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21. 정결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심
사도행전 5:12-16
12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을 심판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오늘 그 장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하나님은 순결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후에 성도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만큼 두려운 것인가를 체험했습니다.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그들이 산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산 근처에서 정결한 상태로 머물러 있도록 합니다. 모세 홀로 시내산에 올라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언약을 맺습니다(출19:23).
이유는 죄인들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곧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죄인들은 어둠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는 죄인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설 때 “화로다 내가 죽게 되었구나” 라고 탄식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교회 안에 거짓을 멸하셨습니다. 교회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유는 바로 교회를 통해 역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함을 얻게 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의 조건은 정결함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를 정화시키는 작업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20–21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큰 그릇, 금 그릇, 나무 그릇 등 귀한 그릇도 있고 천한 그릇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깨끗함입니다. 아무리 금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더러워져 있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를 사용하시려고 할 때, 먼저 그릇을 청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교회를 먼저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의 건물이 크고 성도의 숫자가 많고 능력 있는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라고 할지라도 교회가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시아의 7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각 교회를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4–5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가 회개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긴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힘은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교회가 거룩하고 정결할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나 전국 교회로 확산된 한국 교회의 대표적 부흥운동입니다. 이 부흥운동은 1월 6일(주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양 시내 네 교회 연합집회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장소가 협소하여 여자 교인은 자기 교회에, 남녀 중학생과 소학생들은 자기 학교 강당에 모였고, 남자 교인들만 2천여 명이 장대현교회당에 모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 목사가 없어 부흥회는 선교사들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길선주 장로(당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음)는 한국 최초의 새벽기도회를 통해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아간'과 같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했고, 이를 계기로 수많은 교인들의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무르익은 집회는 1월 14일 월요일 저녁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블레어(W.N. Blair)의 설교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말씀으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가 끝나고 수백 명의 성도가 통성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큰 역사가 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대중 앞에서 구체적으로 자복하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반목과 질시하던 자들이 껴안고 화해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회개 역사는 새벽 2시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한 여자 선교사는 "입으로 고백하기 어려운 상상할 수 없는 무섭고 추한 죄악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지옥 지붕이 젖혀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술회했습니다. 또, 당시 런던타임즈는 "마치 밖으로부터 뭔가 물밀듯 밀려드는 강력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한 듯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부흥의 바람이 불어올 때 항상 교회를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함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된 확진자 한 사람도 있어도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검사를 받아야 하고 건물은 완전 소독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죄악이 있을 때 하나님은 먼저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할 도구를 정비하시는 것입니다.
신대원에 들어가 첫 수련회 때였습니다. 그때 지금은 대구OO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권OO목사님께서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신학 교수답지 않게 열정을 다해 기도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밤새 회개하며 기도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정결하게 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거짓과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려면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원하신다면 가정을 정결하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가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정결케 된 교회를 통하여 그분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십니다.
12절을 보면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어떤 표적과 기사인가?
15절을 보면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리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절에도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음을 얻으니라
이러한 일들이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정결하게 하신 후에 교회를 통하여 그분의 권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당시 사도들이 능력을 나타낸 것은 그들 개인의 권능과 능력이 아닙니다.
이미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친 후 자신에게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병자가 고침 받고 귀신이 떠나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주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무엇 때문에 성경은 병이 났고 귀신이 떠나는 것을 강조할까요? 예수님의 사역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사역에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자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병고침과 귀신의 떠나감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도들을 통하여 예루살렘 땅 가운데 임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질병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어떤 특별한 죄를 지어서 질병에 들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의 최초의 인간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임합니다. 질병은 죽음의 증상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크던 작던 질병의 위협과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사도들의 손길을 통해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부하시면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6:15–20
15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또 하나, 이러한 표적과 기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보다는 이것을 통하여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힘을 실어주는 목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보면서 사도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표적의 목적은 표적자체가 아닙니다. 표적은 영어로 사인입니다. 간판이라는 의미입니다. 간판이 세워진 목적은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보라고 할 때 손가락이 사인입니다. 중요한 것을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표적의 목적은 사도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을 믿게 하려고 표적과 기사를 동반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한 바 있습니다.
사도행전 4:29–31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들의 기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이것에 더하여 병 고침과 표적과 기사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표적과 기사는 결국 하나님 말씀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임을 믿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거의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간 기억은 볼거리 때문에 그리고 치과치료 때문에 간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유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몸이 아파 누워있으면 외할머니께서 오십니다. 열이나 끙끙 앓고 있는 제 곁에 앉으신 할머니는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이후 제 몸을 안찰하셨는데 그렇게 시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어린 저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라는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저를 그렇게 예뻐하시고 사랑해주셨던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울지 않던 저에게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슬프지 않냐고 하셨습니다. 당시 8살짜리였던 저는 “할아버지 천국에 가셔서 괜찮아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 저에게 천국이라던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병들어 있을 때 기도를 통하여 낳았던 체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내어 쫒습니다.
그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이 일을 진행하십니다. 불교에 철저했던 저희 가정에 복음이 들어오고 할아버지가 장로로 헌신하고 아버지께서 목사로 헌신하신 스토리 뒤에는 질병에서 고침받은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없었던들 우리 가정은 결코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폐암에 걸리셨던 아버지에게 왜 치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순결하게 목회하려고 애쓰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지 않으실지라도, 저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 모두 아버지와 동일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병고침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의 목적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표적과 기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고 다 하나님의 역사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24:24
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표적과 기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나를 사랑하다는 증거를 보여줘” 라고 요구한다고 해봅시다. 이것처럼 황당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꽃다발을 안겨주지 않아도, 아내를 위한 감동적인 이벤트가 없어도 건강한 관계는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신뢰와 믿음이 없을 때 증거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다면 증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고, 그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이고,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것인데, 더 이상의 증거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저의 기도를 통하여 낳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사도들이 행했던 신유와 축사의 능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이제 내 손에 쥐어진 성경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나에게 있었던 많은 질병들이 사라졌을 것을 믿습니다.
어쩌면 암이 생겼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저희 아내는 20대 때보다 더 건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여호와라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쥐어진 성경이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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