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38.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사도행전 9:19–31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입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원래는 뒤에 연결된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까지 해야 되는데 너무 길어서 앞에서 자른 것입니다.
4가지 모습입니다.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하고, 성령의 위로가 있었다.
교회로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처럼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하고 성령의 위로가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원인 또는 과정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본문을 통해 3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사울과 교회의 만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시면,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사울은 회심 이후 곧장 다메섹 교회에 소속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곧장 교회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구원은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을 형제와 자매로 부릅니다.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족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3:9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니라”
디모데전서 3:15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여기서 “집”은 “오이코스”라는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거듭남을 통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듭남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시죠. 거듭남은 영어로 Born again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가족의 일원이 되어 부모의 돌봄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거듭나게 되면 교회에 소속이 되어 돌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메섹 교회가 사울을 돌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9:24–25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다메섹 교회는 사울이 안전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도왔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하게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 9:28–30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여기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사울을 보호하고 돌보며 안전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울이 역동적으로 복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교회의 후원과 돌봄 때문입니다.
가족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교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백성이 되어 자신의 은사를 마음껏 펼치며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교회를 통해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때때로 세상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교회를 통해 치유와 위로받게 됩니다. 이를 통해 성도는 다시 금 담대함과 용기를 얻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갑니다.
교회가 바울이라는 사역자 한 사람을 돌보고 후원했을 때 교회 전체가 부흥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한 사람의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줍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 건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된 주의 종을 세우는 일은 교회 전체를 유익하게 합니다.
한편, 누구든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아무리 은사가 많고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교회에 소속되어 성도들과 함께 일할 때 훨씬 역동적으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울을 세웠고 바울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헌신된 사역자들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건물을 세우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통해 헌신된 주의 일꾼들을 세우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바울과 바나바의 만남에서 이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27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은 회심 후에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을 여전히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전정으로 회심했는지 또한 그가 전파하는 복음은 참된 복음인지 의심했습니다. 혹시 첩자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9:26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이러한 사울이 본격적으로 사역하기 위해서는 사도들로부터 검증받고 파송 받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사울과의 만남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중재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란 이름은 익숙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등장합니다. 그는 구브로 사람으로 자신의 밭을 팔아서 헌금한 사람입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지만 사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얼마큼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었는지를 이 이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울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바나바는 사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의 회심의 진정성과 그가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후 사울의 사역을 전격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아나니아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라면,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위로의 아들로서 주의 종을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잘 보시면 사울이라는 탁월한 선교사가 세워지기 까지 중요한 만남들이 소개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과의 만남, 아나니아와의 만남, 다메섹 성도들과의 만남, 바나바와의 만남, 그리고 사도들과의 만남. 이 모든 만남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31절의 부흥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택하신 사람을 통해서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소명을 받고 그 소명을 사명감을 다해 감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만남을 주선하십니다.
그 만남들을 통해 주의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만남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과연 이 만남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남인지 신중할 필요할 있습니다. 세상에는 바나바처럼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있고요, 또 아니나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사람을 사귈 때 영적으로 분별합니다. 이 만남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아닐지를 분별합니다. 아무나 만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나나는 어떻게 사울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사람을 첫눈에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은사라도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나바는 오랜 시간동안 사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얼마만큼 신실한 사람인지, 그의 회심은 진정성이 있는지 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라디아서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15–19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갈라디아서의 기록을 통해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곧장 아라비아로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메섹에서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얼마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까? 삼 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만나기까지는 최소 3년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 3년 동안 바울의 삶을 추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바울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신실한 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27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인지를 평가할 때는 최소 3년 정도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신학대학원 과정이 3년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장로로 임직하려면 등록한지 3년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영적이 평가는 최소 3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회심이 진정성이 있는지는 시간이라는 무대에서 입증됩니다.
어떤 사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려면 시간이 요구됩니다.
순간의 감정으로 평가하여서 실패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결혼도 그렇지 않습니까?
순간의 감정으로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려면 오래 보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3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검증하였고 사도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남은 중요합니다. 성경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를 만나는 것 중요합니다. 동시에 믿을 만한 성도 신뢰할 만한 성도를 만나는 것 중요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우리 곁에 남는 사람들은 열 손가락을 꼽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아름다운 만남들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세우는 성도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내가 바나바처럼 사람을 세우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세 번째, 복음 전파입니다.
31절의 교회 부흥의 역사는 복음의 전파로 인한 결과입니다.
사울이 건강이 회복된 후 즉시 한 일이 무엇입니까? 20절에 보니까
사도행전 9:20
20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9:22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도행전 9:29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회심 후 사울은 시급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변론했다고 말합니다. 변론했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충만하기 위해서는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역은 복음에 집중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교회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 31절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즉,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복음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가정에서 들려져야 합니다. 예수가 우리 가정의 주인이심이 선포되어 지고 주님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이 주를 경외하게 되고 성령의 위로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가 복음 중심의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이 복음 중심의 가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복음 중심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모든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2:42
42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 결과가 47절에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시작이 무엇입니까? 교제하고 떡을 떼는 것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구제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작이 무엇입니까?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가르침이 교제나 기도를 이끌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당시 성경은 구약성경이죠. 구약성경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임을 전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 배웠을 것입니다.
이 가르침 안에서 교제와 기도를 진행했던 것입니다.
말씀 중심의 교회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둡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묵상하시고 또 배우시고 은혜 받은 말씀을 함께 나누고 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더라. 이러한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임하길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음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