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9-15 15:16

30. 참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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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30. 참된 예배

 

사도행전 7:44–53 

44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일상의 평범함이 사라졌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재택근무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배당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이렇게 예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꼭 잃어버린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육현장에 계신 분들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재택근무가 늘어가면서 사무실에 함께 모여 근무하는 것에 대한 효율성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식당들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이 아닌 배달음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최근에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일까? 예배는 무엇일까?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는 왜 필요할까? 교회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팬데믹 상황 속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곳은 대형교회입니다. 

대형교회는 그동안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과 찬양팀과 성가대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들로 많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정지된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으로부터 2천명이 모이는 교회에 성도 300명이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헌금도 줄어들게 되었고 빚을 내고 교회를 건축한 교회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건축에 힘을 쏟았습니다. 성전건축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봉헌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헌금을 작정하여 드렸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려운 가정들도 빚을 내거나 집을 담보로 헌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곳저곳 크고 화려한 성전이 세워졌고 지금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질문을 던집니다. 

그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과연 본질이고 꼭 필요한 것인가?

 

스데반은 광야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을 숭배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자기가 스스로 만든 신을 개념화 하고 그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신, 자신들을 위하는 신을 만들어 그것이 자신들을 지키고 축복할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무지와 불순종은 광야에서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나안땅에 정착해서도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온갖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겼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전제사입니다.

그들은 성전제사를 통해 자신들이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모든 예법들, 예를 들어 소나 양을 죽여 제단 앞에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제단에 불살라 바치고,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자신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면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그의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저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처음 성전이 세워진 곳은 광야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생활 동안에 자신이 거할 장소를 세울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를 만날 것이고, 자신의 뜻을 계시할 것이며, 자신의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용서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처음 모세가 세운 것은 성막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이동식 성전 즉 성막이 세워졌습니다. 그것을 증거막이라고 했습니다. 증거막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44절-45절

사도행전 7:44–45 

44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이렇게 이동식 성막으로 있던 것이 건물로서 세워진 것은 가나안땅에 정착해서입니다.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할 것을 서원합니다. 

이를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 때에 건축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성전이 건축됩니다.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사도행전 7:46–47

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이후 성전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고 죄 사함을 받았고 그곳에서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올리고 축복을 기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건물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만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상처 입은 영혼이 위로를 받고, 죄로 인해 신음하는 영혼이 죄 사함의 은총을 받는 곳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찬양과 경배를 통해 하늘의 은혜가 임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러니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사모하여 절기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여 순례에 필요한 재정을 준비하였고 제물로 드릴 동물을 아껴 키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그 속에서 교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세워주는 일은 너무나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우상화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우상화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우상으로 축소시켜 형상안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가두게 되면 그 앞에서는 거룩하고 진실되지만 형상이 없는 곳에서는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면, 성전에 올라와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신하며 위로와 평강을 얻지만, 그 곳을 떠나면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을 강하게 지적한 선지자는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 7:1–7 

1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전에 예배하러 들어가는 자들에게 선포하라고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당시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곳이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어디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란 말입니까?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

 

예레미야 7:5-6

5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는 너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임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이며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 참 예배라고 주장하고 이것을 막는 정부의 정책이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계십니다. 그분들은 예레미야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곳에서 예배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대면 예배로 인하여 가장 고통을 당하는 분들이 누구입니까?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자영업하시는 분들, 소상공인들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드리는 예배 가운에 하나님은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니 성전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원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도 주후 70년경 로마의 침략에 의해 다 무너져 버립니다. 물론 이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더 이상 이 땅에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와 같은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모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데반은 뭐라고 말합니까?

사도행전 7:48–51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스데반은 성전을 주장하고 그곳에서의 예배만이 참 예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것입니다. 

성전과 세상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장소와 속된 장소를 구분 짖는 것입니다. 

자꾸만 삶과 예배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은 내 맘대로 살고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 

직장과 가정과 캠퍼스는 세상이고 성전은 거룩한 곳이라는 것,

목회자는 성직이고 성도는 그냥 평신도일 뿐이라는 것,

이러한 구분은 잘못된 것이며 우상숭배로 빠지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손으로 만든 건물 안에 묵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성전에만 가두고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헌금이나 헌신만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에 우리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물을 드리고 찬송을 드리는 예배의 형태로 드러날 수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그 속에서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물은 죽여서 바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너희가 살아있는 제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기 위하여 땀으로 샤워를 하며 지워지지 않는 마스크 자국을 달고 수고하는 현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여 가정에서 자녀들과 씨름하며 하루에고 몇 번씩 음식을 차리고 치우면서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워갈까 고민하는 그 현장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전입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오지 않는 손님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계에 있을 지라고 그곳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이 시간 작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또는 작은 휴대폰을 눈을 비비며 바라보며 예배하는 성도님들 가정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 즉 성전입니다. 

 

학생들이 주어진 학업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러한 예배자들이 주일에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헌금을 드리고 기도를 올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다가 주일이 되어 거룩한 성전에 모여 찬양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린다고 해도 그곳에 하나님은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안타깝게도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하지만, 여러분이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순간순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시고,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분들을 살펴보시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헌신과 섬김으로 그들을 돌아돌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물이며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것은 그만큼 참된 예배자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네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신을 벗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서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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