동전 몇 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봅니다. 이 순간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는 순간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난생 처음 일어나 걸으라는 말을 들어본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습니다.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보기는 했으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기대해 보기도 했으나 불가능한 것임을 알기에 포기해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체를 한탄하며 구걸하여 살아가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일어나라니 그리고 걸으라니!” 그는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그 순간 베드로의 손이 그를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곳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춥니다. 도대체 베드로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이때 걸인에게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들어갑니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른 뼈와 같았던 그의 다리에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살이 붙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육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또 한걸음, 그리고 걷기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저 동전 몇 푼 기대했는데,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그는 이리저리 걸어보다가 이제는 좀 더 빠르게 걸어봅니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뛰기 시작합니다. 그가 걸을 수 있는 것이 확인되자 성전 미문을 열고 성전 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당시 성전에 불구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은 흠이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출입을 금했던 것입니다. 걸인은 자신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나면서부터 불구라는 것은 당시의 종교적 해석으로는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무언가 죄를 범한 것이고 그 대가를 자신이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났고 걸었으며 또 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강력하게 임한 것입니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성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장애, 즉 흠이 있어 죄가 있어 감히 들어갈 수 없었던 성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뻐 뛰며 찬송합니다.

 

사도행전 3:8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성경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들어간 것입니다. 이 기쁨의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은 또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뻤을까요? 

 

이 사건이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가 탄생한 이후 사도들이 행한 첫 번째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상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와 같이, 날 때부터 해결할 수 없는 죄인의 상태로 태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모든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죄를 범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만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도 죄인입니다. 그들은 죄가 드러났을 뿐이고 우리는 들키지 않았거나 내면에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것만 간음이 아니라 너희 마음속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살인한 것만 살인이 아니라 형제를 향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행동으로 드러난 것만을 죄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발행시킨 근본적인 마음의 생각도 죄로 여기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가운데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루에 세 번 악한 생각이나 말 또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아마도 걸어 다니는 천사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가 1주일이면 몇 번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까? 21번입니다. 1년이면 1095번입니다. 1000번이라고 칩시다. 그가 80년을 산다고 하면 8만 번입니다. 8만 번 죄를 지은 사람 이 천국 문 앞에 섰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천국에 들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야 라고 물으신다면 과연 할 말이 있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절망적인 상태였던 앉은뱅이 걸인처럼, 우리 또한 죄로 말미암아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적 상태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2.이러한 죄인의 상태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소망은 금세 사라질 금과 은 밖에는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이 결국은 돈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자신의 삶에 만족과 행복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만족과 행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결핍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결핍이 있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돈입니다. 

 

돈이 있으면 자신의 결핍이 채워질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돈 자체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돈으로 명예를 얻기도 하고 권력을 얻기도 하니 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돈을 아무리 많이 소유한다고 해도 인간의 근본적인 결핍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소유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소망하고 기대하는 삶의 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몇 평의 아파트에 어느 정도의 차를 타시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면 욕심내지 않고 사시겠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내가 원하고 소망하는 삶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해하던가요? 우리는 압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들도, 최고의 부유함을 누렸던 대기업회장들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 합니다. 

그들이 죽음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자리에 선들 근본적인 결핍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영상으로 이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 무언가 삶이 외롭고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끼시는 분계십니까? 여러분 가슴 한쪽이 늘 허전하고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탈함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래서 삶이 우울하기도 하여 지인들과 어울려 술로 달래보기도 하고 여행을 하며 생각들을 밀쳐 내보기도 하지만, 정작 혼자 있는 시간 밀려오는 그 허무함에 힘들어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배가 고프면 밥 먹을 시간이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삶에 결핍이 느껴질 때 주님을 만날 시간이 된 것입니다. 

 

3.그래서 세 번째 인생의 결핍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해결되고 채워집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해결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답을 가지고 출제됩니다. 결핍은 반드시 그것을 채울 무언가가 있음을 말합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목마름은 물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핍의 상황은 항상 그것을 채울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목마름이 콜라로는 해갈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 그리고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때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결핍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채워집니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문제 행동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희수에게는 손가락을 뜯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오래 있으면 불안할 때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의성이는 음식을 멈추지 않고 먹을 때가 있습니다. 많이 먹고 또 빨리 먹습니다. 식탐이 강합니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소위 애정결핍의 행동입니다. 

희수와 의성이의 이러한 행동이 최근 사라진 것은 1년 동안 어리이집을 보내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부터입니다. 결핍이 채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늘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살지 않으면 문제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나치게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다던가, 지나치게 아이들이게 집착합니다. 지나치게 정치적 이슈에 흥분하기도 하고, 로또에 꽂히기도 합니다.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일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결핍적 행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한 결과 나타난 문제행동입니다. 

 

문제는 이것에 대한 피해는 결국 자녀들이 받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부모가 영적으로 흔들리면 결국 자녀들이 직접적 영향을 받습니다.  

자녀들이 문제행동을 보일 때 자녀들을 탓하기 보다는 먼저,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자녀들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자녀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희생적 사랑과 헌신의 열정은 주님과의 만남속에서 채워야만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은과 금을 주면 저들의 삶이 행복해 질까요? 아니요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내가 먼저 그분의 사랑을 누리고 자녀들에게 줄 때 그들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회복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우리 가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발견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여러분 안에 역사하게 하십시오. 

이를 위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4.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은 기쁨의 예배를 시작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던져 주던 돈으로 생명을 구걸했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난 후, 그가 했던 첫 번째 행동은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감사를 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가 평생 바랐던 일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안에서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이 그에게 평생의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장애의 몸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신체는 회복되었고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성전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쁨의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그냥 찬송을 드린 것이 아니라 펄쩍펄쩍 뛰면서 찬송했습니다.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서게 합니다. 

이 예배는 성전에서의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예배로 나아가게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저희 부부는 결혼해서 18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임신확인을 받고 나서 돌아와는 차에서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이가 생긴 기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구원하여 주셨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변함없이 신실하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가슴으로 낳은 두 명의 아이들, 그리고 배 아파 않은 셋째,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방세칸짜리 집,

청년 두 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이렇게 좋은 예배당과 함께 교제하는 성도들,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풍성함. 

주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또 전할 수 있는 귀한 사명.

그리고 건강.

 

이 모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축복입니다. 

제 삶에 결핍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악 된 삶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

낙심하여 주저앉은 분들 계십니까?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와 외로운 속에 주저앉은 분들 계십니까?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분들 계십니까?

이 말씀 붙잡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이것만이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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