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44. 구원의 과정
사도행전 10:44–48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새해의 첫 주일입니다.
올해도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 가시고, 경외하시고 사랑하시는 복된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송구영신예배 때 드린 말씀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하는 최소의 사건입니다.
이 일을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사회를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방선교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회에게 이 사건을 보고함으로 초대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전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게 될 내용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 어떤 과정으로 하시는가입니다.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 친척과 친구들이죠. 그들 가운데 구원이 임하는데, 일련의 과정을 살펴봄으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을 통해 불신자를 구원하십니다.
이 부분은 자주 언급되었던 내용인데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항상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사용하셔서 불신자를 구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사용하시죠.
고넬료는 그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구원하기 위해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선택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세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에 쓰임받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전도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나에게 현실적인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큰 기쁨이 있거든요.
저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베드로처럼,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불신가족들, 불신 이웃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소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불신가족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혼란과 혼동의 시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하잖아요.
여러분이 새해소망을 적는 노트1번에, 올해 구원받아야 할 이름을 적으십시오.
어떤 분은 남편의 이름을, 어떤 분은 자녀의 이름을, 또 어떤 분은 부모님의 이름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 이렇게 쓰십시오. 하나님 올해 이 분을 꼭 구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러한 의지가 없고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먼저는 올해 불신가족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고 애쓰시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을 위해 선택한 자들을 복음 전파자로 준비시키십니다.
베드로의 성정으로는 이방인에게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고넬료의 성전으로는 유대인 베드로는 집에 초정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유대종교적 배경에서는 이방인을 상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 주시고, 그의 경직된 종교적 신념과 관습을 깨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시킨 것입니다.
고넬료도 마찬가지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신 했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의 반역자로 지목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를 전하는 베드로를 집에 초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의 군인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가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어떤 일을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항상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세밀하게 섭리하여 이루십니다. 세상에는 우연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거든요. 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계획안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할 사람들과 그들을 어떻게 훈련하고 준비시킬까에 대한 부분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사용하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그를 준비된 도구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를 통해 불신자를 구원하십니다.
3.하나님은 준비된 자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불신가족을 구원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도하기로 하셨다면,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합니까? 그들에게 전할 복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고네료에게 전한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처세술이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부활하셨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최후의 심판날 재판장이시며 그를 믿어야만 죄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요약입니다. 이곳에는 그 핵심만을 적은 것이죠.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또는 자녀가 어느날, 여보, 당신 나에게 당신이 믿는 것이 대해 말해 줄 수 있겠어? 하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아버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는 것이 도대체 뭐예요? 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실제로 복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도 많습니다.
분당에서 부목사시절, 저녁12시가 넘어서 전도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지금 빨리 서울병원에 가야겠습니다.”
“무슨 일이신데요?”OO집사님 남편이 지금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빨리 오셔서 영접기도 해달래요.“
시급하게 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가는 중에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지금 돌아가셨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집사님께서 웃으며 맞아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목사님! 저희 남편 천국 갔어요.”
제게 전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의사선생님이 믿음이 있던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 선생님께서 복음을 전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접기도까지 마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시급하게 복음을 전해할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어떻게 전하시겠습니까?
복음은 목사나 전도사와 같이 특정한 사람들만이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라면 모두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 부분에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4.하나님은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을 통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사도행전 10:44–45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복음이죠.
성령님은 복음과 함께 임합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게 성령이 임하진 않죠. 놀라운 신앙의 체험을 담은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수는 있어도 성령님이 임하진 않습니다. 성령님은 반드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어눌한 언어도 전할지라도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많은 경우 신비적 체험을 연상합니다.
방언을 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예언을 하거나 또는 기도 중에 넘어진다거나, 이런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보면 각각의 독립되고 고유한 사역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부하나님은 구원을 작정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그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길을 믿게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이때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 즉 십자가게 죽은 예수가 부활하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래서 그분을 믿어야만 죄사함 받는 다는 이 내용을 믿게 하십니다.
이 복음을 전한다고 듣는 모든 사람이 다 믿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가 이렇게 영상으로 복음을 전하면 어떤 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무감각하게 반응하거든요. 그러면 이 차이가 무엇인가?
우리가 전하는 복음 때문인가? 아니면 듣는 사람의 이해의 차이 때문인가? 했을 때 둘다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임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전파된 복음이 믿어지고 회개하는 자들은 성령님이 임한 것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분들은 성령님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신다면 성령님이 이미 여러분 가운데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임하신 그 성령님은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장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요한복음 16:7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보혜사가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큰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13–14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 스스로 영광을 취하기보다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사랑의 모습입니다.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5.성령님이 임할 때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님이 임할 때 방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0:46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통해 성령님이 임했음을 확신했습니다. 만일 방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확신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방언의 역할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늘날 방언은 은사의 하나로서 성도들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도 있고 그렇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도 마찬가지죠. 방언을 하시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이 방언은 은사로서의 방언입니다. 초대교회 때 나타났던 것과는 그 목적과 성격이 다릅니다.
사도행전에서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이 방언을 받는가의 여부에 따라 성령이 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종교관습이 율법과 할례를 통해 유대인으로 전향할 때만 가능했거든요.
그러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아야만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종교적 관습에 묶여있던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확신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방언을 받는 것을 통해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대부분 유대인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이루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현재 교회에 적용하면 안됩니다.
간혹 어떤 교단에서는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어쨌든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세상이 달라집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의 중심에 있기에 우리가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하늘의 구름만 보아도 감격스럽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즐겁고 찬양하는 것이 기쁩니다.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성경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어색하고 낯설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6. 구원의 확신은 세례를 통해 표현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자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임함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사도행전 10:47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베드로가 세례를 베푼 이유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8절에 보면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누가 명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날 기독교에서 지키는 성례전은 두 가지입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예수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셨기에 지금도 행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칠성례라 하여 5가지를 더하는데 성경에서는 두 가지만 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셨기에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는 믿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꼭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세례를 받았다고 다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고 세례 받지 못한 사람 중에도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세례를 명하셨을까요?
세례는 예수님과 내가 연합되었음을 공적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마치 결혼식과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부부가 될 때 굳이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혼신신고서를 작성하여 양가 부모 도장 받고 증인의 이름 첨부하여 구청에 제출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내가 이 사람과 부부의 연을 이루어 한 몸이 되었음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적선언을 통해 부부로서 인정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그가 믿음이 있는가를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일 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믿음의 사람인가를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기독교의 모든 학교나 단체에서 세례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달리 증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르신 들이 돌아가시면 목사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세례여부입니다.
아버님 세례 받으셨어요?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세례 받으셨어요? 묻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실 때 어떠한 과정으로 하시는지 6단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올해 주님을 믿지 않는 우리 가족들이 여러분의 복음 전파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께서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또한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 사람 앞에서 믿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시고 준비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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