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9-08 11:02

29. 광야교회의 실패

joywoori
댓글 0

사도행전 강해 29. 광야교회의 실패

 

사도행전 7:37-43
37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의 설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 설교를 예루살렘 공회원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요셉 그리고 모세에 이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의 여정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7장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둘째,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말합니다.
이 구원을 위해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언약을 맺으시죠. 언약이란 하나님의 백성을 삼는 방식입니다. 두 인격 대상자가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묶는 것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결혼이나 입양과 같습니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던 두 인격대상자가 부부가 될 때 언약을 맺죠. 그 언약 조항이 무엇입니까? 당신을 나의 아내, 또는 남편으로 맞이하여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어떤 경우라도 부부로서의 정절과 신의를 지킬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약속하죠. 그리고 부부가 됨을 공공기관에 신고하여 법적으로 부부가 됩니다.
입양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법적으로 묶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삼기 위해 언약을 맺으십니다.


우리가 그 언약을 지킬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신 것입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됩니다.
또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입양 자녀가 됩니다.
가장 친밀한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가 됩니다.
모두 언약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두 가지를 약속하시죠. 무엇입니까?

땅과 자손입니다. 가나안땅을 주실 것과 너희 자녀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곧 너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약속입니다.

국가의 필수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국민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그분의 나라를 세우길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 가운데 찬양과 경배를 받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단지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열방과 백성과 족속을 구원하여 그 가운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인류역사 가운데 개입하셨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해 가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죄악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그 역사가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어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졌고,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을 때,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가나안땅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시 우상숭배로 극도로 타락한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하고 그곳에서 부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다. 구약 성경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우리 구원의 중보자로 세우신 이에게 복종하지 않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37–39
37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보자를 세우십니다. 중보자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죄인들에게 전달하고 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며 왜 중보자가 필요한가?

37절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18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셉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광경을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이러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신명기 18:15–18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불로 임재 하셨는데, 그 자체로도 죽음의 공포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나님 나로 하여금 다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해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엄청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간혹,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그러나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워 자신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달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 앞에 나가 중보하여 기도함으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이때 모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며 반면, 불순종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심판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38절과 3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7:38–39
38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던 중보자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중보자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복종하지 않았다” “거절했다”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거절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38절의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교회’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보자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고 거절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입니까? 불신자들입니까? 아닙니다. 광야교회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불순종하였고 거절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스데반이 왜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신명기 18장의 우리를 위하여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리떡 두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배불리 먹고 열두광주리가 남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로 먹이신 것을 재현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 되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중보자 예수를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공회원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역한 것은 바로 모세를 거역한 조상들과 같은 죄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광야교회가 중보자를 모세를 거역한 것처럼, 그리하여 하나님을 거역한 것처럼,
너희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라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중보자 예수를 거역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신앙인들 가운데 자신은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하나님께 나가는데 있어 예수만이 길이냐?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개인 것처럼, 예수뿐만 아니라 불교나 힌두교나 그 밖에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광야교회의 실패의 모습은 어떻게 드러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39절 뒷부분부터 보면,
“그 마음이 애굽으로 향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0절과 41절에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입니다. 그들의 인격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오히려 애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돈과 명예와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그 속에서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드리고 헌신도 하지만,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다면 그는 실패한 광야교회의 성도와 같습니다. 

 

그들은 또 우상을 만들어 섬기죠. 그들이 만든 우상은 이방신이 아닙니다.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자신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녹여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고 그 앞에서 열광적인 예배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입니다.” 라고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을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계속해서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그들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나 계신다는 것, 그분의 능력은 무한광대하시는 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들어 가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편안하게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하나님을 부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면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신을 만들어 섬깁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성도들 가운데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이 자신의 수호신입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신적존재를 만들어 그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신을 하나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예배와 헌신을 드린 것입니다.
결국 보면 그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섬기는 우상일 뿐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7:42
42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하나님이 외면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버려두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께서 심판하실 때 굳이 그분의 능력의 손을 사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혜로 붙잡고 있던 그 손을 놓아 버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인간 자신의 의도와 뜻대로 살게 될 터인데 그 결과는 비참함입니다.

광야교회가 하나님을 거절하자 하나님도 그들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리고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여러분! 광야교회는 40년간 광야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희생과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과 제물을 드린 일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40년 동안 드린 희생과 제물을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들이 만든 우상에게 바친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이며 제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받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충격적이 일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와 헌금과 헌신과 기도를 하나님이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수억 수천만 원을 하나님께 드렸을 지라도 하나님은 나는 받지 않았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하고 있고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섬겼다면 그 모든 희생은 헛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3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야교회의 실패를 교훈삼아야 합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십자가를 걸어놓아도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이 세상을 향해 있고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만든 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에게 결국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큰 헌신을 했다 하더라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는 예배는 그것이 대단한 열정으로 드려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아모스 5:21–24
21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먼저는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된 교회 참된 예배자로 나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

 

사도행전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92 92. 우리의 사명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8:11-31 2021.12.26
91 91. 신앙의 항해 3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8:1-10 2021.12.19
90 90. 신앙의 항해 2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7:21-44 2021.12.12
89 89. 신앙의 항해 1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7:1-20 2021.12.05
88 88. 기독교 신앙의 세가지 핵심교리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6:24-32 2021.11.28
87 87. 어둠에서 빛으로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6:1-23 2021.11.14
86 86. 바울을 죽이려는 이유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5:13-27 2021.11.07
85 85.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25:1-12 2021.10.31
84 84.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4:24-27 2021.10.24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